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주택’은 우리가 지닌 한국 사회의 욕망을 드러낸다
더 나은 대학, 더 나은 직장, 더 나은 아파트…
모두 자신만 생각하고 올라갈 생각만 하면서 살아갈 때,
어른이 무엇인지,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소설이 있다

순례 주택 보면서, 초대교회 공동체도 가능할 것 같아

작가는 어른은 누구인가를 나이로 설명하는데
진짜 어른은 건강하게 자립한 사람이 아닐까
이 소설은 청소년 소설이지만, 어른이 읽어야 한다
깨끗한 돈을 선택할 것인가, 많은 돈을 선택할 것인가?
“내가 번 게 내 돈 아니야. 내가 벌어 내가 쓴 것만 내 돈이야”

순례 주택

순례 주택
유은실 | 비룡소 | 248쪽 | 13,000원

자기 인생을 관광하듯 사는 이가 있다. 엄마와 아빠와 언니다. 이들은 1군이라 불리는데, 얹혀사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반면 주인공 오수림(중3)은 다르다. 자기 힘으로 산다. 세신사 출신인 김순례 씨를 보며 배운 덕분이다.

그런데 1군의 삶이 뒤집혔다. 할아버지의 유산인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면서 뒤늦게 배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걸.

◈전성기

요즘은 70대도 청춘이다. 이제는 누구나 자기만의 콘텐츠만 있으면 유튜버가 될 수 있다. 그걸 박막례나 밀라돈나를 보면서 느낀다. 동시에 「미나리」로 뜬 윤여정 씨를 보면서도 느낀다.

이런 자기 주도적인 삶을 『순례 주택』 속 김순례 씨가 산다. 그는 이혼 후 세신사 일을 하며 아들을 키웠다. 그때는 사는 게 얼었다 녹았다 하며 더 단단해지는 여문 홍시 같았다. 지금은 은퇴한 뒤 순례 주택을 무대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전성기 하니, 생각나는 게 있다. 나는 인생의 전성기가 20대나 30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지금은 죽을 때까지가 전성기라고 여긴다.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다. 우연히 보게 된 방송에서 금보라 씨가 후배에게 한 조언을 듣고부터이다. 후배는 배우 신이다. 여우조연상도 두 번이나 받았지만, 1978년생이다.

젊고 재능있는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니, 설 자리가 줄었다. 위축된 후배에게 금보라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늘도 전성기야. 인생의 전성기란 네가 숨 쉬고 있는 그 순간이 전성기야. 네가 살아 있는 게 전성기야. 작품 많이 찍고 광고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가 전성기야. (2020년 9월에 방송, 채널 A 「아이콘텍트」에서 금보라 씨가 한 말.)”

금보라는 명쾌한 답을 주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런 모습을 김순례가 보여준다. 세신사로 살면서 10년 만에 자기 집도 장만했다. 그만큼 치열하게 살았기에 자기만의 주관이 있다.

가난하게 사는 건 싫지만, 더럽게 돈을 버는 것도 싫어한다. 남편과 이혼한 것도 그 때문이다. 고리대금업을 하는 게 싫었다. 아들이 자신의 반대에도 전 남편의 유산을 받자, 자기 집은 국경없는의사회에 기증하기로 공증을 했다.

이 소설은 청소년 소설이지만, 어른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처럼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독교 작가라서 그런지, 팍팍한 삶에 어떻게 쉼표를 찍는가를 잘 아는 것 같다. 작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소나기처럼 쏟아져도 그것을 받는 그릇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그리고 그 차이가 삶의 무늬를 어떻게 다르게 그려가는가를 ‘순례 주택’ 속 사람들의 삶으로 보여준다.

서울 상공 아파트 부동산 남산 하늘 시내
▲남산에서 내려다본 서울. ⓒ크투 DB

◈갑질

갑질은 신조어지만, 여기서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안다. 힘 있다고, 돈이 많다고 약자에게 무례하게 행동한다. 그들이 하는 천박한 폭력이 갑질이다. 개인이 갑질을 하기도 하고 기업의 소유주가 하기도 한다.

이전에는 ‘을’이 참았다. 하지만 이제 더는 참지 않는다. SNS나 유튜브 같은 미디어 덕분에 약자도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약자도 힘의 균형을 자기 나름대로 찾아간다. 이걸 『순례 주택』이 보여준다.

화자인 수림은 자신을 2군 후보라고 여긴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와 언니를 1군이라고 부른다. 1군과 2군이 핏줄로 이어졌지만, 수림은 아파트에 있을 때보다 순례 주택에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다.

순례 주택은 거북 마을에 있다. 아파트촌 아이들은 거북 마을 빌라에 사는 아이들을 ‘빌거지’라고 놀린다.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저녁 뉴스에도 보도가 되었다. 모자이크 처리된 어른이 화면에서 등장해서 말한다.

“솔직히 말해서, 빌라촌 애들이 관리가 잘 안 되는 건 사실이잖아요. 부모 입장에서 솔직히 말해서, 빌라촌 애들과 어울리는 게 걱정됩니다. (28쪽)”

이 어른이 수림이 엄마다. ‘솔직히 말해서’라는 독특한 말버릇 때문에 들켰다. 그런 엄마의 마음이 아프다. 자기 거로 여겼던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39평이나 되니 아플 만하다.

하지만 수림은 엄마보다 외할아버지가 더 안타깝다. 환기도 잘 안 되는 주택에서 10년을 사시다 돌아가셨다. 매달 딸에게 보낸 생활비도 4억 2,370만 원이나 된다. 안타까운 건 죽기 전 사기를 당하셨다는 것.

