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사람에게는 누구나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소원은 끝이 없습니다. 한 가지 소원이 이뤄지면 또 다른 소원이 생기게 되고, 그런 소원들은 일시적 만족만 줄 뿐이며, 돌아서면 또 다른 소원이 생기게 되고, 마음에 소원들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필자가 교회를 개척할 때 이런저런 꿈과 비전을 갖고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꿈과 비전은 점점 멀어지고, 고난이 연속이었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다니엘서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단 3:16)…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필자는 이 말씀에 많은 위로를 받았고, 당시 어려웠던 고난들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다수 신앙인이 자신의 소원이 성취되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반면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특히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가?”란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삼각산 정상에 올라가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이런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내가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나를 안 도와주십니까?” 많은 신앙인이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위 목사님처럼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의 차이는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과 권력을 손에 쥐고도 늘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단칸방에 살면서 늘 마음이 부유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제는 코로나로 인해 약 30명 이상이 모이는 클럽이 당분간 폐쇄되었습니다. 마지막 운동을 위해 많은 회원이 함께했습니다. 예배 후 오후 시간에 아들이 피자 열 판과 음료수를 사 들고 운동장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피자를 전달하면서 회원들에게 “아버지와 그동안 운동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여러분들 덕분에 건강해지셨고 활력을 얻으셨습니다.” 참석한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오늘 충격을 받았습니다. 클럽 30년 역사에 이런 일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우리도 자식을 키우지만 우리 자식들은 왜 이런 생각을 못하는지 정말 존경스럽고 부럽습니다. 자식을 잘 키웠습니다.” 자식을 통해 많은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일 참석한 회원 중 병원 원장님도 있고, 변호사도 있고, 직장생활하는 사람보다 사업을 운영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빌딩을 소유한 분도 있고, 아파트와 개인 주택을 소유한 분들도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무엇을 많이 소유함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 시간이었습니다.

선배 목사님들로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교회 봉사와 헌금은 돈과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점점 부유해지면, 교회의 큰 일들도 대부분 그런 분들이 감당합니다. 깊이 생각을 해 보면 은혜에 대한 감사겠죠! 필자도 내가 원하는 꿈과 비전보다 정반대로 어려움을 당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환경이 닥치면 때로는 불평과 원망이 마음속에 생기게 됩니다. 때로는 기도가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차리게 되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란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 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무지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결론

꿈과 비전은 어린아이부터 노인에게까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그런 꿈들이 내가 계획한 꿈이라면 안개와 같이 일시적인 꿈과 비전일 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은 어떤 고난과 어려움 속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믿음으로 준비만 되면 반드시 이뤄지게 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그들을 모함한 사람들이 오히려 죽임을 당했고, 왕은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단 3:28)” 종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해도 욥처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란 믿음의 신앙입니다. 고난은 귀로만 듣던 신앙을 눈으로 보게(체험) 합니다.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이런 고백은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면, 그리고 구속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만이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내 모든 것을 다 버릴지라도 신앙과 바꿀 수가 없다는 일사 각오로 믿음 생활을 합니다. 존경스런 분들입니다.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 13:46)”

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