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산불, 홍수와 전염병 앞에 무력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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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재난으로 가득한 뉴노멀(1)

재난과 질병 앞에서 무력함 절감하는 경험,
인간 종교적 감각, 신앙 향한 관심 일깨워
인간 기술력·정치력에 모두 내맡기는 태도,
종래에 환멸로 끝나고 날 것… 통제 불가능

▲터키 각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산불.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각지에도 대규모 산불이 확산 중이다. 기후변화가 일으킨 재해로 여겨지고 있다. ⓒYTN 캡처

▲터키 각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산불.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각지에도 대규모 산불이 확산 중이다. 기후변화가 일으킨 재해로 여겨지고 있다. ⓒYTN 캡처

◈재난과 인간: 대규모 재해와 전염병 앞의 인간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상황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서유럽의 독일과 베네룩스 3국은 1,000년만의 최대 홍수를 맞이해 162명 이상이 사망하고 1,300여 명이 실종된 아픔을 겪었다. 중국 역시 정저우 시에서 발생한 홍수로 상당한 인명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반대로 유럽 남부와 아메리카 대륙 서부는 심각한 가뭄으로 대규모 산불이 일어나 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와 터키,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난 화마는 가뭄과 물 부족으로 인해 그 세를 계속해서 넓혀가고 있다.

한국은 역대 1위를 기록한 2018년의 더위를 능가하는 폭염을 맞이했다. 일 평균 기온이 30도를 넘는 시기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올해의 폭염 시기는 지나갔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폭염이 향후 10년간 거의 매년 반복되거나 혹은 더 심한 더위가 오는 해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와중에 코로나 확산세는 더 강해지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델타 변이 확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 역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루 확진자 2,000명을 넘는 코로나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올해 전반기에 장담했던 것과 달리 백신 확보에 실패해 접종률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 억압적 방역조치는 더 심해지고, 예배 또한 부당하게 제한을 당해 교회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처럼 환경의 변화로 인한 거대한 재난, 그리고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역병의 창궐이 많은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대응 자세이다. 이런 재난이나 역병은 인간의 대응책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껏해야 그 피해를 일정 부분 완화시키는 수준이다.

▲한국에서 계속 증가 중인 코로나19 하루 확진자 수. ⓒ구글

▲한국에서 계속 증가 중인 코로나19 하루 확진자 수. ⓒ구글

재난과 질병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하는 경험은 인간의 종교적 감각, 신앙을 향한 관심을 일깨운다.

이는 단순히 당장의 위기를 극복할 초월적인 힘에 대한 의존의 심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구원과 생존을 위한 열망 이전에, 인간 스스로를 아득하게 능가하는 재난 앞에서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막막한 허무감과 무상함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급습하는 거대한 재난, 거기에 스치기만 해도 자신의 목숨은 안개처럼 흩날리게 된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 죽음이라는 옷을 입은 극도의 허무가 마음을 압도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허영이 가득 낀 욕망들을 녹여버리고 인간의 삶의 초라함과 미약함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한다. 우리 삶의 비루하고 고달픈 실재를 알아차리게 해 준다.

이런 자각은 우리가 신앙을 갖는 데, 혹은 믿음을 더 굳건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인간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줄 초월적인 존재, 즉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주목하게 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보더라도, 거대한 재난이나 정치적 격변, 전쟁과 학살, 기근과 역병의 시기에 기존 종교들이 강화, 갱신되거나 새로운 종교가 출현하는 일들을 숱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압도적인 무력감과 허무감을 느끼게 하는 상황의 변화 앞에서 초월성과 무한성을 절박하게 감지하는 종교적 감각을 가졌음을 입증하는 증거라 볼 수 있다.

◈재난과 신앙: 불가항력적 재난 속에서 신앙으로 나아가기

칸트 역시 유사한 입장에서 ‘숭고함의 감정’이 갖는 종교적 가치를 논한다. 그는 <판단력 비판>에서 재난이 될 가능성을 가진 만물의 광대한 힘 앞에서 인간이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존재의 숭고함을 자각한다고 밝힌다.

