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심
▲말라위의 나이팅게일로 불리는 백영심 간호사. ⓒ유튜브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

“그리고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린도전서 4:2)”.

오늘은 ‘작은 예수’로 하늘이 내린 천사 두 분을 소개해 드립니다.

1990년 9월 김포국제공항 출국장, 당시 28세이던 백영심 간호사가 아프리카 케냐로 의료선교를 떠나던 날이었습니다. 백 간호사의 부모님은 공항 바닥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주저앉아 망연자실하며 엉엉 울었습니다.

백 간호사는 2남 4녀 중 셋째 딸이며, 제주 조천읍 ‘함덕’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제주에서 마쳤습니다. 제주 섬에서 육지로 내놓는 일만 해도 조마조마한데, 결혼도 안 한 귀한 딸을 아프리카 험지로 보내는 부모님과 가족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당시 백 간호사를 아프리카로 파송했던 한국교회에서는 그가 금방 돌아올 줄 알았지만, 그녀는 현지인들이 자신을 부르는 애칭인 ‘시스터 백’으로 케냐에서 4년, 나머지 세월은 아프리카 중에서도 최빈국이라 부르는 말리위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월급을 쪼개고 아껴 말라위에 유치원, 초등학교, 진료소를 지었고, 200병상 규모의 최신식 종합병원인 ‘대양 누가병원 간호대학’ 설립을 주도하였습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백 간호사는 2012년 이태석상, 2013년 스위스 적십자국제위원회에서 2년마다 시상하는 나이팅게일 기장, 2015년 호암상, 지난해 8월 성천상을 각각 수상하였습니다.

성천상 수상을 위해 서울에 돌아온 백 간호사의 첫 인사말은 “저는 인터뷰할 만한 사람이 아닌데”였습니다. 겸손하기까지 한 백 간호사가 그날 입은 원피스는 후배가 시상식날 입으라고 선물해준 옷이었습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 각자 주어진 길을 가는 것처럼, 저도 제 길을 가는 것뿐이지 언론에 나올 만한 일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참으로 용기 있는 겸손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 간호사는 아프리카로 의료 선교를 떠날 당시 교회 청년들이 모아준 300달러(약 36만원)와 병원에서 근무하며 받은 퇴직금뿐이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머나먼 이국 땅 아프리카 험지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순교자 손양원 목사가 계셨던 애향원을 방문했던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 맡은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하늘이 내린 천사’ 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습니다.

각 교회학교는 아이들에게 양화진이나 애향원 등 기독교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앵무새처럼 이론으로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순교의 현장을 답사하면서 당시 있었던 사실들을 상세히 소개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나라와 민족, 그리고 이웃을 위해 일하는 귀한 일꾼으로 자라나게 해야 합니다.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가 너무 수치스러워, 지금의 정치를 정치라 말할 수 없다는 전 국회의원의 글을 보고 필자는 뜨거운 가슴으로 글을 적어 내려갑니다. 연일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며, 약 2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우리가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무더운 여름 밤입니다.

4년간 이 정권의 나라 경영을 보면서 땅을 치고 한탄한 것이 수십 번입니다.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보낸 이 전 의원은 상식이 통하고 사람답게 사는 대한민국으로 국민 대통합을 이루어,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을 보고 싶다고 썼습니다. 아마 필자를 비롯한 모든 국민들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페이스북
그래서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최재형 전 감사원장입니다. 인간 최재형은 “작은 자, 보잘 것 없는 자를 진심으로 섬기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요즘 그 주변에서 ‘대쪽’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린다고 합니다. 개원 72주년을 맞은 감사원을 이끄는 수장 최재형에게서, 과거 ‘율곡사업’과 ‘평화의 댐’ 감사를 진행하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까지 겨냥했던 감사원장 선배 ‘이회창’의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특히 최 원장은 대쪽 같은 분이시지만 투명하고 정직하며, 리더십과 친화력, 조직력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가슴이 따뜻하고 온유하신 분입니다. 또 남의 말을 잘 경청하는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 최재형을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정치적 의미 부여를 배제하고, 주변인의 증언과 자료 등을 통해 ‘인간 최재형’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들여다 본다면, 직무수행과 인품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인간 최재형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 전 장관도 최재형 씨를 감사원장 적임자라고 추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문재인 정부 탄생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자신이 감사원장직을 맡는 게 도의에 어긋난다고 판단하여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구나!

