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1

이번에 폰을 바꿨다. 더 써도 충분한데, 그 스마트폰 회사가 문을 닫게 되고 마침 노예 약정도 끝나 지금 아니면 오히려 남은 단말기 값을 다 내야 한대서 바꿨다.

지금 새 폰으로 글을 타이핑하고 있는데, 어차피 안드로이드 폰이고 화면 크기도 비슷해서 다른 폰을 쓴다는 느낌은 크게 없다.

왜 그런가 하면, 쓰던 대로 손의 위치와 감각이 맞아야 하고, 쓰던 앱과 그 미세한 설정까지도 거의 같아야 하기 때문에, 며칠 동안 조금씩 요리사가 새 칼을 구한 뒤 손에 맞도록 민감하게 조절하듯이 하나하나 바꿔서 거의 전에 쓰던 폰처럼 해놨기 때문이다.

뒷면에 있던 지문인식 장치가 편했는데, 앞쪽 화면에 하다 보니 잘 안 돼서 불편한 것과 몇 가지를 빼면 거의 비슷하고, 펜이 있는 등 더 나은 부분도 물론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맞춰 가다 보니, 사람도 이와 같지 않나 싶었다. 오래 전에 사람을 노래와 빗댄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비슷한 느낌이다.

어떤 노래는 들으면 확 꽂히지만 금방 질리기도 하고, 어떤 노래는 들을수록 깊은 울림을 주는 인생곡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끝내 질리지 않는 곡이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 곡이 여전히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듯 사람도 불같이 사랑했지만 금방 식는 사람도 있고, 처음엔 큰 감흥이 없었는데 갈수록 가치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역시 처음의 뜨거움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대상이란 없는 법이다. 그렇게 시들해져도 그 사람의 소중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서, 이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된다.

2

이처럼 일상의 모든 일이 사람을 알고 만나는 것과 이치가 비슷하다. 스마트폰을 새로 갖게 되듯이, 연애를 시작하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한동안 조율하고 씨름하며 내 손에 착 붙는 펜이나 조리도구처럼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 사람이다.

내가 해왔던 방식, 내가 선호하는 것, 나의 언어, 나의 동선을 따라 상대방이 착착 따라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는 없다. 사람이 계획을 세울지라도 그 길목마다 늘 상대방이 있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폰이 아무리 비싸고 수많은 기능이 탑재돼 있어도 다룰 줄 모르면 폴더폰처럼 써야 하듯이, 아무리 훌륭한 연애와 결혼생활을 꿈꿨어도 사용법을 너무 모르면 흙 속의 진주를 평생 캐내지 못할 수가 있다.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거나 기계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무궁무진한 기능들을 마다하고 최소한의 활용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전화 걸고 받기와 카톡 등 일부 기능만 쓰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이는 마치 리무진으로 짜장면을 배달하는 정도의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다.

사람에게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데, 알아보려 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웬만큼 살아 보니 별게 없고 앞으로 기대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낡은 폰의 기본 기능만 사용하듯이 배우자를 방치할 수 있게 된다.

3

스마트폰에는 선탑재 앱이라는 것이 있다. 구글이나 애플 등 운영체제를 만든 기업이 심은 것과 각 스마트폰 제조사에서 심은 앱들이다. 사용자가 지울 수도 없는 이런 앱이 너무 많다 보니, 폰의 용량을 많이 차지해 늘 논란이 되곤 한다. 꼭 필요한 것들도 있지만 영영 쓰지 않을 앱들도 무척 많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도 선탑재된 기능(?)들이 있다. 이것은 배우자나 연인이 좋게 활용할 수도 있지만, 불필요해서 끝내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을 억지로 없애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댁이나 처가에서 AS를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할 때가 많다.

저 인간 뇌에서 저 앱만 삭제하면 좋겠다 싶어도, 뜻대로 안 된다. 본인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자기만의 단점과 특유의 정체성을 어떻게 없애거나 바꾸겠나.

어떤 스마트폰이나 마찬가지이듯, 모두에게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그 사람만의 세계가 있으니 순응하고 살아야 한다.