예를 들어, 인간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광폭한 바다를 멀찌감치 바라보면서 그 지경을 판단할 수 없는 막대한 힘이 자신을 짓눌렀을 때를 상상한다.

이렇듯 자신을 너무도 간단하게 죽음과 허무에 빠져들게 만드는 압도적인 힘 앞에서, 인간은 극도로 겸비하는 자세를 가지고 초월적이고 무한한 존재에 마음을 연다는 것이 칸트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무신론적 세계 이해가 득세하면서부터, 전지구적 재난과 재해가 숭고함의 감정을 일깨우는 계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인류의 기술력과 도덕적 의지를 통해 헤쳐나갈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사고가 엄습해온 무력감이나 허무감을 거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친환경 정책을 향한 의지를 천명하는 각국 지도자들의 행보는 마치 인류가 기후 변화를 방지하고 지구 환경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런데 현실은 냉정하다. 세계 각국 정부의 대응책이나 기술력이라는 것이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은 영화 <설국열차>에서 인류가 강력한 냉각제 CW-7을 의지하는 격이다. 영화 속에서는 인류를 지구 온난화에서 구해내기 위해 살포한 냉각제가 역으로 인류를 모두 얼어죽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lt;설국열차&gt;에서 전 세계가 얼어붙은 이유는 통제할 수 없는 지구온난화를 막으려 통제할 수 없는 냉각제를 살포했기 때문이다. 환경 변화에 대한 인간의 기술적 한계를 보여준다.

▲<설국열차>에서 전 세계가 얼어붙은 이유는 통제할 수 없는 지구온난화를 막으려 통제할 수 없는 냉각제를 살포했기 때문이다. 환경 변화에 대한 인간의 기술적 한계를 보여준다.

이는 현재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19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당장 우리의 상황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정권 지도부가 자신들이 기획한 방역수칙에 과도한 신뢰를 보이는 사이 상황이 급변해 확진자가 매일 급증하고 있는 중이다.

TV 시리즈 <더 라스트 쉽>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상황이 현실에 재현되고 있다.

작품 속에서도 막강한 전염력을 앞세운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인류를 휩쓸어, 일반인은 물론 정부 요인들마저 대부분 감염된다. 확실한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각국 정부의 방역 노력이나 치료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인간의 삶에는 관성과 점진성이 존재한다. 기존의 삶의 태도를 근본으로부터 전면적으로 한 순간에 뜯어고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원리는 집단으로 가면 더 분명해지고, 인류 차원으로 가면 거의 불가역적인 것이 된다.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인류의 삶의 방식이 정치 지도자들의 다급한 노력으로 즉각 변화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강력한 전염력과 살상력을 가진 바이러스로 인류 대다수가 멸망한 지구에서 백신 개발을 위한 임무를 받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줄거리의 TV 시리즈 &lt;더 라스트 쉽&gt;. 강력한 전염병을 정치적 수완을 통해 통제할 수 있다는 정치 지도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일깨워준다.

▲강력한 전염력과 살상력을 가진 바이러스로 인류 대다수가 멸망한 지구에서 백신 개발을 위한 임무를 받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줄거리의 TV 시리즈 <더 라스트 쉽>. 강력한 전염병을 정치적 수완을 통해 통제할 수 있다는 정치 지도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일깨워준다.

또한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성 전염병 상황이 갑작스러운 의학적 기술혁신에 의해 획기적으로 잠재워질 가능성도 희박하다. 이는 인간이라는 종의 실존적 한계에 기인한다.

인간의 기술력과 정치력에 삶의 모든 것을 내맡기려는 태도는 종래에 환멸로 끝나고 말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기술적 역량과 정치적 수완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노력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우리 삶을 둘러싼 각종 위기와 고난과 재해를 모조리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넘어서 있는 존재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고 신앙으로 마음을 돌리는 계기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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