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버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내 헐버트 선교사의 묘.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I would rather be buried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는 글귀가 쓰여 있다. ⓒ크투 DB
1세기 전, ‘편도 선교사들’(one-way missionaries)이라고 알려진 일단의 용감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갔다가 돌아올 왕복 배표가 아닌, 선교지행 편도 표만 구입하여 짐 가방 대신 단출한 개인 물품만을 미리 준비한 관 속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항구를 빠져나가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선교사들 중 밀른(A. W. Milne)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꿈은 남태평양 뉴헤브리디스(New Hebrides) 제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거기 원주민들은 앞서 파송했던 모든 선교사들을 살해한 잔혹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그곳으로 가려 했다. 그를 아는 지인들은 모두가 “얼마 못 가서 죽을 터인데 왜 가려고 하느냐”며 극구 만류했지만, 그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어째서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떠나기 전, 자신이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선교지 편도 배표만 구입해서 뉴헤브리디스로 떠났다. 그의 짐은 자기 시신을 담을 수 있는 ‘관’ 하나와 단기간 사용할 간단한 일용품뿐이었다.

그는 항구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장례식을 하는 것처럼, ‘소식이 없으면 죽은 줄 알라’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에콰도르 아우카 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모두 피살된 짐 엘리어트 선교사와 4명의 동료들 이야기와 매우 흡사한 사람의 리얼 스토리이다.

물론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밀른은 짐 엘리어트 일행의 케이스와는 달리 원주민들에게 살해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그 섬에서 35년 동안 원주민을 사랑하며 선교하여 많은 교회와 신자를 세우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원주민들은 마을 한 가운데 큰 무덤을 만들어 그를 묻고 묘비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새겼다.

“그가 왔을 때 빛이 없었다.
그가 떠났을 때 어둠이 없었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내용이다.

과거 미주신보에 실렸던 대조적인 실화 하나가 떠오른다. 한때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했던 미주 한인 교회가 분란 속에 휩싸였다. 교인들이 시험 들어 교회를 떠나게 되니 하루아침에 교세가 팍 줄어, 작은 교회가 되고 말았다.

다름 아닌 원로 목사의 은퇴 사례금과 관련되어 벌어진 내홍이었다. 그는 은퇴 사례금으로 교회에 300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한다. 한 은퇴목사의 지나친 개인 욕심이, 행복했던 교회를 불행한 교회로 만들어 놓고 만 것이다.

만일 이 은퇴 목사가 죽고 나서 교인들에게 그를 위한 비문의 글을 새기라 했다면, 어떤 내용의 글이 새겨질까? 아마도 이런 내용이 되지 않았을까?

“그가 왔을 때 어둠이 없었다.
그가 떠났을 땐 빛이 없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를 위해 어떤 비문이 새겨졌으면 좋겠는가?

빌립보서 2장 1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세상에서 죄 많은 불신자들 가운데, 빛으로 나타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먼저 흠이 없고 순전해야 한다.

우리 무덤 비문에 새겨질 내용으로 다음 두 글보다 더 멋진 문장이 또 있을까?

“그가 왔을 땐 빛이 없었다.
그가 떠났을 땐 어둠이 없었다.”

아멘!

신성욱
▲신성욱 교수.
신성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