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대리만족에 몰두하는 웹소설
현실적 비리와 부조리 고발로 시작하나
초월적 사건·계기 통한 비현실적 마무리
삶 진지하게 돌아보는 일에 도움 안 돼

어게인 마이 라이프
▲이미 웹툰화가 이루어진 웹소설 <어게인 마이 라이프>. 소설과 웹툰의 인기 덕에 올해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신앙과 문학: 죄악과 부조리의 현실에 대한 예리한 자각 독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암울하고 죄악된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이러한 현실이 끝까지 절망적이기만 하리라고 믿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신앙인들은 염세적 허무주의를 배격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통해 이 땅에서도 인간의 부도덕, 비윤리, 무력함이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종국에는 하나님 나라에 온전히 참여함으로써 모든 비참함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소망을 굳게 붙든다.

그런데 이런 소망이 실현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죄악과 부도덕에 짓눌린 자신과 세상을 직시해야 한다. 인간 자신과 세상 자체로부터는 기독교적 소망의 단서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처절하게 좌절하고서, 인간과 세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갈구해야 하는 것이다.

선(善)과 구원을 향한 인간 개개인의 갈망과 의지를 아예 무시하거나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류 전반을 뒤덮고 있는 죄성, 부조리, 탐욕은 인간에게 남아 있는 이런 긍정적인 요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도록 압도적인 힘으로 짓밟아 버린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시대별로 간혹 선과 양심을 부르짖고 실천하려 몸부림치던 이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인류 전반은 탐욕에 휩쓸리고 부조리와 타협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기독교 문화는 이러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왔고, 이로 인해 문학과 상당히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다.

문학에는 양면성이 있다. 현실을 직시하려는 측면과 현실로부터 이탈하려는 측면, 두 상반된 측면이 기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당연히 기독교 문화는 문학이 지닌 현실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비판 기능을 높이 평가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기독교 문학 작품 혹은 기독교적 문학 작품 대부분은 일단 해당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현실을 무섭도록 냉정하게 바라보고, 그 절망적 측면들을 조명하는 데 주력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인간 자체로부터 죄악과 부조리를 극복해 보려는 헛된 희망에 대한 기대감을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단테의 <신곡>, 밀턴의 <실낙원>, 번연의 <천로역정>을 비롯해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부활>, 엔도의 <침묵>까지, 인간의 타락과 구원을 주제로 삼는 기독교적 문학작품 치고 현실의 암울함에 대한 처절한 자각과 좌절감을 매우 예리하게,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은 작품이 없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
▲인간의 좌절스럽고 비참한 현실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기독교적 문학 작품,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러한 기독교 문학 전통은 또한 서구 문학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서구의 근현대 명작 문학작품 가운데는 잔혹하고 비참한 인간 현실을 다루지 않은 작품이 단언컨대 단 하나도 없다.

현실이 괴롭고 비참할수록 그 현실의 밑바닥까지 철저히 파헤치는 것이 잘 쓰여진 문학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된다. 그래야 독자가 현실의 문제와 부조리를 파악하고 더 나은 삶, 더 고결한 삶을 위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상과 문학: 죄악과 부조리의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 조장

최근 우리 대중문화계 원천 콘텐츠의 대세로 등극하고 있는 웹툰, 그리고 그 웹툰의 원작으로서 위상을 높여가는 웹소설의 문제점은 작가들이 문학의 두 대표적 특성 가운데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는 최대한 지양하고 독자를 현실에서 이탈시키는 데 모든 힘을 쏟는다는 점이다.

웹툰과 웹소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장르문학 중심인 웹소설의 플롯을 보면, 초반 도입부에는 어느 정도 현실이 반영된 설정과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서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초반에 소개된 현실적 설정과 캐릭터들은 점차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독자들의 대리만족을 위해 온갖 방식으로 비틀어지고 왜곡되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세계 전생, 환생, 회귀, 마법이나 무공의 기연(機緣), 차원왜곡, 타임슬립 같은 비현실적 장치들이 총동원된다.

