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은혜의 능력
바울과 은혜의 능력

존 M. G. 바클레이 | 김형태 역 | 감은사 | 400쪽 | 24,800원

하나님의 은혜를 이토록 성경적이고도 충격적으로 제시한 책은 보지 못했다. 참으로 놀랍고, 경이롭다. 이제야 성경의 맥이 뚫리고 은혜의 신선한 공기가 영혼 속으로 흘러들어와 상통(相通)하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바울 신학의 정수를 만난듯 하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구원을 ‘오직 은혜로만’ 받는다고 주장했고, 그 이전과 이후 그리스도들인 ‘순전한 은혜’, ‘완전한 은혜’, 혹은 ‘값없는 은혜’와 같은 표현들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한 것과 달랐다. 제자도 없는 기독교, 방종과 방탕한 삶을 묵인하는 기독교, 성화 없는 크리스천 월드를 탄생시켰다.

순전한 은혜는 결코 순전하지 않은 결과를 내었다. 심지어 순전한 은혜의 왜곡까지 생겨났다. 즉 하나님은 세상을 은혜와 사랑으로 대하시기 때문에, 어떠한 진노나 심판까지 배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곧 하나님조차도 악을 벌하고 악인을 정죄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은혜는 사람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허위로 받아주는, 무책임하고 도덕률 폐기론적인 주장을 위한 구실이 되어 왔다. 이 모든 것은 은혜를 잘못 이해한 탓이다. 은혜의 왜곡이 일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은혜의 어느 한쪽 측면만 특별히 강조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은혜를 극대화시키는 여섯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여섯 가지 요소를 이렇게 설명한다.

1. 초충만성(superabundance)

초충만한 선물은 규모, 중요성, 혹은 지속 시간에 있어 극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즉 거대하고, 후하고, 끊임이 없고, 오래 지속되는 것 등을 가리킨다.

2. 단일성(singularity)

단일성이란 자비나 선함이 수여자의 유일하거나 배제적인 활동 방식임을 의미한다. 즉 수여자는 언제나 오로지 혜택을 베푸는 특성만을 가진다.

3. 우선성(priority)

우선성은 선물을 주는 시점과 관계가 있다. 즉 수신자가 어떠한 일을 행하기 전에 선물이 주어지는 특징을 가리킨다. 우선적인 선물이란 요청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너그러움의 발로로 자발적으로 우러나는 선물이다.

4. 비상응성(incongruity)

수여자와 수신자 사이의 관계와 연관된 것으로, 선물과 수신자의 자격이나 가치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조화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비상응성이 극대화되면 선물이 수신자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조건 없이 주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5. 유효성(efficacy)

선물은 긍정적인 효과를 산출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범과 격려를 통해 선행의 발전을 돕는다. 게다가 수신자를 새롭게 구성된 자아를 창조하며, 은혜의 작용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반응하게 만든다.

6. 비순환성(noncircularity)

선물은 보답이나 교환이 없을 때 순전한 것으로 극대화된다.

신비 아침 이슬 성령 햇빛 일출 풀 은혜 빛
이렇게 정의하고 나서,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는 수신자의 가치에 상응하면서도(즉 비상응성은 채택하지 않으면서도) 초충만하며, 우선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가치와는 상관없이 주어질 수 있지만, 여전히 보답은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듯 어떤 사람은 이러한 은혜의 다양한 측면 중 어느 하나의 측면 혹은 둘 또는 그 이상을 강조하고, 또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은혜의 측면을 강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대립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진리 자체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은혜의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하는 문제였음을 엿볼 수도 있다.

저자는 “은혜는 우리를 과거의 우리로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은혜는 인간의 영혼에 주입되며, 영혼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고무시켜서 신자를 의롭게 만들어주며, 궁극적으로는 구원받을 만한 가치를 가지게 해준다. 형성시키는 능력인 은혜는 신자로 하여금 죄 용서로부터 성화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따르도록 인도하며 마지막 심판의 날에 구원받기에 합당하도록 만들어준다(74-75쪽)”고 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은혜의 어느 한두 가지의 측면을 극단적으로 강조해온 것은 아닐까? 그러다 보니 너무 ‘공짜 은혜’에 익숙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바꾼 것은 아닐까? 자성의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힘이 있다.

이종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고문
의정부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