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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삶은 구름을 닮아 있는데… 구름처럼 자유할 수 있을까

오거리 신호등에 걸려 차를 세운다. 방금 듣던 노래 때문인 듯, 나는 무심코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은 파랗게 빛나며 눈에 부시다.

모양을 바꾸며 한가로이 떠다니는 구름떼가 참 예쁘다. 새털구름인가, 고적운인가. 기상학자 하워드의 분류는 잘 모른다. 털쎈구름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작은 물방울과 얼음 알갱이들이 하늘에 몰려서 구름을 만들고 있음은 분명하다.

기상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는 사람에게도, 구름의 존재는 자유로움과 여유를 선사한다.

듣고 있던 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따라 부른다. ‘하늘은 파랗고, 하얀 구름….’

루이 암스트롱(Louis Amstrong, 1901-1971) 의 ‘참으로 멋진 세상( What a wonderful world)’이다. 이 노래는 뉴올리언즈의 재즈 거리 한 작은 카페를 생각나게 한다. 암스트롱이 세상을 떠난 직후였으니, 그곳 재즈 거리의 카페마다 ‘What a wonderful world’의 천국이었다.

구름은, 삶을 닮아 있다. 피어오르고 사라지는 곳에 추억을 남긴다. 떠오르는 것은 아침의 꿈이요, 구름이 사라지는 것은 저녁의 꿈이다.

빛과 밤이며, 달과 태양이다. 구름이 피어 오르는 것 같은 낮의 장밋빛 광선과 사라지는 것 같은 밤의 희미한 빛 사이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시인 노천명(1911-1957)이 그랬다. 한 조각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는 것은 태어나는 것이요, 한 조각 구름이 소멸되는 것은 곧 죽는 것이라고.

우리가 시인이 되어 바닷가에서 눈물 짓고 이슬 언덕에서 노래를 불러보아도, 뜻 모를 인생은 추억을 남기고 구름 같이 왔다가 간다고 하였다.

구름은 어린 아이와 같이 온순하고 부드럽고 평화롭지만, 장성한 사람 처럼 허무와 맞서 분노하고 죽음을 이겨내는 힘이다.

오늘 아침도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 올랐다. 피어나서 창백하고 차가운 안개의 세상으로, 황금의 태양빛을 몰고 왔다. 이 빛 앞에서 나는 크나큰 기쁨에 떨었다. 이 기적 같은 기쁨은 은혜의 차원이다.

구름의 이미지를 따라, 복잡한 도심 길을 벗어났다. 숲과 들판, 나무와 산 속의 작은 길들을 스쳐 지나며,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 본다.

하늘은 정원, 구름은 꽃, 나의 사랑이다. 지금 이 산 속의 오밀조밀한 모든 풍경들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나에게 속해 있다. 나는 자연 앞에서 단순하고 자유롭다. 인간이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이 기적이다.

이 산 언덕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정상에 있는 사찰 두 개를 각각 안내하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차를 세우고 늘 들르던 카페로 들어 갔다. 이 카페의 커피 로스팅을 나는 많이 좋아한다. 커피 생두에 열을 가해 조직을 팽창시킬 때 생긴 변화의 맛과 향이 내 입에 딱 맞아서일 것이다. 친구에게도 이 지역에서 커피 로스팅을 가장 잘 하는 집 이라고 말하곤 한다.

실내는 적막하고 약간 어둡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창을 둘러싸고 있어서, 빛이 들어올 여지가 없다.

코로나 팬데믹이 휩쓸기 전까지만 해도, 다소 무거운 이 분위기를 나는 좋아했다.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을 것 같은 은밀한 안도감 속에서, 책을 읽고 사색을 즐겼다.

이 시간들이 나의 삶을 지탱해 주는 몇 가지 기둥을 세우는데, 다소의 도움이 되었으리라.

그런데 오늘은 이 분위기에 눌리는 듯하다. 드라이빙 내내 느꼈던 만족감과 자유로움이 순간적으로 사라 진 것 같은 낭패감이다. 과연 내 삶을 지탱해준 기둥들, 내가 추구하는 가치들은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사랑이라는 소속감이나 연대감 같은 가치가, 의미를 만드는 내 삶의 목적이, 초월성 같은 작가적 경험이 , 이처럼 글을 쓰면서 삶을 스토리텔링하는 이런 일들이 과연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답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자연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생명을 선물로 주신 나의 하나님께 바치는 나의 사랑의 형식이다.

그 분의 사랑은 자연으로 나타나고, 그에 대한 나의 반응으로 그분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짧은 여정에서 나는 바라보는 모든 것의 주인으로 기쁘고 자유로웠다. 시간에게 현혹당하는 아름다운 느낌 이었다. 그랬음에도 구름이 흩어진 길을 따라 되돌아가는, 지금은 알 수 없는 동경과 엄청난 그리움으로 목이 타는 듯하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고 우리의 영혼은 영원을 사모하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송영옥 기독문학세계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송영옥 박사(영문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