웹소설 스마트폰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형식으로 출판되는 웹소설은 최근 한국 문학 콘텐츠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올해와 내년 각각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인 웹소설 <어게인 마이 라이프>와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자.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서사는 권력비리를 파헤치다 죽임을 당한 검사가 과거 고등학생이었던 자신으로 회귀해, 미리 알고 있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철저한 준비를 한 뒤 부패한 권력자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는 줄거리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서사는 혹사당하다 토사구팽을 당해 죽은 한 직장인이 자신을 버린 기업의 막내아들로 다시 태어나 전생의 정보를 바탕으로 온갖 계략을 일삼아 기업을 집어삼켜 복수하는 이야기이다.

둘 다 시작은 현실의 그럴듯한 비리와 부조리에 대한 고발로 시작하지만, 이러한 비리와 부조리가 초월적 사건이나 계기를 통해 통쾌하게 극복되는 비현실적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대중성, 상업성을 생각한다면 문학에서 대리만족이라는 기능을 완전하게 배제할 수는 없다. 무섭도록 진지한 현실비판 순문학이 아닌 이상, 비교적 가벼운 주제를 다룬 픽션, 혹은 논픽션마저도 주인공의 모험과 성장, 성취를 통한 대리만족을 선사함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한다.

문제는 순수문학 작가들이 현실적 한계 자각과 대리만족을 어느 정도 균형감 있게 조율하려 노력하는 반면, 장르소설 작가들은 현실에서 도저히 얻을 수 없는 비현실적 대리만족을 선사하는데 모든 것을 건다는 점이다.

게다가 순수문학 작품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대개 윤리적 함의를 서사의 중심에 놓는 반면, 장르소설들은 윤리적 함의마저 대리만족을 극대화하는 부수적 장치로 소진해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예를 들어 웹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초월적인 사건이나 계기를 통해 자신의 무력함을 극복하고 과거의 후회를 돌이키거나 복수를 성공시킬 때, 그 수단이 적법하든 악의적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특히 복수극 웹소설은 주인공이 악역에 못지 않거나 그보다 더한 사이코패스 수준의 잔혹하고 악질적인 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러한 비윤리적 행태 역시 대리만족이라는 목적을 위해 무한정 허용된다.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위대한 작품들 중에도 복수극은 여럿 존재한다. 뒤마의 <몽테 크리스토 백작>,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도일의 <주홍색 연구> 등은 모두 처절한 복수를 주제로 삼는다.

세 작품의 공통점은 복수의 주체인 주인공이 복수를 모두 완성했을 때, 스스로의 복수 행각에 대해 심한 윤리적 회한을 느끼거나, 복수를 위해 인생을 바친 나머지 자신의 삶 역시 망가지는 결말을 맺는다는 점이다.

하다 못해 불법감금, 근친상간, 살인 등 온갖 비윤리적이고 정신착란적인 행위들로 가득찬 복수극 영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만 하더라도 주인공 오대수(최민식 분)에게 복수를 마친 이우진(유지태 분)이 복수를 겨우 마친 허무감과 죽은 누나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자살을 택하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이는 그만큼 복수라는 행위가 사람의 마음과 몸을 망가뜨릴 정도로 어렵고 고되며 저열한 일이라는 현실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올드보이
▲박찬욱 감독의 복수극 <올드보이>. 극단적 범죄행위들이 난무하지만 복수의 허무감 혹은 인간의 죄책감을 비교적 현실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하지만 웹소설, 장르소설의 복수극에서는 복수가 힘들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고, 그저 통쾌하고 가볍고 즐겁기만 하다.

복수극뿐 아니라 웹소설에서는 과거의 한을 푸는 것이든, 사랑하는 이들을 돕는 것이든, 아니면 사회의 부조리를 극복하는 것이든, 모든 대리만족 행태들이 현실을 완전히 이탈한 상황과 정서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서사는 실질적으로 우리 현실을 자각하고 자기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계속>

박욱주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