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명예교수, 전 AEA(아시아복음주의연맹) 신학위원장).
<2021년 106회 예장 합동 총회와 한국교회에 드리는 요청> 

WEA(세계복음연맹)와의 교류단절 우려한다. 역사적 개혁주의가 한국교회의 길이다.
-세계교회와의 교류단절은 신(후기)근본주의 분리주의 길이다-

머리말
지난 8월 30일 필자는 박용규(역사신학, 총신대 신대원 명예교수), 이한수(신약신학, 총신대 신대원 명예교수), 김성태(선교신학, 총신대 신대원 명예교수), 이승구(조직신학, 합동신대원 교수, 한국복음주의신학회장)과 함께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 모여 2021년 9월 13일-17일 열리는 제 106회 예장 합동 총회에서 일부 분리주의 성향 지도자들이 WEA와의 교류단절로 몰아가려는 움직임에 대하여 학자적인 양심에서 뜻을 같이하여 ”WEA와의 교류단절은 신근본주의 분리주의 길이다“는 입장 표명과 함께 ”역사적 개혁주의의 길을 가기“를 요망하였다. 필자는 WEA의 아시아 지부인 아시아복음주의연맹(WEA)신학위원장으로 8년간(2008-2016) 봉사하여 이 단체에 대하여 보다 친숙한 지식을 갖고 있다. 이 입장이 보다 설득력을 갖도록 필자는 상세한 신학적 입장을 설명하고자 한다.

1. 신근본주의는 분리주의 길이며, 21세기 한국교회가 가야할 역사적 개혁주의 길 아니다.
193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신근본주의 내지 후기 근본주의 운동은 그 당시 미국교회 내 소속 교단을 탈퇴하거나 교단으로부터 면직된 근본주의자들 일부가 새로운 교회와 교단을 창립함으로써 일어나게 되었다. 칼 맥킨타이어(Carl Mcintire, 1906-2002) 존 R. 라이스(John. R. Rice, 1895~1980), 밥 존스(Bob Jones, 1883~1968), 그리고 호전적인 분리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이 참된 ‘근본주의자’라고 주장하였다. 1930년대의 신근본주의는 논쟁 지향적이며 반지성주의적 경향과 사회문제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하여 분리주의와 고립주의로 나가게되면서 소수파로 전락하였다. 이들은 세대주의의 특성을 갖는다.

1941년 메킨타이어(C. McIntire) 주도로 반현대주의적인 미국기독교협의회((American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ACCC)와 1948년 WCC에 대항하는 국제기독교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ICCC)가 창립되었다. 맥킨타이어는 공산주의와의 대결, 술과 담배의 철저한 금지를 주장하면서 정통장로교와 분리하여 훼이스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를 세웠다. 이들은 인종문제와 인권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신근본주의는 사회적 아픔이나 윤리적 문제는 개인적 중생으로 해결된다고 보았다. 교회연합운동이나 초교파적 협력에 참여하는것도 절충주의적 시도라고 본다. 그리하여 세속문화에 대한 경건주의적 도피만을 강조함으로써 문화변혁의 진취성 사명을 간과하고 있다. 세상의 문화를 등한히하고 학문과 과학을 부정하는 입장으로 전락함으로써 그리하여 필라델피아 소재의 훼이스신학교 교수들이 성경신학교(Biblical Theological Seminary)를 세우고 이 학교로 교수직을 옮기게 되어 훼이스신학교는 간판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보수주의 내 영향력은 사라지게되었다.

1950년에는 근본주의 교리를 근본 신조로 하는 성서 침례회(Bible Baptist Convention)가 창립되었다. 성서 침례회는 급성장하여 미대륙에서 가장 큰 근본주의 교단이 되었으며 현재 약 4000개의 지교회를 가지고 있다. 언약 사상과는 달리 세대마다 구원경륜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애슈 브록, 우드브리지 등 세대주의자들도 전투적 성향의 신근본주의 로선을 따르고 있다. 신근본주의는 근본주의의 부정적 사고방식으로 분리주의이다. 한국교회는 21세기 동성애와 문화마르크시즘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여 역사적 개혁주의의 긍정적 사고방식을 펼쳐나가고 세계선교적이고 복음전파를 위한 적극적 세계교회 교류지향적으로 나가야 한다.