4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으면, 그 복잡함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앱을 사용할 때 묻는 승인과 허용을 할 때마다 괜히 내 정보와 사용 패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찜찜하고, 지문이나 로그인 정보 등도 새로 등록하기가 귀찮을 수 있다.

무료 앱마다 나오는 광고도 거추장스럽고, 뭐가 안 되면 또 뭘 깔아야 하고…. 이것저것 승인하고 오케이 하다 보면 해킹이나 정보 노출이 될까 께름칙하고 그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폰을 사주고 앱을 사용해 주는 것도 그들이 고마워해야 하겠지만 나 역시 수많은 기능을 사용하면서 크게 편리함과 유용함을 누리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할 수 없는 일을 폰 하나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사람 사이에도 생략했으면 하는 과정이 있고, 쉽게 넘어갔으면 할 때가 많다. 함께 간다는 이유로 늘 겪어야 하는 소통의 불편함에 지칠 때도 있다.

그래도 그 사람이 없다면 내가 얼마나 불편할지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못하는 것, 내게 없는 것을 채워주는 연인과 배우자에게 불평이나 비교보다는 서로 감사하고, 내가 누리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관성에서 벗어나면 좋을 것이다.

5

한편 스마트폰이나 기계의 시스템을 사람과 혼동하면 큰일난다. 마치 직업병처럼 현실과 가상, 인간과 기계를 혼동하게 되는 일이 부지불식간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고 살 필요가 있다.

요즘 AI의 ‘딥러닝’이라는 방식이 있어서, 컴퓨터가 알고리즘을 계속 학습하면 내가 주로 사용하는 대로 길이 든다. 또 자동완성 기능과 연동 기능을 활용하면 늘 입력하는 텍스트나 작동 의도를 기억했다가 제안하거나 실행해 주기도 한다.

사람도 이렇게 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가 원할 때 딱딱 맞춰서 필요한 것을 대령하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다.

물론 <어린왕자>에 나오는 ‘길들인다’는 이야기처럼,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서로 말을 안 해도 알게 되는 것들이 생긴다.

밥 먹고 나서 두리번거리기만 해도 비타민을 찾는지 티슈를 찾는지 알고 눈앞에 디밀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기계보다 민감하게 눈빛만으로도 생각을 읽는 고도의 딥러닝 기능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기계처럼 누군가 주입해 주는 것만으로 학습하거나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자주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계와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매일 알 수 없는 소스로 각자 학습을 업그레이드하는 상대방의 알고리즘과 패턴을 서로 재차 학습해 맞춰 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게을리하면 행복과 소통의 길은 요원하다. 내가 기대하는 것이 있는 만큼 상대방의 알고리즘을 ‘알고’ 있어야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내 알고리즘도 상대방에게 거부감 없이 학습시킬 수 있다.

6

스마트폰은 늘 조심히 다루고 안과 밖을 잘 정리하면서 사용해야 오래 쓸 수 있다. 쓰레기 문제도 심각한데 폰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잘 사용하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다.

스마트폰 제조사에서는 정기적으로 바꿀 수밖에 없도록 고사양의 기기들을 지속적으로 내놓지만, 혁명적인 변화는 없다. 자기에게 필요한 기능 위주로 잘 쓰면 된다. 필요가 목적이 되어야지, 폰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비유는 항상 모든 것에 대입해선 안 된다. 스마트폰은 고장 나거나 싫증 나면 바꾸는 것이 당연하지만 사람은, 특히 배우자는 최대한 고치고 적응해서 끝까지 버텨야 한다.

사람은 보상 판매나 번호 이동 또는 기기변경의 대상이 아니다. 세태는 갈수록 오래 버티는 것을 힘들어하고 고쳐 쓰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사람에게만은 대하는 마인드 자체를 달리해야 한다.

조심히 아끼고 잘 다루면 기계도 보답을 한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이제 ‘내 꺼’라고 함부로 생각하지 말고, 더 세심하게 다가가며 성실하게 대한다면 오랜 세월 함께 행복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기계도 방치하면 고철에 불과하듯,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만드는 것은 사용자다. 함께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많은 것이 나에게 달렸음을 기억하자.​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등 40여 종
https://blog.naver.com/woogy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