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 문화 속의 그리스도인
스펙터클 문화 속의 그리스도인

토니 레인키 | 조계광 역 | 개혁된실천사 | 256쪽 | 13,000원

1999년, 인터넷에 접속하여 이메일 계정을 만드는 것이 필자의 대학교 과제 중 하나였다. 지금은 어린아이도 유튜브에 접속해 원하는 영상을 즐겨 보는 시대가 되었다.

그때는 원하는 영상물을 보려면 비디오 가게에 가서 직접 빌려야 했는데, 지금은 손바닥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원하는 영상물을 결제하고 시청할 수 있다. 과거 경험하지 못한 미디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고, 앞으로 어떤 미디어 매체가 개발되어 더 많은 미디어를 더 높은 빈도와 강도로 경험하게 될지 알 수 없다.

토니 레인키는 이런 문화 현상을 ‘스펙터클’이라 부른다. 그는 “여러 시선이 길거나 짧은 시간에 특정 이미지 또는 사건에 고정되는 현상”을 스펙터클이라 정의하면서, “우리의 눈과 뇌를 우리 앞에 투사된 것에 초점을 맞춰 고정시키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20쪽).

레인키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스펙터클을 자주 그리고 많이 경험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레인키는 존 파이퍼 목사가 설립한 사역 기관인 ‘디자이어링갓’에서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그는 <스마트폰, 일상이 예배가 되다(CH북스, 2020)>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이번에 개혁된실천사에서 나온 <스펙터클 문화 속의 그리스도인>에서는 미디어 시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최고의 스펙터클’로 인정하며 살아갈지 설명한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첫 부분, ‘스펙터클의 시대’에서는 스펙터클 문화에 익숙한 문화 현상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두 번째 부분 ‘스펙터클’에서는 모든 스펙터클에서 눈을 떼고,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스펙터클인 그리스도께 시선을 돌리도록 여러 모양으로 권면한다.

총 3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종종 하나의 독립적인 칼럼처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뚜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 레인키가 문제 삼는 현대 문화의 특징은 확장된 ‘스펙터클’에 있다. 고대 성경 시대에도 스펙터클은 존재했다. 극장이나 연극, 운동 경기 등은 짧은 시간에 눈앞에 일어난 흥미로운 일들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고대 그리스도인이나 중세 청교도인 모두 세속적인 스펙터클에 끌리거나 중독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멀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 미디어 시대 속에서 스펙터클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또 통제할 수 없는 개인의 영역까지 침투했다. 시청자의 눈과 귀를 현혹하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강렬한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고, 실제로 그 만들어진 스펙터클이 소셜 미디어, 비디오 게임,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효과를 나타내며, 상품을 파는 이들, 정치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적극 활용되고 있다.

레인키는 점점 더 스펙터클을 추구하는 현대 문화를 분석하면서, 단순히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말 것인가 고민하는 수준으로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명백하게 밝힌다.

그러면 어떻게 스펙터클한 문화 속에 사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문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영향을 주는 이들이 될 수 있을까? 레인키는 세상에서 가장 큰 스펙터클을 소개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물론 현대인들이 눈으로 십자가 사건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십자가 사건은 눈이 아니라 귀로 듣고,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에도 담대하고 명확하게 십자가를 전하면, 신자들, 곧 그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앞에 십자가의 스펙터클을 구현할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 십자가의 스펙터클을 본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온당한 위엄을 갖춘 십자가의 메시지가 감겨 있는 충실한 설교와 책과 사진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볼 수 있다”(134쪽).

결국 단순하게 설명하면, 미디어 시대 그리스도인의 문화 전쟁은 ‘어떤 스펙터클에 그들의 눈을 고정하는가’의 싸움이다. 화려한 CG 효과와 강렬한 영상미를 갖춘 이 땅의 스펙터클은 일시적이고 담고 있는 가치가 제한적이다. 하지만 십자가가 전달하는 스펙터클은 영구적이며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C. S. 루이스의 ‘진흙 파이’ 예시처럼, 레인키는 이렇게 문화 전쟁을 치르는 이들에게 권면한다. “인생의 가장 큰 실수는 영원한 가치를 지닌 보화를 찾기 위해 깊이 잠수하지 않고, 세상의 스펙터클이라는 얕은 물에서 철벅거리며 노는 것이다”(235-236쪽).

하나님께서 모든 영혼 안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커다란 내적 공간을 만들어 놓으셨고”, 우리는 세상의 스펙터클에 감동할 때마다 그걸로 채울 수 없는 그 커다란 공간을 발견하는데, 저자는 그 공간을 무가치한 것들로 채우지 말라고 경고한다(178쪽).

또 한 가지 이 책에서 발견한 의미 깊은 통찰은 우리 영혼이 가지고 있는 영적 에너지가 제로섬 게임이라고 말한 부분이다. 우리에게 시간과 에너지가 제한된 것처럼, 영혼의 에너지 역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헛된 것에 경이로워하고, 감탄하며 애정을 쏟는다면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을 볼 때 경이로워할 에너지가 남지 않는다는 말이다(199쪽).

우리 아이 스마트폰 TV 중독 미디어 절제
유튜브를 보느라 시간을 다 소비하면 성경 볼 시간이 남지 않는 것처럼, 스펙터클 문화에 영적 에너지를 소비하고 나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감격하며 바라볼 에너지가 남지 않는다.

이는 단지 무엇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보고 듣고 감탄하는 것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모두 알고 있다. 그리스도가 다른 어떤 스펙터클보다 매력적인 보화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이 그리스도를 가장 고상한 보물로 알아 그 분께 고정되어 있는가? 말과 혀로만 그리스도가 최고의 스펙터클이라 말하고, 실제로는 배설물처럼 여겨질 것들에 눈과 귀가 현혹되어 있는 건 아닌가?

미디어 금식이나 몇몇 자극적인 콘텐츠를 멀리하고, 무절제한 스마트폰 사용을 억제하는 일 모두 이 시대 문화 전쟁에 꼭 필요한 방법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영혼을 영원히 사로잡을 가장 매력적이고 고귀한 스펙터클에 우리 영적 에너지를 쏟는 것이 아닐까?

미디어 매체가 발전하고 미디어가 지금보다 더 많이 쏟아져 나온다 해도, 우리 영혼이 ‘예수님 바라보기’에 힘쓴다면, 오직 그분께 매료되어 있다면, 스펙터클 문화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은 넉넉히 이기며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살 것이다. 그것이 토니 레인키가 이 책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시대, 당신의 영혼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유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