2. 역사적 개혁주의는 1900년대 자유주의 신학에 맞서는 미국교회 내 근본주의 운동 형성과 발전에 기여하였다.
근본주의 신학 운동은 1900년대 미국교회 내에서 자유주의 신학(역사비평, 진화론, 사회주의 등)의 침투에 대하여 복음주의 진리(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수호하기 위하여 일어난 신학적 운동이 근본주의라고 칭하게되었다. 워필드(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 1851-1921),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제임스 오르(James Orr), 프린스턴신학교의 교수인 버렐(D. J. Burrell), 찰스 어드만(Charles R. Eerdman), 벤저민 워필드(B. B. Warfield)와, 성공회 주교 뮬(H. C. G. Moule), 세대주의자 스코필드(C. I. Scofield), 부흥사 토레이(R. A Torrey), 남침례교 신학자 멀린(Mullins) 등 영국, 미국, 캐나다 출신의 64명의 보수주의자들은 로스앤젤레스의 부유한 실업가 라이맨 스튜워드(Lyman Steward)와 헨리 스튜워드(Henry Steward) 형제의 후원을 얻어 1910년에서 1915년 사이 「근본적인 것들: 진리의 증언」(The Fundamentals: A Testimony of the Truth)이라는 12권의 소책자를 출판하였다. 소책자 출판시에 근본주의란 용어가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 때의 근본주의는 보수적 복음주의룰 선호하였다. 하지만 보수적 복음주의가 곧 근본주의는 아니다. 근본주의는 일반적으로 극우파 보수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1910년 미국 북장로 교회 총회는 근본주의자들의 영향력에 의해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과 육체적 부활, 기적으로 요약되는 5개조의 교리를 기독교의 본질적인 신앙으로 선언했다.

3. 1920년대 미국교회 근본주의 내의 전투적이고 부정적이고 분리주의적 경향은 근본주의 운동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에 대하여 성경적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지킨다는 근본주의의 운동과 논쟁은 192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으며 그 후에는 급격히 약화되었다. 그 원인은 현대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패배한 것과 근본주의 운동의 내부 분열이었다. 1922년 포스딕(Fosdick) 목사가 “근본주의자들을 이길 것인가?”란 설교를 하여 출판하여 근본주의를 궁지에 몰아 넣었다. 1924년 북장로교회 안의 1293명의 목사가 서명한 어번 선언서(Auburn Affirmation)이 등장한다. 그 선언서는 1910년, 1926년, 1923년 3차례에 걸쳐 총회가 선언한 5가지의 근본교리들을 "본질적이지 않고 이론들일 뿐"이라고 선언했고, 특히 성경 무오설은 성경숭배에 빠지기 쉽다고 주장했다. 1925년 총회에서 찰스 어드만(Charles R. Eerdman)을 총회장으로 선출하는데, 그는 바로 관용성을 강조했던 학자였다.

1925년 근본주의자와 진화론자의 대립으로 일어난 원숭이 재판 사건으로 인해 근본주의자들이 과학에 관해 상당히 무식하다는 여론의 평가를 받았고 일반 대중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또한 근본주의자들은 교권 투쟁에서도 패배하여 교단 주도권을 상실하고 소수파로 밀려 나게 되었다. 매이첸이 1929년에 프린스톤을 떠나서 필라델피아로 가서 웨스터민스터신학교를 만든다. 이 때 밴틸(C. Van Til)이란 신학자도 함께 간다. 1936년에 정통장로교회(Orthodox Presbyterian Church)라는 새로운 교단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미국교회의 신학적 논쟁은 바로 한국 장로교회에 영향을 끼쳐서 1959년 예장교단(박형룡의 정통주의)과 기장교단(김재준의 신정통주의)로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4. 오늘날 한국보수교회는 1920-30년대 미국교회의 근본주의 신학논쟁에 되돌아가서는 안된다.
1940년대 미국교회 근본주의 내부에서는 갈등과 분열이 일어났다. 근본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 중에 그 신학과 교리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과 태도에는 동의하지 않는 그룹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신근본주의의 논쟁 지향적이며 반지성주의적 경향과 사회문제에 대한 무관심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1941년에 미국복음주의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를 만들었으며, 이것은 헤롤드 옥켄가, 칼 헨리, 빌리 그래함 등의 지도 하에 크게 성장했다. 이 새로운 운동이 신복음주의다. 신복음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면서 역사적 개혁주의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수용의 입장을 취했다.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가진 긍정적인 가치(현대문화 속에서 기독교 정체성 정립)를 재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한국교회는 지나간 시대의 신학논쟁에 휘말리지 말고 오늘날 당면한 시대적 이슈인 동성애와 문화마르크시즘의 도전에 맞서 함께 협력하여 성경적 기독교 진리를 지키고 변증해야 한다,

