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연애 연인 부부 다큐 거리두기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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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남녀인 연인 사이, 부부 사이를 말할 때는 습관적으로 ‘어떻게 하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에 대해 말하게 된다. 관계를 회복하고, 더 친밀해지고, 더 거리를 좁히는 방법에 대해 골몰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방향성과 지향점은 타당하다. 그런데 그 ‘가까움’을 자꾸만 물리적인 가까움, 표면적인 가까움으로만 생각하면, 오히려 실패할 때가 있는 것 같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원리는 당연하다. 물리적 거리는 마음의 거리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아예 일정 기간 떨어져 지내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부부나 연인은 매일 보거나 같은 공간에서 매일 함께해야 할 만큼 가까울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일심동체라는 것이 항상 가까운 곳에서 늘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건강한 커플은 각자의 존재와 함께하는 관계도 건강한 사이일 것이다.

요즘은 재산 관리도 따로 하는 등 의외로 많은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지만, 반드시 어떤 형식이 바람직하다기보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되, 멀어지는 것 같지만 또 다시 가깝고, 너무 다가오는 것 같지만 다시 거리를 유지하는 바다의 밀물과 썰물처럼 자연스러운 관계가 좋을 것이다.

감염병 사태에서 거리두기를 하는 이유는 물론 바이러스 때문이다. 바이러스를 지닌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으므로, 공동체 전체가 거리를 두는 것이다. 확진자가 늘어나도 한동안 거리를 두면 사회가 다시 건강해지고 감염 두려움에서 조금 벗어나게 된다.

무작정 거리두기를 강화하거나 도시를 봉쇄하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감염으로 죽는 사람보다 사회 갈등이나 경제 침체로 죽는 이들이 더 많다면, 거리두기의 궁극적 목적은 사라진다.

우리나라가 확진자가 제일 적은 국가가 아닌데도 세계가 거의 최고로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다 봉쇄하면서 감염을 줄이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거리를 더 두어야 한다는 의견과, 이러다 다 굶어 죽겠다는 의견 사이에서 얼마나 잘 조율하느냐가 관건이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이며, 정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마치 이와 같이 어떤 부부가 아예 떨어져 살면서 “우리는 부부싸움을 안 한다”고 자랑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예전에 어떤 노부부를 보았는데, 이 분들이 다투는 것을 단 한 번도 못 봤다. 알고 보니 각방을 쓰는데, 아주머니는 아저씨 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전혀 들어가 보지도 않는 것인지, 남편 방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도 몰랐다. 철저하게 남처럼 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남편이 특별히 미워서도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한 점의 애증조차 남지 않은 죽은 나무와 같은 사이였다. 그 집에는 출가한 자녀들이 자주 왔는데, 그게 아니면 두 사람은 같이 살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더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관계에서 발생하는 피곤한 일들이 싫어서 도시를 봉쇄하듯이 과도한 거리두기를 하면 도시가 기능을 잃듯이, 관계는 죽어간다. 이런 일은 무책임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관계를 정면돌파하지 않고 멀찍이 서서 관망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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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도 죄의 바이러스가 있어서, 다양한 결점과 해로운 기질을 지니고 있다. 시인 정호승이 물건을 의인화해서 쓴 어른을 위한 동화 중 과도(果刀)를 주제로 한 ‘상처’라는 것이 있다.

주인이 자주 쓸 일 없는 자신을 방치하고 홀대했다고 생각한 과도는 자신을 사용하는 사람마다 손에 상처를 낸다. 스스로에게 상처가 많아서, 누군가 다가오면 선제공격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과도처럼 자기를 지키기 위해 동반자에게 날카로움을 휘두르고, 그 상처에 바이러스를 옮기기도 한다. 그런 사람과는 악수보다 목례가 좋을 수 있다. 그래야 또 다른 상처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받은 상처를 치유해 줘야 건강한 관계를 오래도록 함께 유지할 수 있다.