민정수석인 조국은 “의사와 상관없이 후보로 추천하겠습니다. 많은 분을 검증했지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사람은 원장님이 유일합니다”라며 그를 발탁했습니다.

‘신이 내린 인간’이란 극찬까지 받았던 최재형 원장은 소위 엘리트 코스인 명문고와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13기 수료 후 줄곧 판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엘리트는 인간미와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최재형 원장은 거기에 더해 철저한 원칙주의자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습니다.

원전 감사를 놓고 일어났던 정치권의 파상공세에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았던 그의 모습과 행동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인간 최재형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최재형 원장과 오랫동안 교류한 지인들은 그를 ‘신이 내린 인간’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그가 감사원장에 발탁되자, 다수 언론은 그와 관련한 미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의 부친인 최영섭은 해군사관학교 부교장을 지낸 예비역 해군 대령입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부친은 한국해양소년단연맹 고문을 지냈습니다.

최재형 원장은 최영섭 대령의 4남 중 차남입니다. 최영섭 대령은 우리 해군에서 신화적인 존재였습니다. 6,25 전쟁 발발 직후, 우리 해군이 북한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에서 승리한 대한해협 해전의 실질적 주역으로, 6.25 전쟁 최초의 해전이자 첫 승전보를 전한 분이셨습니다.

특히 최재형 전 감사원장 집안은 병역 명문가로서 국가관은 투철하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현재 최 원장의 두 아들은 각각 해군과 육군에서 복무했거나 복무를 하고 있습니다.

최재형 원장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기독교’라고 합니다. 최 원장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며, 그를 평가할 때 주로 종교와 연결지어 설명합니다. 그만큼 기독교 정신은 최재형 원장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큰 요소로 작용을 했습니다.

그가 교회를 다니게 된 배경에는 부모가 있었습니다. 부모는 동교동 인근 신촌장로교회에 출석했으며, 최 원장도 자연스럽게 그 교회를 다녔습니다, 신촌장로교회 장로인 최 원장은 감사원장에 임명된 후 휴무 장로가 됐고, 아내 이소연씨도 권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최재형 원장은 교회에서 평생 지기 강명훈 변호사를 만납니다. 최 원장이 학창시절 소아마비 친구를 2년간 등에 업고 등교했다는 일화는 이미 알려진 그대로입니다. 이 일화 속 친구가 바로 강명훈 변호사입니다. 그들의 피보다도 진한 우정은 1981년, 두 사람이 나란히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 큰 화제를 낳았습니다.

소아마비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강명훈 군과, 강 군을 고등학교 시절부터 업어서 등·하교시키며 같이 공부해온 최재형 군이 나란히 사법시험 2차에 합격하기까지는, 우정이라 표현하기에는 너무 힘든 고뇌가 있었습니다.

명훈 군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가 되었을 무렵, 재형 군은 몰래 기도를 했습니다. 이왕이면 명훈이가 자기가 다니는 경기고에 입학해서 같이 도와가며 공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기도 덕분인지 명훈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재형 군은 스스로 명훈 군의 지팡이가 되리라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합니다. 소아마비인 명훈 군은 학교 기숙사로 들어갔는데, 재형 군은 눈 오는 날 강의실까지 가기 어려울까 아침 일찍 찾아와 주었다고 합니다.

명훈 군은 그런 재형 군을 볼 때마다 성경 로마서에 나오는 구절을 외웠다고 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로마서 1:14)”.

최재형 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강명훈 변호사와 둘이 같은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은 앞으로도 서로 도우라는 하나님의 계시인 것 같다”며 “앞으로 저나 명훈이나 많은 문제에 부딪히겠지만 훌륭히 극복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강명훈 변호사는 당시 기자에게 최재형 전 원장과 고등학교뿐 아니라 사법연수원 2년간도 함께 통학했다며, 최 전 원장의 선행은 잠시의 것이 아닌, 진심으로 장기간 친구를 도왔던 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재형 전 원장은 몸이 아픈 친구를 도왔던 일이나 아이 둘을 가슴으로 낳은 일 모두,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의 힘 덕분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무리 선한 일이라 해도, 아버지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안타까웠을 법도 했을 것입니다.

