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닥치면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가장 좋은 방안
거기서 기초 다시 확인하고, 문제 해결점 모색해야
이를 위해, 다시 성경적 세계관의 뿌리로 돌아가야

변증 컨퍼런스 신국원
▲신국원 교수. ⓒ크투 DB
‘2021 제6차 한국 C.S. 루이스 컨퍼런스’가 5일 오후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이번 컨퍼런스는 ‘팬데믹 시대, 우정과 사랑의 신학, C. S. 루이스’라는 주제로 20세기 최고의 변증가이자 복음주의자인 영국의 C. S. 루이스를 통해 복음주의적 경건을 추구하는 신앙과 목회, ‘성도-학자, 목회자-학자’ 모델을 사모하는 동역자와 차세대를 격려하고, 갱신과 개혁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컨퍼런스에서는 기독교 세계관 권위자인 총신대 신국원 명예교수가 ‘우정과 사랑(공동체), 나의 신앙/신학 여정, 그리고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자신의 학문 여정을 소개했다.

신국원 교수는 “루이스는 팬데믹보다 더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고스란히 경험했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폭격을 피해 아들을 피신시킨 저택의 벽장 속 판타지 세계는 그 상흔을 잘 드러낸다”며 “루이스의 <영광의 무게> 중 두 번째 글인 ‘전시의 학문(Learning in Wartime)’은 통째로 외우고 싶을 정도로 내일을 장담하기 어려운 광기의 전쟁 한가운데서 학자로 사는 의미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신 교수는 “루이스는 전쟁도 그가 사랑하고 잘하는 일을 버리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단 ‘사람들에게 하던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계속하라‘고 했던 바울의 말(고전 10:31)을 빌어, 이전과 다른 정신과 새로운 목적을 위해 하라고 권면한다”며 “루이스에 따르면 지식과 미를 그 자체로 추구하되, 그 욕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또 “세상 사람 모두 그리스도인이라면 교육받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가 무지하고 무식해 적을 상대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무기를 내버리고 항복하는 것과 같다”며 “이교도들의 지적 공격에 맞설 방어책이 하나님 외에는 우리밖에 없는 교육받지 못한 형제들을 배반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후 그는 “제 학문적 작업은 나름대로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의 필요로 본 것에 집중했다. 중심 주제는 기독교 문화에 대한 관심이고, 세계관과 철학, 예술 공부는 그 주제를 구체화하는 과정이었다”며 “거기서 배운 것을 강의에서 학생들과 나눴고, 신입생 전원을 대상으로 신앙 정체성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퇴임 후에도 목회 현장을 떠난 적 없이 설교와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큰 복도 누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총신대에서는 ‘고중세철학’, ‘근대철학’, ‘기독교철학사’, ‘포스트모더니즘’, ‘기독교와 문화’, ‘철학원강 1, 2’, ‘기독교세계관과 철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었다”며 “(펴낸) 책들도 부름에 답하는 것들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시작으로 <문화이야기>와 <변혁과 샬롬의 대중문화론>은 기윤실 문화 활동의 산물이었다”고 했다.

그는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활동은 대학 시절 한국 상황에 닿아 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팬데믹 이후 한국교회 상황과 뗄 수 없다”며 “본격적인 글쓰기의 시작은 대학시절 번역 아르바이트에서 비롯됐다. 번역은 창작적 요소가 있어 힘들지만, 즐거움의 원천이었다. 반틸의 『변증학』으로부터 문화와 미학, 그리고 철학 등 몇 분야에 열매를 주셨다”고 전했다.