좋은 의미의 ‘거리’는 여유를 의미한다. 세탁기에 빨랫감을 꽉꽉 눌러 담으면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적당한 여유와 빈틈이 있어야 물이 들어갈 공간이 생기고 비로소 빨래가 가능해진다. 사람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저소득층이 가정 폭력에 더 취약하다는 것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자주 확인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재산을 두고 소송전을 하는 등 법적 다툼을 벌이지만, 직접 가해하는 일은 많지 않다. 아마 돈으로 각자의 삶을 누리거나 위자료로 불만을 잠재우고, 소비하는 재미로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경제적 이유는 불화의 큰 원인이 된다. 사는 것이 팍팍하다는 단순한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쾌적하지 못한 작은 공간에서 복닥거릴 수밖에 없거나 각자의 공간이 없어 싫은데도 부대낄 수밖에 없다면 마찰이 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집을 넓히거나 구성원이 결혼과 독립 등으로 분리되는 것도 경제력이 가장 크게 좌우한다. 떨어져 살다가 필요할 때 만나면 화평할 수 있는 가족들도, 억지로 같이 살거나 오랜 시간 함께 있으면 다툴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을 보면 가족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관계 속 스트레스의 큰 축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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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를 생각할 때, 두 사람의 성향은 중요하다. 같이 있어도 마냥 편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모든 관계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어떤 친구들은 같이 생활을 해도 가족처럼 편한가 하면, 어떤 친구들은 너무 밀착돼 있으면 오히려 불편하거나 어색하기도 하다.

이것이 반드시 친밀도의 척도는 아니다. 가까울수록 지킬 것은 지켜야 오래가는 관계도 있는데, 그렇다고 마음이 먼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참된 관계는 위기와 어려움을 만났을 때 드러나는 것이지, 서로 가리는 것 없이 스스럼없다고 늘 가까운 것은 아니다.

적당한 긴장은 어떤 종류의 관계에서도 필요하다. 긴장이 풀어지고 모든 것이 편해지면, 선을 넘는 일도 이상한 줄 모르게 된다.

연인과 부부도 말을 가려서 하고, 매너를 지키는 등 지킬 것을 지킬 때 더 잘 유지된다. 대체로 너무 스스럼없는 관계보다 건강한 거리를 두는 관계가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이 분명하다.

드물지만 화장하지 않은 ‘생얼’을 남편에게 보여주지 않는 여성들도 있다. 예전에 주변 한 여성은 직장에서 MT를 가도 제일 먼저 일어나 화장부터 하고 있어 직원들도 그녀의 민낯을 본 사람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남편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고 좀 과한 측면도 있지만, 그 여성의 기준은 남편에게 화장 지운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었고, 그 규칙을 깰 때 관계에 문제가 온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런 일이 잘하는 것인지 과도한 것인지는 말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녀가 더 나은 관계를 위해 어떤 기준을 세우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것, 그리고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철저히 지키는 것은 좋은 자세다.

남성들도 이런 건 좀 배워야 한다. 편하다고 너무 거리를 안 지키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흐트러져 있으면 곤란하다.

한 설문조사에서 여성들에게 ‘남편이 언제 가장 섹시해 보이느냐’고 물었을 때 압도적 1위를 차지한 답변이 ‘그런 적 없다’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거리두기만 잘 해도, 바닥난 신비감을 아주 조금이나마 남겨둘 수 있다.

일정한 거리는 너무 가까울 때 보이지 않는 숲을 보여주기도 한다. 얼마 전 졸혼을 선언하고 따로 살던 작가 이외수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그의 부인이 다시 죽을 때까지 남편과 함께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재결합한다는 이야기다.

그들이 한동안 떨어져 있어 보지 않았다면, 그런 깨달음과 결정이 가능했을까. 아마도 계속 졸혼을 꿈꾸는 ‘애증’의 관계에서 애(愛)보다는 증(憎)에 방점이 찍힌 그런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을까…. 거리는 가까울 때 몰랐던 관계의 객관적 모습은 물론, 자기 마음까지 보여준다.

거리가 항상 멀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정답이 있다는 것도 아니다. 나와 그 사람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를 알면 좋다는 말이다.

매일 만나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의외로 가끔 만나야 좋은 사람도 있다. 직업상 늘 같이 있는 사람도 있고 주말 부부, 롱디 커플, 기러기 부부도 있다.

둘 사이의 거리를 결정할 때, 또는 어쩌다 정해져 버린 지금의 거리를 고려할 때, 현재 상황이 우리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진단하고, 너무 가까운 것이나 너무 먼 것을 어떻게 보완할지 잘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예수님도 무리를 떠나 홀로 계실 때가 있었듯, 늘 가까운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상대를 너무 가깝게 현미경으로 보면, 오점이 너무 많이 보여 사랑하기 어렵다.

역설적으로 한 단계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사랑을 좀 더 가깝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멀어서도 안 될 것이다. 나와 그 사람의 거리두기는 몇 단계인가? 너무 멀거나 가깝지는 않은가?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등 40여 종
https://blog.naver.com/woogy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