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다
조종과 통제가 안 되면, 분노로 상대 공격해
후회하며 더 사랑해야겠다 결심하는 악순환

중독과의 이별
중독과의 이별

노상헌 | 홍성사 | 260쪽 | 14,000원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 기독교인이라는 것, 또는 기독교 지도자라는 것만으로 중독과 관계없으리라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비록 신앙적으로 열심인 가정 혹은 목사나 선교사 가정이라도 가족 간의 진솔하고 친밀한 교감과 소통의 부재로 인해 얼마든지 중독성 성격을 가진 중독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저자는 중독이 근본적으로 신앙보다는 ‘건강하지 않은 가족 관계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도 ’중독성 성격’을 갖고 있다고 고백한다.

세속적 성공을 바라던 아버지, 신앙적 집착과 모성애로 가득했던 어머니 사이에 끼어 있었던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의 예를 들면서, “이런 목적 지향적 사랑에서 진솔한 친밀감과 유대감이 싹트기는 어렵다”고 진단한다. 3남매 중 장남이었던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동생들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는데, 이를 정서적으로 먼 가족(distant family)이라 부른다.

어거스틴은 청년기에 쾌락과 성적 충동으로, 청장년기에 세속적 성공과 지성의 화신이 되어 양심의 질책에도 그런 삶을 계속 유지하던 ‘중독적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면의 공허함과 갈등이 깊어졌다. 깊은 좌절과 탈진 사이에 있던 그를 깨운 것은 아이들의 노래 소리였다.

그때 읽은 성경 말씀, 로마서 13장 13-14절을 통해 그의 삶은 ‘중독에서 자유하게 되는 삶으로’ 급진적 전환을 하게 된다. 이처럼 오랜 자구적 의지와 노력에도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해 절망 가운데 거의 죽음에 이른 사람들에게,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 전격적인 치유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중독자나 치유 전문가 모두에게 신비로운 일이어서, ‘순전히 영적’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고 한다. 저자는 “건강하지 않은 가정에서 오는 중독 문제가 순전한 영성의 세계를 경험함으로 해결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 말씀이 문자 그대로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다음은 자신의 중독적 성격에 대해.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문제와 의문의 삶을 사는 과정 속에, 제가 중독성 성격을 가진 중독자임을 발견했다”며 “사회적으로 중독자와 차이가 있음에도, 저는 기꺼이 ‘나는 중독자입니다’라고 고백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자기 연민에 근거한 구원자 중독, 불안과 초조 중독, 완벽주의와 통제광, 무엇이든지 하지 않으면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아드레날린 중독, 자기 의(self-righteousness), 의분, 성공과 자기 자랑, 판단, 시기와 질투, 은밀한 쾌락 추구, 그리고 아이러니한 자학 등 헤아릴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중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알코올, 마약, 도박, 인터넷, 성(性) 등 현대인들은 각종 유혹에 잠재적 중독자로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쇼핑과 게임, SNS에 과의존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중독은 대를 이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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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2장까지 현상을 소개한 저자는 3장부터 본격적인 진단과 처방, 해결에 나선다. 중독은 ‘특정 물질이나 행위로 기분 전환(조절)을 위해 사용하던 것이 이제는 오히려 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기본을 조절하려다 오히려 그것에 완전히 조절당한 상태,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가 되는 것. 정신적 의존성과 내성, 금단현상 3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면 ‘중독’으로 판단한다.

호르몬과 스트레스 등 중독의 원인과 함께 갖가지 중독이 등장하는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주의해야 할 중독은 ‘동반 중독’이다.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장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돕는 일에만 전념하면서, 자신의 의미와 의(義)를 경험하는 상태를 말한다.

중독자는 동반 중독자에게 의존하고, 역으로 동반 중독자는 중독자에게 의존된 관계이다. 그들에게는 강박적으로 돌보아야 할 중독자나 문제 인물들이 있어야 한다. 의식적으로는 상대가 건강해지기를 원한다고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상대가 그 문제에서 벗어나길 원치 않는다.

동반 중독자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다, 상대가 자신의 생각대로 따라오지 않고 조종과 통제가 안 되면 분노로 상대를 공격하는데, 이는 상대에게 다시 중독 행위를 하게 되는 구실을 준다. 그러고는 후회를 하며 다음에는 더 사랑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결국 이 악순환을 반복하며 벗어나지 못한다.

저자는 “동반 중독은 일종의 자학적 사랑이다. 자기 방치와 학대적 사랑으로, 성장 과정에서 방치와 학대를 경험한 경우 그 이상 자신을 대할 수 없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나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대리만족을 느낄 뿐, 자기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 능력이 없다”며 “사도 바울의 말처럼 엄청난 헌신과 희생이 있다 해도, 사랑이 아닐 수 있다(고전 13:3). 동반 의존이 바로 그런 경우”라고 설명한다.

중독이 정서적 결핍과 뇌 호르몬 작용의 복합 결정체임을 설명하면서도, 저자는 ‘불완전함의 영성’을 제안한다. 중독의 치유와 회복은 불완전한 자기와의 끊임없는 만남과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경험하는 긴 과정이라는 것. 물론 심리적 치료나 약물치료도 필요할 수 있다.

“인간은 무엇에든지 중독되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기쁨과 행복에 중독된 존재입니다. ‘자신과 타인을 살리는 중독이냐 혹은 파괴시키는 중독이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유일한 중독, 예수 중독이 아닐까요? 온전한 사랑은 오직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이제 두려움을 떠나 사랑의 집으로 매일 주저함 없이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