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연애는 다큐다
▲ⓒ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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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은 시대를 살고 있다. 행복한 가정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보다 불행했던 사연이나 복잡한 결혼생활에서 탈출하는 이야기가 더 눈에 띄고 주목받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면도 있겠지만, 최근 미디어에는 결혼으로 얻는 행복에 대해 의심하게 만드는 내용이 무척 많은 것 같다.

이는 결혼생활에 실패하거나 결혼 자체가 좌절되는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최근에 보면 돌싱들만을 위한 TV 프로그램도 많다. 과거에는 숨기기 급급했던 자기 이야기를 당당히 하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내용은 결혼생활의 실패를 자학적 개그로 소재화하고 있어 쓴웃음을 유발한다.

요즘 방송에는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들의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등장하고, 재혼을 노리는 한량 같은 돌싱남들의 삶도 적나라하게 공개되는데,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이런 프로그램만 보면 여성들은 양육비 걱정에 어떻게든 혼자라도 아이를 잘 키워볼까 고군분투하는데, 남성들은 새로운 여성을 찾는 일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이혼해도 여자는 여전히 엄마인데, 남자는 총각이고 싶은 세태를 방송이 풍자 또는 조장하는 것 같다. 이런 현실적인 프로그램들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결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아무튼 이런 방송들은 최근 늘어나는 한부모가정 엄마들의 고충을 공감과 용기로 보여주지만, 실패의 고뇌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남자들의 삶은 홀아비 감성 같은 것으로 희화시켜 소비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방송들을 통해 가정과 결혼이 얼마든지 ‘갔다 올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그런 방송을 보면서 “나는 잘 살아야지”, “우리 부부는 아이를 잘 키우고 좀 더 인내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무의식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로 자리잡을 수 있다.

결혼을 하면서도 이혼과 재혼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배수진의 노력’을 하지 않게 하는 기능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전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따로 사는 아빠나 엄마를 특별한 날에만 놀이공원 같은 곳에서 만나고, 전처 또는 전 남편과 지금의 배우자가 아무렇지 않게 친구처럼 지내는 것을 참 신기하게 여겼는데, 어느새 우리 사회도 비슷하게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런 것이 결혼에 대한 가벼운 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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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요즘은 결혼에 대한 찬가보다 냉소가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 행복한 가정에 대한 기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등의 주례사에만 남아 있고, 정상적인 결혼생활은 부자유와 얽매임의 대명사로 희화화되는 것 같다.

최근 사회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중년은 빈부 갈등, 노년은 이념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답했는데, 10대와 20대는 남녀 갈등을 꼽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런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성장해 결혼을 대결구도로 인식해 조건에 맞추는 것으로 알고, 결혼해서도 역할분담 협상의 장으로 은연중에 인식하는 것 같다.

때문에 요즘 ‘MZ 세대’라고 하는 사람들은 남녀가 서로에게 피해의식을 지니고, 이성을 냉소적으로 보는 데 익숙하다. 강성 페미니스트와 여성 혐오론자들이 쏟아내는 결혼에 대한 조롱과 적극적인 만류가 이 세대들에 설득력을 더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도 그 대열에 동참해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결혼하지 않을 것을 적극 장려하기도 한다. 그들의 냉소에는 위트가 묻어난다.

“바로 이 사람이다… 싶은 그 순간을 잘 넘겨야 한다.”

아직도 결혼에 환상을 지닌 사람들에게, 문득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이 미혹(?)이니 잘 뿌리쳐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래야 결혼이라는 ‘지옥’에 빠지지 않는다는 거다.

이혼한 사람이 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별~빛~이 내린다♪’ 싶은 첫눈에 반하는 순간도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말을 밀어내겠지만, 싱글로서 그런 조언에 동조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면 결혼을 꿈꿨던 사람도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질 것 같다.

이런 말도 있다.

“결혼해서 망한 사람은 봤어도 결혼 안 해서 망한 사람은 없더라.”

결혼했다가 크게 낭패를 본 사람은 있지만, 결혼하지 않은 것 때문에 절망의 나락에 빠질 일은 없다는 것이다. 좀 외롭고 허전할지는 몰라도, 결혼생활 중 겪는 흉흉한 일 즉 부부간의 심각한 갈등이나 법적 소송,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갖은 고생은 최소한 피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이것도 솔깃한 이야기지만 하나마나 한 이야기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없다. 그건 고생을 피한 것이 아니고 그냥 그 영역에 들어가지 않은 것뿐이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한 정치인이, 재난지원금 정책 등을 두고 “세금 걷어서 다 퍼주느니 안 걷는 게 제일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그 말에 반대하는 이들은 “어차피 배고플 걸 밥은 왜 먹느냐”, “어차피 쓸 걸 저축은 왜 하느냐”며 반박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어차피 이혼할 걸 결혼은 뭣하러 해?”로 되받았다. 결혼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조소였다.