이 모든 걸 오수림은 알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자신이 아파트에서 누리는 것들―가령, 산이 보이는 넓고 환한 집, 내 방, 좋은 음식, 학원 등―이 할아버지가 힘들게 일해서 번 덕분인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빠가 고모들에게 의지해서 사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외할아버지의 지친 모습을 보는 게 불편하다. 수림이 참다 못해 엄마에게 뼈 때리는 말을 하고 만다.

“엄마, … 다른 걸로는 마음이 안 아파? … 사랑하는 아빠가, 이렇게 환기 잘 안 되는 집에서 십 년을 산 게? 그러게 왜 할아버지 집을 점거했어. 할아버지는 바람도 잘 통하는 아파트에서 하룻밤도 못 자고 죽었잖아. 자기 집인데. (127-128쪽)”

할아버지가 살았고 수림이 자란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는 ‘감사’라는 말을 달고 산다. 1군들에선 거의 들은 적이 없는 말이다.

순례 씨는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는 말도 했다. 순례 주택에선 서로 음식을 나누고 정을 나눈다.

먹을 게 생기면 옥탑방에 갖다 둔다. 가져다 먹으라고. 한데 부모가 사는 아파트촌 주민들은 거북마을 사람들을 깔보았다. 빌라촌이랑 섞여서 아파트값이 더디게 오른다고.

◈순례 씨

나는 순례라는 이름이 촌스러웠다. 지금은 그 이름만큼 예쁜 이름도 없다고 생각한다. 김순례 씨(75세)는 건물주다. 스물에 결혼하고 서른 다섯에 이혼했다. 아들이 하나 있다.

이혼 후 연애를 몇 번 했지만, 재혼은 하지 않았다. 이혼 후 세신사로 일하며 양옥집을 하나 샀다. 십 년 만이다. 근처에 지하철 역이 생기면서 시세가 배로 뛰고 도로 확장으로 보상금을 받아 순례 주택을 지었다.

순례 주택
▲<순례 주택>의 구조.

위 이미지는 순례 주택 구성도이다. 여느 빌라와 다를 바 없지만, 한 가지가 다르다. 이곳은 공동체다. 서로 간에 인간적인 정(情)이 있다. 서로 챙겨주며 살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순례 씨의 의지가 컸다. 순례 씨는 이름을 순례(順禮) 대신 순례(巡禮)로 바꾸었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다. 그 때문인지 돈에 관한 생각이 남다르다. 이렇게 말한다.

“내가 번 게 내 돈이 아니야. 내가 벌어서 내가 쓴 것만 내 돈이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못 쓰고 죽으면 어떡하지? (36쪽)”

그래서 돈이 생기면 쓴다. 한 달에 한 번씩 이웃들에게 쏜다. 그 이유를 수림만 알고 있다. 임대료도 싸게 받는다. 덕분에 미용실 원장 조은영 씨는 절망을 딛고 일어섰다.

이웃들은 그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생각한다. 14평 투룸 임대료가 고시원 월세 정도다. 보증금도 없으면 안 받는다. 그렇다고 월세를 더 받지 않는다. 그러니 대기자가 많다. 거북 분식 사장님은 5년째 대기 중이다.

순례 주택 사람들은 서민이다. 하지만 다들 열심히 산다. 순례 주택을 보면서 초대교회의 공동체(사도행전 4:32-37)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 씨 덕분에 돈이 없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리 곁에 순례 씨 같은 사람이 있다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리고 자랑할 게 비싼 아파트밖에 없는 인생처럼 초라한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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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어도 속상할 때가 있다. 전 남편이 갑자기 죽자 순례 씨 아들(55세)이 아버지의 유산을 받겠다고 했다. 대신 아들은 순례 씨에게 받을 순례 주택 상속을 포기했다. 17억을 포기한 것이다.

순례 씨는 아들에게 사람들 겁박하며 번 돈이니 기부하라고 했지만, 아들은 듣지 않았다. 고리대금업자 아들로 살았던 이 나라가 싫다며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그런 아들에게 순례 씨가 말했다.

“이 나쁜 자식아. 돈도 두고 떠나. 그래야 진짜 떠나는 거지. (196쪽)”

참 슬픈 순간이다. 55년 전 순례 씨가 결혼할 때 전 남편은 읍내 시계점 주인이었다. 그런데 장사가 잘 되어 돈을 벌자, 고리대금업을 시작했다. 십 년이 지났을 땐 꾼이 되었다. 이자를 못 내면 멱살을 잡고 때리며 겁박했다.

그런 손으로 자신을 안고 아들을 만지는 게 순례 씨는 끔찍했다. 그래서 이혼했다. 이걸 아들은 잘 알았지만, 아버지의 유산을 선택했다. 아버지 유산은 엄마가 가진 17억의 몇 배는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이 한 선택을 성경에서 찾는다면 롯의 선택(창 13:1-13)과 부자 청년(마 19:16-22)의 선택과 맞닿아 있다.

나는 아들의 선택이 안타깝지만, 내가 아들이었다면 상속을 받되 전액을 기부할 수 있을까, 묻는다. 나는 전액 기부할 거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그게 부끄럽다.

내 안에도 두 마음이 있는 것이다. 깨끗한 돈보다 많은 돈을 선택하는 마음으로 인해, 우리는 롯이 되기도 하고 부자 청년이 되기도 한다.

이정일
▲이정일 목사는 책에서 “하나님은 사소한 것은 즉답하시는데 반해, 정작 중요한 일에는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하지만 이러한 불면의 밤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성숙해지고 깊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이정일 교수
미국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석사를 받았다. 신학을 하기 전엔 영문학을 공부해 문학박사를 받았다. 박사 후 뉴욕주립대 영문과에서 미국 현대시를, 세계문학연구소에서 제3세계 작가들을 연구했다. 대학에서 세계문학과 영어를 가르치며 전방 포병대대 교회에서 군(軍) 선교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