5. WEA는 오늘날 사도적 신앙고백을 하는 6억 복음주의 신자들의 모임체이다.
오늘날 WEA는 유럽의 복음주의 운동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세계 복음주의 운동이며 1846년 설립된 175년의 역사를 지닌 미국장로교회(PCA) 교단과 세계개혁주의협의회(WRF)가 정회원으로 있는 6억 기독교 신자들이 속해 있는 역사 깊은 건전한 복음적 국제연합기구이다.
2001년 5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제11차 총회를 갖고, 새로운 이름인 WEA로 변경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그들의 신앙적 근거가 EA에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며 “총회 후, 그들은 WEA 7개조 신앙고백서를 최종 수정(2001년 6월 27일)하여 공포했다.
”우리는 믿습니다.
1. 원래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거룩한 성경은 신적 영감을 받아 오류가 없으며, 전적으로 신뢰할 만하며, 신앙과 행위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집니다.
2.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며, 동정녀에게서 출생하셨으나 죄는 없으신 인간의 삶을 사셨고, 신성한 기적을 행하시고, 대속(代贖)적으로 죽으셨으나 육체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중보의 사역을 감당하시다가 권능과 영광 중에 인격적 재림을 하실 것입니다.
4.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써, 성령으로 거듭남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상실되고 죄된 인간은 구원받습니다.
5.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신자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증거하며 일을 합니다.
6.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모든 참된 신자들의 영이 하나됩니다.
7. 구원받은 자와 멸망 받을 자 모두가 부활합니다. 이들은 영생의 부활로 구원받으며, 저들은 저주의 부활로 멸망받습니다.“

6. WEA 회장 쉬르마커는 WEA가 종교다원주의, 개종 금지, 동성애,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있다고 표명하였다.
WEA의 회장인 토마스 쉬르마커(Thomas Schirrmacher, 1948-)는 특히 이한수 교수가 개인적으로 질문한 중요한 예민한 문제들에 대하여 명료한 복음주의적 입장을 제시해주고 있다. WEA는 종교다원주의를 반대하며, 사회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서 WCC와 협력하나 선행을 복음전도와 같은 수준에 놓는 것을 반대한다.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 로마가톨릭 신학, 공산주의에 대해 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WEA는 성경 불오성과 무오성을 반대하는 자유주의 입장을 거부한다. 개종을 반대하는 선교 모라토리움에 대하여 반대한다.

7. 미국의 매우 보수적인 미국장로교회(PCA)도 WEA와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한수 교수에게 직접 보내어 온 미국의 매우 보수적인 미국 장로교회(PCA) 증경 서기(Stated Clerk Emeritus)인 로이 테일러(L. Roy Taylor) 목사가 교단을 대표하여 표명한 서신에 의하면 ”WEA는 실제적으로 종교다원주의를 채택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않으며,” 성경의 영감설을 인정한다“고 표명하였고, ”PCA는 NAE와의 관계를 통해 가지고 있는 WEA와의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다. WEA는 성경적이고 복음주의적 운동으로서 한국교회가 신뢰하면서 세계교회와 호흡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연합체이다.

맺음말: 새로운 시대 이슈인 동성애와 문화마르크시즘의 도전에 맞서 성경적 진리 선포.

구미(歐美)사회에 다가온 후기 기독교시대에 기독교선교가 성공한 교회를 가진 대한민국은 국가적 지위가 유엔으로부터 선진국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처해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더 이상 아시아의 작은 교회가 아니라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보내고 역동적인 기독교의 신학과 교회 성숙을 추구하는 교회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지구촌으로 나아가 세계교회에 성경적 복음주의적 개혁신학을 구미(歐美)교회에 수출할 때이다. 세계교회와의 교류단절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서 스스로 고립으로 퇴각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적극적으로 세계교회와의 교류를 통하여 사도적 복음을 다시 전하고 역사적 개혁주의 전통을 확산해야 할 때이다. 한국교회는 신근본주의의 부정적 사고방식에 머물지 말고 21세기 동성애와 문화마르크시즘의 새로운 도전 앞에서 역사적 개혁주의의 적극적인 문화변혁의 길을 펼쳐나가길 바란다.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명예교수, 전 AEA(아시아복음주의연맹) 신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