정말 그럴까?

욥이 자기 삶을 저주해서 어머니의 태중에서 끊어졌거나 나면서 죽었더라면 좋았겠다고 한탄했지만, 그러면 그의 삶은 아예 없는 것이다. 그가 당한 고통은 끔찍한 상황이었지만, 결말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그의 절망에 동의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욥은 삶의 희로애락을 거쳐 두 배로 넘치는 복을 받았다. 우리는 주님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좋았을 것”이라고 한 사람은 가룟 유다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남이 하는 공부를 안 해서 시간이 많으니 나는 행복한 자인가? 남이 다니는 여행을 안 다녀서 팔다리가 안 아프니 나는 편안한 자인가? 저축도 안 하고 쓰지도 않은 나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현명한 자인가? …

결혼 생활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결혼했다가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나는 결혼 안 해서 성공한 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혼은 이런 말로 설득한다고 갑자기 하고 싶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싱글의 삶을 선택하더라도, 최소한 저런 못난 이유로 머뭇거리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말들을 결혼에 대한 더 큰 각오와 신중함으로 바꿔, 그 냉소가 틀렸음을 보여주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물론 저런 냉소적인 말들은 나름의 깨달음과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니, 무작정 틀렸다 할 수 없다. 의외로 공감할 부분이 있다. 다만 부정적 메시지에 공감하는 것에는 어떤 해결책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든지, “돈이 최고다”라든지, 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부분이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그래서 공감하는 것이 아니며, 그 말에 수긍한다 해서 정말로 아무도 안 믿고, 돈을 최고의 가치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말을 통해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 되고, 돈이 최고가 아닌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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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부부가 살면서 하는 말들은 아직 주변 사람들이나 본인들 스스로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싸워도 사네 마네 하는 것은 매우 안 좋은 일이다. 다툼이 아닌 평소 농담이라도, 이런 식으로 말해선 안 된다.

“당신은 혼자 살아봐야 내 고마움을 알 거다.”
“난 이렇게는 못 살아.”
“애들만 다 크면 각자 독립하자고.”

졸혼하고 재혼한 연예인이 나오면 부러워하는 식의 행동도,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마음의 밑바닥에서 잡초처럼 자랄 수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심각한 다툼이 온갖 불행한 상상의 단초가 된다. 어린 자녀들은 불안을 넘어서 결혼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지니게 되며, 스스로가 부모의 애정 없는 결혼의 결과물 같고, 이혼이라는 대안에도 걸림돌 같다.

그래서 다툼은 빨리 끝내는 것이 좋고, 내용이 심각해도 웃으면서 하며, 진짜 헤어질 것이 아니면 아무리 답답해도 극단적인 결말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결혼에 대한 조소와 씁쓸한 조언도 공감에서 끝나야 한다. 그런 말들은 더 나은 결혼을 위한 예방주사로 여기는 것이 좋다. 그래야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삶이 된다.

말이 돼서 더 안타까운 이야기들, 웃프고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결혼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소중한 것들 중 단 하나만으로도 결혼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고난 없는 행복은 아예 없다. 어릴 때, 등을 긁어주시면서 “등이 가려워서 긁으면, 아예 안 가려웠던 것보다 낫다”고 하던 아버지 말씀이 생각난다. 왜냐하면 시원하니까, 등을 긁어서 시원함을 맛보았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살면서 겪은 괴로움과 가려움은 행복의 선행 조건이기도 하다.

결혼하지 않으면 인류는 그 무엇도 계속할 수 없고, 그대로 멸종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기혼자들의 덕분으로 살아가는 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결혼,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에 기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크게 순종하는 것이다. 그 귀한 일을 가벼운 농담으로 무가치하게 만드는 생각에 함께 휩쓸려서는 안 되겠다.

젊은이들은 결혼을 두려워 말라. 최소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이들이나, 실패했다고 그 가치를 폄하하는 사람들의 절망에 위축되지는 말라.

사람은 늘 성공하는 길, 옳은 길만 가지 않는다.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길, 그리고 옳은 방향이면 걸어보고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그 길이 바로 결혼이라는 가장 축복된 길이다.

잘못하고 잘못되는 것은 ‘결혼’이라는 거룩한 명령 자체의 문제가 아님을 반드시 기억하시길.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등 40여 종
https://blog.naver.com/woogy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