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많은 공간들 갖고 있는 교회
공간 통해 사회적 가치 만들 수 있어
사회적 약자 돌봄 사역, 재조직 필요

공간의 미래
공간의 미래

유현준 | 을유문화사 | 364쪽 | 16,000원

“코로나로 가장 영향을 받는 분야 중 하나는 종교다. 그중에서도 기독교같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모이는 종교단체가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공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권력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는 건축가 유현준 교수(홍익대)는 신간 <공간의 미래>에서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의 해체와 재구성, 그리고 그로 인한 권력의 해체와 재구성을 논했다. 그가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이 많은 공간인 아파트 다음으로 거론한 곳이 ‘종교’이다.

2장 ‘종교의 위기와 기회’에서 저자는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예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공간을 많이 이용했다”며 “종교는 건축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으로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그 공간에서 시선이 집중된 곳에 선 사람은 권력을 가진 종교 지도자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기독교는 제사 중심의 종교를 제사 없이 설교 말씀을 듣는 행위 중심의 종교로 바꿨고, 이는 종교 건축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기독교의 예배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일이 잦게 바뀌었고, 직사각형의 대형 건물이 교회로 지어지기 시작했다. 직사각형의 좁은 변에 제단을 위치시키고, 반대쪽에는 입구를 위치시켰다. 예배당에 들어와서 의자에 앉은 사람은 좋으나 싫으나 앞에 있는 제단을 바라보게 됐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여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면 권력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의식도 강해진다. 헌신과 성경 말씀 등 기독교적 가치를 빼고 순수하게 형식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복잡한 예식을 치를수록 예식을 인도하는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다. 권력은 누군가의 행동의 자유를 억제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때 강화된다.

홍익대학교 유현준 교수(건축가)
▲본지와 인터뷰 중인 유현준 교수. ⓒ크투 DB
그런데 전염병이 돌면서, 예배당에 모일 수 없게 됐다. 모이는 사람들 간의 간격은 멀리 떨어뜨려야 하고, 밀집도는 낮추어야 하며, 규모는 줄여야 하고, 방향성은 흐트러뜨리는 식으로, 기존 건축물 진화 방식과 반대로 가는 변형을 가져온다. 이는 자연스럽게 권력 구조와 공동체 구조를 변형시킨다.

전염병으로 하나의 시공간에 모이기 힘들어지면 종교의 권력과 조직은 약화된다. 하지만 종교는 애초에 종교 지도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로 본질을 잃고 공간적 외향만 남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면, 본질적 질문을 해야 할 때다. “기독교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저자는 “일반적으로 언론 매체에 나타나는 것은 종교의 부정적인 모습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종교계가 사회적 약자를 돌보면서 많은 기여를 해 온 것이 사실인데, 그러한 기능이 유지되기 위해 어떻게 재조직돼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현재 우리의 도시 속에 많은 공간을 갖고 있는 교회는, 공간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제안한다.

구체적으로는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중에 비어 있는 교회 공간을 내어줄 수 있다는 것. 거룩하게 구분돼야 할 본당 공간 등은 제외하고, 주중 교회의 분반공부실이나 친교실, 중고등부 예배실 등을 일반 시민들의 공유 오피스나 자습 공간으로 운영해 볼 수 있다.

세종 산성교회
▲유현준 교수 등이 설계한 세종 산성교회 외관. 책에서도 소개된 이 교회는 ‘나를 품어주는 교회’를 형상화했다. 바람 불면 종소리가 들리는 십자가가 인상적이다. ⓒHyunjoon Yoo Architects(Photographed by Youngchae Park)
저자는 1970년대 ‘상가 교회’가 세상으로 적극 다가가는 일을 수행한 것처럼, 교회를 ‘신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수고하고 짐 진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곳’으로 회복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공간의 미래>는 모여야 살 수 있었던 인간 사회를 반대로 모이면 위험한 사회로 만든 코로나19 이후, 사회 각 분야의 변화에 대해 ‘공간(건축물)’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아파트(주거)와 교회(종교) 외에도 학교와 직장, 도시와 물류, 그린벨트와 통일 후 DMZ 활용, 상업 시설과 청년 주거 문제, 국토 균형 발전 등의 미래를 상상하고 담대한 구상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