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부부 커플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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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 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 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누가복음 12:54-56)”.

예수님께서 복음을 사역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이 오신 ‘시대’가 하나님 나라에 이미 도래하여,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종말의 때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어르신들께서 몸이 쑤시고 피곤하면 어깨를 주물러 달라고 아들이나 손자들에게 부탁하면서, ‘내일 비가 오려나’ 하시며 가뭄에 기다리던 단비가 내리면 즐거워하셨고, 기다리지 않는 비가 올 때는 긴 한숨으로 농사를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과학이 발달해 거액의 돈을 들여가면서 첨단 장비들을 구입하지만, 일기예보는 여전히 우리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 어르신들은 육신의 몸 상태에 따라 일기를 예단하며 농사를 지었던 기억이 지금 70세 이상 되신 어르신들은 그 시대를 추억하며, 그 시대를 그리워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늘 하던 일을 위해 출근을 합니다. 지하철 첫 차를 타고 하차하는 역에서 도보로 약 40분 걸리는 목적지인 필자가 일하는 곳으로 걸어가는 중에, 하늘에선 가느다란 비가 내립니다. 이른 아침의 해맑은 공기를 들이키며, 깊은 생각에 잠겨 보는 묵상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생전 장인어른의 모습이 눈앞을 아른거리며 오선지에 그려 놓은 음표의 모습처럼 빗소리와 함께 찬송으로 전해옵니다.

필자는 장인어른을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아마 장인어른을 존경하는 사위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장인어른을 존경하게 된 계기는 제가 아내와 결혼을 위해 선을 보는 가운데, 때마침 제 어머니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신 데서 출발합니다.

이전에 아내와 선을 보고 다음 주 토요일 만나기로 했는데, 갑작스런 불청객인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나와 연락을 할 수 없어 끝나고 말았습니다. 수개월이 지나 다시 선을 보려는데, 전에 만났던 아가씨가 꽃을 들고 어머니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저는 놀라움에 교회 청년들에게 잠시 간호를 맡기고, 그 아가씨와 데이트를 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가씨 집을 찾아가 어르신에게 인사하며 결혼 허가를 받기로 했습니다.

이른 아침 서둘러 아가씨 집을 찾아가 장인어른에게 인사를 한 후, “이달 24일에 결혼을 하겠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장인께서는 잠시 머뭇하시더니, 단번에 “그래, 결혼하게”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까?

저는 감사하다고 연거푸 절을 하며, “따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겠다”고 약속한 후 얼마 남지 않은 결혼식을 위해 바쁘게 준비했습니다.

당시 저희 집 사정은 지금 같은 시대에는 결혼을 꿈도 꾸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고, 단칸방에서 월세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런 가정에 딸을 시집보낸다는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장인께서는 단지 필자가 교회에 나간다는 믿음 하나 때문에, 선뜻 딸을 주신 것입니다.

물론 필자의 직장은 대기업이었지만, 집도 돈도 없고 가까운 친척 하나 없는 가정으로 딸을 시집보내는 장인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결혼 비용으로 저축한 돈마저 어머니께서 남에게 빌려주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중풍에 쓰러지자 빌려 간 이들은 다들 갚았노라고 발뺌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돈을 받아야 할 분들은 오히려 미음을 끓여오시며 위로하는 모습을 본 필자는, ‘세상에는 참으로 양심적인 사람들도 있구나’ 하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 집안으로 시집 오겠다고 결심한 아내도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순히 순종하며, 오로지 믿음 하나로 시집을 간다는 사실에 더욱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대소변을 받아내며 신혼의 단꿈을 잊고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자처한 아름다운 마음은 실로 요즘 보기 드문 천사요 효녀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장인어른의 믿음으로 바라보는 신실한 그리스도의 정신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늘 가슴 깊은 곳에 새겨두고 있습니다. 장인어른의 사랑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귀하고 아름다운 아침의 시간입니다.

결혼 후 처갓집으로 가면, 장인어른께서는 늘 가정예배를 드리며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찬송을 하셨습니다. 말씀 가운데 믿음을 지켜나갈 것을 강조하시고, 모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격려해 주신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당시의 기도와 찬송, 말씀들이 살아서 귀에 전해지는 듯, 장인어른의 나지막한 음성이 귓전에 맴돕니다.

결혼을 하여 전셋집으로 옮겨가, 아이들도 낳고 한창 바쁘게 살아가고 있을 즈음,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저희 집에 찾아 오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너무나 반갑고 좋았지만, 한 가지 근심이 생겼습니다. 바로 다음 날이 회사 월급날이라, 그날 하필이면 돈이 한 푼도 없어 참으로 난감했던 것입니다.

