청와대
▲국민들이 코로나로 시름을 앓고 간호사노조는 업무 과중으로 파업을 선언한 가운데,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에게서 받은 풍산개 새끼 7마리를 소개하면서 희망 지자체에게 분양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한복음 6:28-29)”.

연일 불볕더위로 신음했는데, 말복과 처서를 지나 9월이 오니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의 입구입니다. 인류를 괴롭혀온 코로나19 역시 물러갔으면 하는 기대감으로 잠시 머무르는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들려오는 불행한 소식이 더욱 마음을 괴롭힙니다.

아프간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고통 가운데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속보에 마음은 더욱 조급해집니다.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우리의 형제이며 자매입니다. 아프간 지하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메시지를 전해듣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롯이 하나님 앞에 매달려 중보기도하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지난 20년 동안 열심히 사역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고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아시겠지요.

우리가 우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아름다운 나라를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프간은 이 야만적이고 극단적인 집단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소중한 모든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모두가 우릴 버렸습니다. 우리를 지지한다고 했던 사람들도 최악의 상황으로 우리를 내쳤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탈레반 정권을 따라 살아야 하는 걸까요? 여러분, 오늘 이 비디오를 증거로 녹화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역사에 남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홀로 현장에 남겨진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장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더 열심히 싸울 것이며 하나님의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우리 중 한 명이라도 남으면, 우리 아이들이라도 남는다면, 부탁이 있습니다. 그들을 혼자 두지 말아 주십시오. 그들을 버리지 말고 잘 보살펴 주십시오, 가슴이 아픕니다.
이 영상이 하나님의 은신처 아래에서 여러분에게 닿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지하교회 성도 박일천 목사 드림.”

탈레반에 의해 체포된 이들에게, 그 자리에서 총으로 난사하는 영상을 보고 정말 무섭고 떨렸습니다.

필자의 군 시절 월남이 패망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프간의 비극 역시 남의 일 같지 않아,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도 이와 같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두려움들이 국민들 사이에서도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은폐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대 여당의 이점을 최대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유익이 되는 법안만을 통과하며, 심지어 언론에 재갈을 물리게 하는 법안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상과 이념을 위해 이 나라를 통째로 집어 삼키려 하고 있는데도, 국민들은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야당 정치인들 역시 눈으로 직접 보고 들으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미래는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국가 존재마저 위기로 치닫고 있습니다. 현 상황을 보노라면 참으로 두렵고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은 기적을 일으키신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찾아온 무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방식을 통한 영원한 생명의 떡은 사람들에게 착각을 불러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군중들은 이 떡을 얻기 위해 세속적인 방식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율법주의가 하나님과의 계약을 세속적인 방식으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셨는지, 그 계약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려고 하셨는지를 잊어버리게 만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이들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떡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얻는 획득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삶을 통해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은총의 선물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겨 있으며, 외아들을 통해 그 사랑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영이 아니라 육에 갇혀 예수님의 말씀을 세속적으로 이해하려는 군중들은, 당신의 몸을 먹고 마시라는 말씀은 이들에게는 듣기가 거북할 뿐 아니라 오히려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간혹 이런 딜레마에 빠지곤 합니다. 우리의 눈과 귀는 세속적 입장에서 보고 듣는데 익숙하기에, 자칫 조금이라도 그런 견지에 빠진다면 참된 진리의 말씀은 의혹으로 바뀌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당장 눈앞에 어떤 표징을 요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으로 볼 수 있는 표징을 어떻게 육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했던 베드로의 고백처럼,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세속적 안목이 아니라 영을 통해 봄으로써 참된 진리의 표징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아프간 사태를 우리는 그저 남의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거기도 우리 선교사들이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있고, 그 나라 백성 역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 상황은 고요하게 물들어가는 사회주의 앞에서, 그들의 평화 놀음에 속수무책으로 점점 넘어가고 있는 듯 합니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6.25 사변 같은 처참했던 역사를 그새 다 잊었는지요.

집안에 사람이 잘못 들어오면 집안이 망한다는 옛 선조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물며 한 나라의 책임자를 잘못 선택하면, 나라는 존망의 큰 위기를 자초하게 됩니다.

그 한 사람의 영향력 때문에 정치학에서는 ‘영향력’을 내 뜻대로 관철시키는 권력의 기반으로 설명하고, 특히 국제정치에서는 다른 국가의 행동을 컨트롤하는 힘으로 정의합니다. 하지만 이 영향력 앞에 ‘단어 하나’가 붙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나의 올바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 착한 행동이 전파되고 확산되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아름다운 힘이 되는 것입니다.

‘선한 영향력’은 관계와 확신을 전제로 합니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내가 베푼 친절과 사랑의 실천이 누군가에게 격려와 힘이 되고, 이런 일들이 이어져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지금의 교육과 노력은 돈, 권력, 지위 같은 세상의 영향력을 갖는 데 치중해온 건 아닌지 자신을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이런 영향력은 결국 그 크기가 제한되고 일부에게만 집중됩니다.

현 정부의 영향력은 나라와 국민들을 위한 선한 영향력으로, 이 시대의 사명자로서 역할을 해야 함에도, 국민을 속이면서까지 악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권력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고, 지금이라도 방향을 선회하여 나라와 백성들 위한 선한 영향력의 정치를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선한 영향력’은 겨자씨와 누룩처럼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고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 나갈 것입니다. 특히 요즘 코로나19가 점점 전파력이 높은 변이를 일으켜 국민들의 깊어가는 시름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이런 두렵고 불안한 때에 사랑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 ‘선한 영향력’이 횃불처럼 들려지고 눈덩이처럼 커져, 코로나19보다 훨씬 더 큰 전파력으로 한국교회와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굳건히 서는 선한 영향력을 일으키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특히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은 단 한 가지, 오롯이 믿음입니다. 시대적 두려움과 불안은 믿음이 없는 연고이므로, 우리는 날마다 믿음의 생활, 믿음의 사람으로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진정한 크리스천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