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두레마을
▲동두천 두레마을 도라지꽃.
어제 글에 이어, 관용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관용이란 쉽게 이해하자면 ‘너그러움’입니다. 상대의 과오나 약점에 대하여 너그러움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대체로 우리 기독교도들에게는 관용의 마음이 부족한 편입니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만, 두레마을에 서울에서 남편의 끊임없는 구타에 못 견디어 온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처지가 딱하여 공동체 식구로 받아들여 주었는데, 마을에 먼저 와 일하고 있던 한 총각과 정분이 깊어져 둘이서 나를 찾아와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나는 기꺼이 축하하여 주며 행복하게 살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에 먼저 와 있던 자매들이 둘의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내가 그 이유를 물은즉, 총각이 너무 손해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총각은 숫총각인데 때묻은 여인과 결혼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말에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뭐라꼬? 때 묻었다꼬? 때 묻었음 목욕하면 될 거 아닌가?”

물론 둘은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고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와 같이 크리스천들에게 관용이 부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는데, 우리는 타인의 허물이나 약점을 너그러움으로 감싸주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 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경에서 이르기를 사랑과 관용으로 사람들을 대하라 일러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