결국 다음 날 월차를 내고, 결혼 때 받은 금반지를 갖고 교회 장로님이 하시는 금방에 가서 팔았습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집사람을 택시에 태워 당시 부산에서 제일 큰 식당으로 알려진 푸른 바다가 보이는 영도 ‘목장원’으로 모셨습니다. 그 식당은 당시 전국적으로 알려진 꽤 유명한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장인께서는 “이 서방, 갑자기 왜 이러나?” 하셨습니다. 필자는 “아버님, 이렇게 하려고 돈을 버는 것 아닙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씀드렸습니다. 장인께서는 아마도 돈이 없어 보이는 저희 부부가 걱정이 되어 그렇게 말씀 하셨을 것입니다.

귀한 딸을 가난한 집, 거기다 시어머니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곳으로 시집보낸 장인어른의 놀라운 믿음은, 당시 필자가 대접한 택시비와 음식값과 비교가 되지 않는 놀라운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결혼 전에 선을 보면서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몇 평짜리 아파트가 있는지, 돈은 얼마나 있는지, 직업이 공무원 또는 의사인지’ 등을 따져봅니다. 믿음은 거기에 하나 추가되는 항목으로 가장 나중에 따져보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하지만 장인어른께서는 오롯이 교회만 나가면 된다는 믿음만으로 결혼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았기에, 존경의 대상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고 믿습니다.

세월이 흘러 장인어른께서는 하늘나라로 떠나가셨습니다. 필자는 존경하는 장인이 이 세상에 안 계신다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장인어른의 소천 후 아내와 함께 처갓집으로 달려 갔습니다. 아내는 위로 언니가 세 분 있고, 남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 분들 역시 필자가 존경하고도 남을 분들이었습니다. 언니 동생들 간에 우애는 너무나 지극해, 역시 그 부모의 자녀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인께서 돌아가시자 많은 사람들이 문상을 왔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모 교회 장로로써 평생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신 분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자, 처남은 필자에게 조의금 관리를 부탁했습니다.

필자는 돈 문제를 별로 맡고 싶지 않았지만, 상주가 부탁을 해서 흔쾌히 수락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관리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돈을 관리한다는 책임감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존경하는 장인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로 치면 꽤 많은 조의금이 들어왔기 때문에, 돌아가신 장인어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3일이 지나고 장례식 절차에 따라 다니시던 교회로 운구해 마지막 예배를 드리며 국화꽃 한 송이를 운구에 올려놓는 순간에서야 그 사실이 실감 났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필자는 밖으로 나와 한없이 울었습니다.

한참 동안 입을 막은 채 엉엉 울고 난 후, 다시 식장으로 돌아와 무사히 장례식을 마쳤습니다. 장례식이 끝날 무렵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도 참석해, 장인께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준 일들이 드러났습니다.

장인께서는 살아생전 도와준 그분들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부탁을 하셨지만, 장례식장에서는 이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찾아왔다고 합니다.

‘참으로 장인어른께서는 믿음의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는 것을 본 백부장과 함께 있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태복음 27:51-53)”라는 성경 말씀이 떠오릅니다.

장인어른께서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늘 기도와 사랑으로 누군가는 위안을 얻으며,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으며, 주님의 참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손수 작은 예수님을 닮아, 한평생 살아오신 분이셨습니다.

돈 많은 부자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직장인으로써 박봉에도 불구하고 배려와 나눔의 정신으로 살아오신 장인어른의 생전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는 출근길입니다.

목적지를 약 200m의 거리를 남겨두고, 마지막 오르막길에서 숨이 차오릅니다.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걸어서 올라가는 숨소리는 거칠게 가빠옵니다. 가방을 메고 우산을 쓴 채, 비바람으로 인해 옷이 젖어옵니다.

쏟아져 내리는 비 사이로 장인어른의 생전 모습이 떠오름은, 애틋한 그리움이 더욱 마음 한 구석에서 젖어오기 시작하는 비오는 날 아침이기 때문일까요.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 말씀을 몸소 실천하신 ‘작은 예수’ 장인어른의 따뜻한 사랑의 마음은 현 시대 모범된 주님의 신실한 군병 같습니다.

장인 장모께서 갑자기 찾아오셨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결혼반지를 빼서 대접했던 그 때 그 시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 때 반지를 빼어 대접하지 않았더라면 한평생 후회하며 살았을 걸 생각하니, 기회를 주시고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아름다운 아침 출근길입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