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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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출애굽기 33:5-6)”.

위 본문의 주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서 지시하신 땅으로 가야 하는데, 하나님의 임재가 없어져 문제가 되었습니다. 내 생각과 내 판단으로, 애굽에서 나오며 금과 은을 비롯한 각종 패물을 비롯한 많은 장신구들을 가지고 나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긴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게 된 주 요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은 영원히 홀로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장신구라 함은 몸 치장을 하는데 쓰는 여러 가지 물건을 말하는 것으로, 금과 은, 보석 같은 것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장식을 말합니다.

이는 수세기를 지나오는 동안 여러 문화에서 다양하게 제작되었습니다. 개인의 치장물이 많고, 예술적인 가치와 역사적인 상징을 의미하는 것으로, 독특한 예술 장르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재료는 조개껍질과 동물의 뼈에서부터 나무, 보석, 준보석, 진주 등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재료로는 장신구 제작에 적합한 특성을 지닌 금, 은, 백금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금은 BC 3,000년 경 발견되면서 계속 사용된 것으로, 찬란한 황색 빛에 공기나 물 속에서 산화되지 않은 특성까지 있어, 권위나 신분 표시를 하는데 최적의 재료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1742년 코발트 니켈과 함께 발견된 백금은 남아메리카 인디언이 이미 아메리카 대륙 발견 전부터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은·금과 더불어 장신구 제작에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재료이며, 전성과 연성이 금 다음으로 좋고 가공하기 쉬울 뿐 아니라 아름다운 은백색을 발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몸 치장에 있어 많은 수고와 돈을 들여서라도 몸에 부착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린 학생들까지 문신으로 시작해 코, 귀, 입술, 손과 발, 심지어 몸에까지 장신구를 부착해 남들의 이목을 받고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신구는 자동차나 스마트폰에도 달고, 심지어 동물에게까지 장신구를 달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가방과 핸드백, 신발과 옷에도 장신구를 달아 나타내기를 좋아합니다. 몸에도 장신구를 달 만한 공간이 있는 곳에는 빈틈없이 부착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합니다.

하지만 장신구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오히려 더 혐오감을 줄 때도 있습니다. 물론 사람의 몸을 위해 아름답고 예술적인 가치로만 사용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이 진화하여, 육신의 몸에까지 혐오스러운 문신을 하거나 상처를 내 이웃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모습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출애굽기 32:1-2)”.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는 동안, 산 아래 있는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들을 인도하실 신을 만들어 달라고 아론에게 간청하여, 영이신 참 하나님을 떠나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하나님을 만들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에 관한 이미지를 만들고 그런 하나님을 섬기려 하는 것은 곧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비겨 실제로나 마음의 생각 속에서 그 어떤 형상이라도 만들어 섬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없는 동안 형인 아론이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했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두려운 나머지 백성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모든 장신구들을 자기에게로 가져오도록 하여,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우상을 만드는데 일조했던 것입니다.

백성을 인도할 입장에 서있는 아론은 백성들의 옳지 않은 요구를 적극적으로 만류하거나 제지하지 못하고, 그 요구를 수용하여 따라가므로 불의한 일에 동참하거나 주도하게 되어, 동생인 지도자 모세에게 꾸중을 듣게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특히 아론은 진리에 확고히 서지 못하고 타협했습니다. 이는 분명 중대한 죄를 짓는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이처럼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하고 시험에 취약해지고 손쉽게 우상의 늪에 빠지고 마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죄를 범한 다수자들을 죽임으로써 금송아지 우상 사건을 응징하고, 마지막으로 여호와께 나아가 이스라엘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탄원하였습니다.

여기서 모세는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려도 좋다는 각오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진노하셨지만, 나중에는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진멸하지는 않으셨지만, 그들의 죄악은 결코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죄를 위해 자신의 희생까지 감수하는 모세의 간청을 물리치시고, 자신이 명한 대로 실행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혹 모세가 간청했더라도 하나님이 취하신 결정에는 반드시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모세와 계속 교제하심으로써 임재의 통로를 늘 열어놓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교만과 타락의 장신구 때문에,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는 슬픈 역사는 지금 이 시대에도 적용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역시 탐심의 장신구, 비교의 장신구, 권력의 장신구, 시기와 모함의 장신구 때문에, 교회가 교회로서의 비전과 사명을 망각하고 세상 장신구 놀이에 노예가 되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죄를 생산하는 모습은 목이 곧은 신앙인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일날 교회를 나올 때는 마음 밭에 새겨진 믿음으로 와야 하는데, 몸치장과 장신구 착용 때문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예배에는 관심이 없고, 사람들 눈에 자신의 아름다움과 부를 자랑하는 시간으로 삼아, 교만과 탐욕으로 가득한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축복은 정녕 기대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성전을 짓거나 교회 안에서 예배드릴 때 표현하는 장식과 장신구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은 오로지 깨끗한 믿음으로 장식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찬양대의 장신구, 피아노를 비롯한 예배를 위해 사용되는 모든 악기들의 장신구와 설교자가 필요한 설교 장신구, 그리고 헌금의 장신구를 비롯하여 전도의 장신구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장신구들을, 우리 신앙인들은 날마다 겸손한 믿음으로, 말씀 안에서 챙겨야 할 것입니다.

순종의 장신구와 날마다 기도와 찬송으로 이어지는 장신구를 부착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소망하며, 우리를 유혹하는 우상의 장신구를 몸에서 떼어내는 신실한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