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잘못 누른 단추 하나, 대한민국 전체 오작동
그런데 되레 자랑하고 다녀…지나치게 아마추어적
‘이상한 책’ 써서 국민 가슴에 대못질, 정신 차려야
남 공격보다 자신 돌아보고 자중해야… 배려 필요


그런데 말입니다 다친이 칼럼

‘다친 이(The Wound)’라는 필명의 그리스도인이 ‘그런데 말입니다’라는 코너로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시무 7조’로 큰 화제를 모은 ‘진인 조은산’의 ‘기독교 버전’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필명 ‘다친 이’ 님은 범상치 않은 글솜씨로 교회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주요 이슈들을 쓴소리와 함께 성경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대안을 모색해볼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무슨 자격이 있어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보통 사람으로서 답답하고 속이 상해서, 그래서 마음이 많이 아파서 한 마디 지껄여 봅니다.)

1882년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Tod Gottes)”고 선언했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우리가 신을 죽였다”입니다.

대체 니체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알다시피 서양 문명은 니체가 살았던 19세기까지, 적어도 1,500년 동안 신이 지배하던 사회였습니다. 신이야말로 모든 인간 사고와 활동의 최고 본질이자 가치였습니다.

이런 신 중심의 세상은 실상 15세기 중세 신학으로부터의 탈피를 추구하던 르네상스에 의해 조금씩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르네상스는 신학의 시녀 역할을 하던 철학의 ‘제자리 찾기’라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신에 대한 인간 이성의 반론입니다.

이후 16세기 종교개혁과 과학혁명, 17세기 계몽주의, 18세기 칸트주의와 산업혁명을 거쳐, 니체의 시대에 이르자 드디어 인간은 신본주의 가치들에서 완전히 등을 돌렸습니다.

이렇게 인본주의가 득세하자, 신의 자리에 이성과 합리주의. 과학과 실증주의와 객관성, 자유와 평등, 보편적 가치, 종교다원주의 등이 대신 차지했습니다. 니체는 바로 이런 현상을 두고 “신은 죽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신을 몰아낸 인본주의자들은 자신의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했던 자코뱅 당원들은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첨탑에서 십자가를 떼어내고 그곳에 자코뱅 당의 상징인 모자를 금속으로 만들어 달았습니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1743-1826)은 성경에서 초자연적이거나 비이성적인 기록들을 모조리 삭제한 ‘제퍼슨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실증주의자 중 한 사람인 모티머 콜린스는 “신이라는 헛소리를 집어치우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이성이 신을 대신한 세상은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되었습니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세상은 불행히도 온갖 종류의 불행한 사태를 맞이하고 신음하기 시작했습니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이야기한지 30년 뒤에 1,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전쟁으로 무고한 인명들이 이슬처럼 스러졌습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나치 정권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피에 젖은 땅(Bloodlands)>의 저자 티머시 스나이더(예일대 역사학과 교수)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블러드랜드(Bloodland, 흑해 북부의 소련과 독일 사이, 벨라루스 공화국, 폴란드 공화국, 우크라이나 공화국 등)에서 살육된 사람이 무려 1,400만 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때 나치 정권은 소위 ‘기아대책’을 세우고 1941년과 42년에 걸친 겨울에 수천만 명의 슬라브인과 유대인을 굶겨 죽였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총살이 집행되었고, 그다음은 가스실이었습니다.

베놈
▲초인의 등장을 예견한 철학자 니체, 그리고 한때 니체의 이상이 실현된 인물로 평가받았던 히틀러.

1937년부터 1938년까지 스탈린의 대숙청 때는 거의 70만 명에 이르는 소련 시민과 폴란드인 20만 명이 총살되었고, 일부는 생매장까지 시킨 역사 자료를 최초로 발굴했습니다.

유대인 출신의 무신론자인 유발 하라리는 지금의 시대를 ‘호모 데우스’, 즉 인간이 신이 된 시대라고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신이 된 인간들의 세상은 낙원을 구축했나요? 아니오.

인간의 이성이 신으로 등극하자마자, 세상은 오히려 모든 악이 충만한 땅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자연은 회복 불가능한 정도록 파괴되었습니다. 현대인의 삶은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지고 사회는 무한경쟁의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신을 죽이고 인간들이 만세를 부르며 영원토록 즐기고자 했으나, 신의 죽음은 곧바로 인간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삐 풀린 이성을 제어할 제도나 장치가 없다는 것이 우리를 아찔하게 만듭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1944-2015)은 현대 문명은 ‘자기파괴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문명은 발달하면 할수록 파괴될 위험이 증가한다는 이론입니다.

이것은 인류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구조적 위험인데, 그는 현대 문명이 바로 이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위험사회(Risk Society)’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위험이 전 지구적으로 연결된 ‘글로벌 리스크’라는 것이며, 이런 위험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라는 점에서 우리를 오싹하게 만듭니다.

전 세계는 지금 핵무기와 생화학 무기,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금융위기 등에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전 세계 주식시장을 폭락시켰습니다.

여기에 2009년의 신종플루, 2015년의 메르스, 2019년의 코로나 바이러스, 그리고 확장 중에 있는 변이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전 세계적인 리스크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현대인들은 이런 위험에서 달아날 곳조차 없는 듯합니다.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한국은 어떻습니까? 각종 데이터는 한국 사회도 갈수록 위험지수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입니다. 어쩌면 한국 사회가 어느 순간 자기파괴의 길에 들어설지 모른다는 경고가 들립니다.

미세먼지 광화문 북한산
▲지난해 미세먼지로 시야가 흐려진 서울 광화문 모습. 청와대는 보이지도 않는다. ⓒ크투 DB

문제는 현 정부가 이 위험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국민을 위한답시고 내놓는 정책들마다 실패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소주성’으로 인해 수많은 자영업자가 울부짖습니다. 25번에 걸친 부동산 정책으로 땅과 건물과 집이 신음합니다. 국민 모두가 신음합니다.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에서 잘못 누른 단추 하나로, 대한민국 전체가 오작동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되레 자랑하고 다닙니다. 어떤 시사평론가는 이 정부 사람들이 지나치게 아마추어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제발 생각 좀 하고, 멀리 내다보고, 세계를 바라보고, 세계와 호흡하고, 진짜 인류애적인 사고와 정책개발에 앞서는 정부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만 더 첨언하지요. 이렇게 위중한 때에 이상한 책을 써서 국민 가슴에 다시 대못질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의 안하무인과, 못 살겠다고 하소연하는 한 자영업자를 향해 문자폭탄 테러를 자행하는 일부 극단주의자들에게도 한 마디 합니다.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변이 바이러스가 전 지구촌을 뒤덮을지도 모릅니다. 제발 남 공격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자중해 주세요. 사랑과 헌신과 배려로 변신해 주세요. 제발 숨 좀 쉬고 삽시다.

다친 이(The Woun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