최재형 전 원장이 오랫동안 출석해온 신촌장로교회 남진희 목사에 의하면, 그는 삶과 신앙이 일치하시는 장로입니다. 요즘 한국교회 내에서 장로라 하면 덕스럽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장로는 어떤 계급처럼 일반 성도들과 다른 계층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최 장로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남진희 목사님은 “다른 교회에서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봤다. 저는 그분들의 인품을 대부분 학습된 겸손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며 “그에 비해 최재형 장로님은 참 보기 드문 장로님이시다. 장로님은 신앙이나 삶이 괴리되지 않고 항상 일치하는 분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 해도, 가까이서 보면 흠이 보이기 마련이지만, 근데 이 분은 아니에요, 늘 한결같이 소탈하신 분이다. 이 분은 자기만의 분명한 원칙이 있고, 그게 일관되다”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남 목사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올해 초 우리 교회 집사님이 돌아가셨을 때입니다. 이 집사님은 변변찮은 직장도 없고, 가족도 몸이 안 좋은 아들만 있는 분이셨어요. 보시다시피 우리 교회는 굉장히 서민적인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그 집사님께 잘 보인다고 어떤 이득을 얻을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최재형 장로님이 그 분 장례식장에 오셨습니다. 현직 감사원장이 장례에 오신 거죠, 이미 조화를 보냈음에도 얼굴만 내밀고 가신 게 아니라, 계속 자리를 지키셨어요! 장로님은 교회 내의 모든 경조사, 특히 조사엔 빠짐없이 다 참석을 하십니다.”

이 밖에도 많은 일화가 있다고 합니다. “최재형 장로님은 소탈하다는 말로는 좀 부족합니다. 그냥 적선하듯 베푸는 게 아니라는 거죠, 보통 사람들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호흡하고 생활하는 그런 장로님의 모습에서, 우리도 완전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이렇게도 전했습니다. “기독교에는 ‘작은 예수”라는 말이 있어요. 예수님이 그랬듯 작은 자, 보잘 것없는 자를 진심을 다해 섬기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아마 최재형 장로님이 그런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인 이소연 권사도 남편처럼 신앙심이 두텁다고 합니다. 서울 동대문 근처 고아들을 기르는 기관에서 봉사를 하던 중 핏덩어리를 맡아 1년 정도 봉사 차원에서 키웠는데, 정이 많이 들어 결심했다고 한다. 나이 50줄에 접어드는데도, 가슴으로 두 아들을 낳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일화는 모두의 가슴에 심금을 울리는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요?

요즘처럼 기독교를 우습게 여기며 천대시 하는 마당에, 이런 좋은 장로님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기독교의 위상이 전처럼 회복될 기회가 올 것 같기도 합니다.

천주교 주교였던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신 후 천주교인들이 늘어난 것처럼, 이번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등장으로 기독교가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 이 땅의 교회 장로님들도 최 장로님의 삶을 표본으로 삼아 이 땅이 복음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29)”.

예수님의 고별 설교에서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삶에 기적이 없는 것은, 사랑과 희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사랑과 희생은 없고, 그저 입으로 외치는 메아리로만 들릴 뿐, 사랑의 그림자조차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내로남불’이 만연한 현 정권을 보고도 아무 말이 없고, 정의와 공정이 사라지는데도 자신들의 안의와 평안만 누리는 이 시대 사람들과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빌라도의 뜰에서 고초를 당하심과 갈보리 언덕에서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처절한 아픔의 희생을 생각하며, 이 시대의 진정한 크리스천들의 행함이 없는 믿음을 한탄할 뿐입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천주교의 정의구현사제단들은 왜 작금의 시대에 함구하고 있는지요? 월남이 패망한 후 제일 먼저 처형당한 자들이 바로 정의구현사제단임을 왜 모르시는지요? 현 정부의 사회주의자와 좌파, 그리고 공산당을 지지하는 자들도 이 땅이 공산화되면 맨 먼저 처형되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를 모른 채 자신들의 이념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참으로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들이 장차 후손들에게 무슨 말로 변명을 늘어놓을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백영심 간호사와 최재형 전 감사원장 같은 ‘하늘이 내린 천사’가 있기에 이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든 크리스천들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의 숭고한 믿음과 사랑을 본받아, 날마다 나를 내려놓는 겸손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천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