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조화’ 추구
밋밋하고 싱겁다? 담백하고 쿨한 미니멀리즘

기교 너머의 아름다움
기교 너머의 아름다움

최광진 | 현암사 | 320쪽 | 20,000원

“소박하다는 건 한마디로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과거 자연 속의 원시 사회에서는 소박의 미학이 필요 없겠지만, 오늘날처럼 인위적인 물질문명으로 인해 본질을 상실한 현대 사회는 어느 때보다도 소박의 미학이 필요한 시기다.”

신명, 해학 등 주제별로 한국의 미의식을 탐구하고 있는 저자가 한국 특유의 ‘소박미’를 건축과 공예, 문인화와 현대 추상화 등에서 살펴보는 <기교 너머의 아름다움>이 발간됐다.

저자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서양과 달리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인 조화와 어울림을 추구했다며, ‘무기교의 기교’, ‘무위자연’, ‘자연과의 조화’ 등의 공통 키워드로 ‘소박(素朴)’을 제시한다. 이는 비슷하지만 화려하고 육중함을 추구했던 중국·일본과도 다르다.

한국 전통 문화 문 문살 문고리 네모 문양
▲한국 전통 문의 문살. ⓒ픽사베이
풍수지리, 한식, 흰 옷, 정원, 석탑, 분청사기, 막사발, 사군자, 산수화, 서예 등 한국의 다양한 전통문화에서 ‘소박미’를 찾아내고 있다. 이런 분석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저자는 이를 현대 미술로까지 확장시켜 김환기의 백자 달항아리, 김종영의 추상 조각, 윤광조의 도자기, 이우환의 돌과 여백 등을 소개하고 있다.

어찌 보면 밋밋하고 싱거울 수 있지만, 이를 군더더기없이 담백하고 쿨한, 요즘 유행하는 ‘비움’, ‘미니멀리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자는 한옥의 문살에서 몬드리안의 작품을 연상하고, 고려청자의 비색(翡色)에서 칸딘스키의 푸른색을 발견한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오랫동안 이 땅을 지배한 유교적 세계관은 허울뿐이던 중국(명나라)을 사대하고 ‘사농공상’을 고수하면서 상공업을 천시하게 만들었다. 이에 20세기가 다 되도록 전근대적인 생활을 하다 결국 세계 열강의 격전지가 되어 나라를 잃고 끝내 분단까지 됐던 우리 민족의 고된 삶이었지만, 저자는 이를 21세기에 필요성이 제기되는 ‘소박’이라는 키워드로 재해석하고 있다.

물론 책은 ‘자연을 피조물로 보고 그 중 인간을 가장 우월한 존재로 여기는 히브리 사상’, ‘자연을 이용해 인간을 위한 물질문명을 발달시킨 근대 이성’ 등 기독교 사상이 짙게 깔려 있는 서양 문화를 “인간 중심적으로, 자연을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고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다”며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인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석가탑 불국사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 저자는 이를 ‘추상 조각’으로 해석한다. ⓒkorea.kr
그러나 한국의 ‘소박미’에서 드러나는 겸손과 자연과의 조화 등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3)”,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9)” 등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신 산상수훈이나 바울이 제시한 ‘성령의 9가지 열매(갈 5:22-23)’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서양의 물질문명이 지배했던 근대기에는 ‘소박’의 미학이 설 자리가 없었지만, 이제는 물질문명의 부작용을 치유할 수 있는 최고의 백신이 될 수 있다”며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소박’의 문화적 전통을 예술 작품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지 못하거나 당연시했던 것들”이라고 밝혔다.

저자 최광진 박사는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현대미술비평에 있어서 자율성과 재현의 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호암미술관(현 삼성미술관 리움)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미, 그 현대적 변용전’, ‘천경자전’, ‘청전 이상범전’, ‘소정 변관식전’ 등을 기획했고, 현재 홍익대학교 초빙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2004년부터 이미지(理美知)연구소를 열어 기호학, 생태학, 포스트 모더니즘, 비교 미학, 비교 신화학, 창작론 등을 통해 인문학과 예술을 접목하는 강좌를 진행했고, 현재는 유튜브 ‘최광진의 미학 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천경자 평전』, 『한국의 미학』,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1–신명』,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2–해학』, 『현대 미술의 전략』, 『미학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