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부교역자로 청년 사역하고 있는 노재원 목사의 글을 연재한다. 노재원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연세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졸업(석사)했으며, 현재 ‘알기 쉬운 성경이야기’, ‘기독교의 기본 진리’, ‘영화를 통해 읽는 성경이야기’, ‘대중문화를 통해 읽는 성경이야기’ 등을 유튜브를 통해 연재하고 있다.

부엌의 미래
노재원 목사의 <성경으로 공간 읽기> #11


부엌의 미래
부엌데기

집 안에서 부엌이 어디에 위치해 있나요? 일반적으로 부엌이란 북쪽에 있습니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흔하기 전에는 음식이 상하지 않게 하려고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북쪽에 부엌을 두었죠. 볕이 잘 드는 남쪽에는 거실이나 안방을 두다 보니 자연히 부엌은 우선순위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식을 마련하는 힘들고 지저분한 일이 거실에 최대한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엌은 집안 한구석에 마치 천덕꾸러기처럼 위치해야 했던 것이죠.

부엌의 위치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도 무관하지 않은데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시절, 부엌일이란 대부분 여성의 몫이었고, 자연히 집 안에서 가장 안 좋은 위치에 부엌이 배치되었습니다. 집에 손님이 오더라도 남자들은 거실에 모여 있고 여성들은 부엌에 모여 함께 음식을 준비하며 대화를 나누는 게 보통이었죠. ‘부엌데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엌은 후지고 천대받는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주로 활동하는 여성도 함께 홀대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겠죠.

‘부엌데기’를 떠올릴 법한 이야기가 성경에도 등장합니다(누가복음 10:38~42). 예수님 일행이 어느 마을에 들어갔을 때의 일입니다. 마르다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들였죠. 마르다는 예수님 일행을 접대하려고 분주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음식을 마련하느라 부엌에서 바쁘게 일을 했죠. 마르다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언니가 접대 준비를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을 뿐이었죠.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의 태도에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가서 ‘내 동생이 나 혼자 모든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는데도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나를 좀 도와주라고 하십시오!’ 이렇게 원망 어린 불평을 하죠. 두 자매와 예수님 사이에 일어난 이 에피소드는 이미 2천 년 전에도 부엌이라는 공간이 가정의 중심으로부터 빗겨나 있는 공간이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부엌의 위상과 위치에도 변화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과 같아지면서 지금은 남자든 여자든, 가족 중 누구나 부엌일을 합니다. 마치 놀이를 하듯 요리를 즐기는 문화도 생겼죠. 그러면서 부엌의 위상과 위치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부엌이 중요한 공간으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이죠.

종전에는 싱크대가 벽을 바라보게 되어 있어서 부엌일을 하는 동안에는 가족과의 소통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거실 쪽을 바라보며 요리할 수 있도록 주방가구들이 고안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예 완전히 개방된 소위 ‘오픈형 주방’이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심지어 주방을 쿠킹 스튜디오처럼 꾸미기도 하지요.

요리 문화가 확산되면서 부엌이란 음식을 ‘하는’ 행위와 ‘먹는’ 행위가 함께 이뤄지는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자연히 온 가족이 모이는 밝고 환한 단란의 장소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지요. 드물기는 하지만 부엌이 집의 한가운데 있거나 집에서 가장 좋은 공간이 되게 하려는 시도도 있구요. 남향에 거실을 두는 게 아니라 부엌을 두는 파격적인 주택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주방에서 접대 준비를 하느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음식 준비할 것이 많아 ‘마음이 분주했다’고 한글 성경은 번역하고 있는데요. 헬라어 원문을 보면 ‘페리에스파토’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주의력을 산만하게 하다’라는 뜻인데요. 마르다 역시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려 했지만 일이 많아서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런데요, 만약 지금이라면 어떨까요? 요즘 유행하는 오픈형 주방이라면 거실에 모신 예수님과 소통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남향에 마련된 근사한 주방 겸 거실에 모두가 둘러앉아 예수님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겠구요. 마르다는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배달시키고 예수님 곁에 앉을 수도 있겠죠. 설령 부엌이 막혀 있더라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고 듣지 않을까요?

부엌의 변화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변화된 양상을 반영합니다. 부질없고 불경스러운(?) 상상이긴 하지만, 예수님께서 지금 마르다의 집에 초대받으신다면, 이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을까요?

“마르다야, 너희 집에서 부엌이 제일 좋다지? 거기서 모두 모이렴. 내가 복된 소식을 들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