C. S. 루이스
▲C. S. 루이스와 그의 주제별 작품 세계.
이후에는 각 분야별 학문 여정 소개가 이어졌다. 먼저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세계관은 학문이 아니라 학문적 반성 이전 삶의 토대이고 밑그림 같은 것이지만, 학문 분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며 “우리나라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1970년대 민주화 운동에 부담감을 가진 복음주의 신앙 배경을 가진 대학생들의 스터디모임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신국원 교수는 “보수 교회에서 자란 학생들은 독재 정치의 현실 아래 교회의 가르침과 민주화 운동 사이에서 갈등이 많았다. 사회 정의의 구현과 민주화의 필요에는 공감하지만, 그 운동의 인본주의적 이념과의 괴리와 갈등하며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이들에게 제3의 길을 볼 눈을 열어준 것은 개혁주의 신앙의 폭넓은 관점이었다. 개혁주의 신앙에는 복음적 교회가 취약했던 삶과 세계에 대한 실제적 가르침이 있었다. 정치 현실에 대한 고민을 통해, 신앙이 삶과 어떻게 연관돼야 하는지 실마리를 발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선교사나 목사, 선교단체 간사가 부르심이 아닌 이들에겐 이런 가르침이 중요했다. 기독교 신앙이 세계와 삶에 대한 구체적인 조망을 제시한다는 사실에 긍지를 회복했다”며 “유물론이나 자연주의, 마르크시즘, 무신론보다 설득력 있는 세계관을 거기서 발견했다. 그들은 그것을 공부하고, 그에 입각해 사회와 문화를 바꾸는 실천을 할 수 있다는 믿음 속에 전진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동기를 제공했던 상황은 달라졌다. 우리 사회를 좌우했던 민주화라는 거대 담론은 다양한 관심사로 분산됐고, 지금 주시해야 할 것은 다원주의 정서 속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문화 담론들”이라며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 학문, 종교의 영역에서 잘게 쪼개져 각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그람시의 말처럼 이제는 전면전이 아니라 참호전이 대세다. 알튀세르가 주장했듯 국가의 억압적 권력에 대한 투쟁 대신, 시민단체와 미디어 같은 이데올로기적 기구와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국원 교수는 “이런 상황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포스트모던적 조류와 관련이 깊다. 거대 담론에 대한 의심은 근본 특성이다. 이제 거대 담론의 원조인 기독교 세계관이 무슨 의의를 갖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며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새로운 도전에 대처하지 못하면 죽은 전통이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 교수는 “위기가 닥치면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다. 거기서 기초를 다시 확인하고, 문제의 해결점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시 성경적 세계관의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며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는 19세기 말 네덜란드의 신칼빈주의 운동으로, 프랑스 혁명의 인본주의 사상과 혁명 이념에 대항했던 흐른 반 프린스터러와 아브라함 카이퍼에 의해 주도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대가 바뀌어 그리스도인이 직면한 도전도 달라졌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운동성은 약화되기 마련”이라며 “기독교 세계관을 열심히 공부해 보았으나 실망한 이들이 많다. 실천이 없는 이야기로 ‘아주 짜증나는 일’이 계속됐다는 불평도 있습니다. 운동이 진부한 상태에 빠졌다면 그것을 벗어나는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근본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신국원 교수의 <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그는 “이런 마음으로 <니고데모의 안경>을 썼다. ‘창조-타락-구속’의 공식을 따라 전개해 철학 책처럼 보인다는 비판에서 크게 자유롭지는 못하다. 세계관이 이론이나 철학이 아님을 감안하면 아주 뼈아픈 지적”이라며 “이를 피하는 길은 성경의 비전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옛 성도들이 ‘창조-타락-구속’의 비전을 따라 살았던 이야기를 통해 성경의 독특한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에서 그것을 해보려 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성경의 비전 이야기들은 오래된 것이다. 옛 이야기를 하면 보수주의로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저는 과거 없이 미래가 열리지 않는 법이라 보수를 싫어하지 않는다. 진보를 가볍게 여기지 않지만 두려워하거나 혐오하지도 않는다”며 “하지만 보수나 진보보다는 개혁주의를 더 좋아한다. 개혁은 과거에 집착하는 수구나 미래에만 목매는 급진과 다른, 끊임없는 씨름이다. 진정한 전통은 ‘죽은 자의 산 신앙’이지만, 전통주의는 ‘산 자의 죽은 신앙’이라 했다. 우리 옛 이야기도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를 살아야 할 이들의 비전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 외에도 기독교 문화연구, 기독교 철학과 변증학, 기독교 예술론, 포스트모던 인문학과 해석학 등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학문적 여정을 소개했다.

신국원 교수는 “다시 한 번 루이스의 ‘전시의 학문’을 되새겨 보며 강의를 맺고자 한다. 회심도 전쟁도 자기가 영문학을 버리게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는 생애 처음 겪는 팬데믹 한 가운데 있다. 모두 마스크를 쓴 까닭에 얼굴을 잊어버릴 상황”이라며 “그러나 창조주이시요 구원자시며 심판주가 되시는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주관하고 계신다. 그 분이 자신의 나라를 이루시는 날, 우리 모두 얼굴을 다시 찾게 될 것임을 믿는다”고 했다.

끝으로 “앞서 행하시는 그 분이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인 학문 공동체가 할 일을 보여주시리라는 사실도 믿는다”며 “그 날이 오기까지, 보지 못한 본향을 ‘동경(Sehnsucht)’하며 사는 동역자들의 나눔의 교제와 사랑이 이어지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이후 정성욱 교수가 ‘루이스와 통찰과 우정/사랑에 대한 성경/조직신학적 탐구’, 이인성 교수(숭실대)가 ‘사랑: C. S. 루이스의 섀도우랜드’, 심현찬 원장이 ‘루이스의 우정의 신학: 우정 공동체 잉클링즈를 중심으로’를 각각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