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설교자,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김도인 | 글과길 | 208쪽 | 12,000원

김도인 목사, 참 놀라운 사역자이다. 매우 평범하지만 매우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 좋은 모범이다.

필자는 ‘위인전을 읽지 말라’고 주장한다. 천재들과 범인들의 일상은 너무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 범인이 탁월한 위인인 경우가 있다. 3년이나 유급했다는 윈스턴 처칠도 그럴까? 그는 학자가 아닌 정치가였다.

충무공 이순신은 범인이었을까? 과거에 낙방한 것으로만 보면 평가가 쉽지 않다. 충무공은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좋은 예표이다. 임진왜란에 참여한 의병장들은 대부분 문인들이었다.

외람되지만 김도인 목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 큰 운동을 주도하는 사역자이다. 이러한 사역자는 좋은 예표, 모범으로 소개하고 싶다. 천재와 범인이 경쟁하면 누가 이길까?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이길 것이다.

김도인 목사는 한국교회를 향해 설교, 글쓰기, 인문학을 집요하게 주장했고, 그 주장이 한국교회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시켰다. 이제 그의 글쓰기는 언제나 작품이 될 정도로 놀라운 수준이 되었다.

<설교자,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는 출판되자마자 도서 판매 부문에서 상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 신뢰,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에서 인문학에 대해 강조하는 선도적 위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몇몇 연구자들이 인문학에 대한 저술을 펴냈지만, 너무 철학적이어서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나 김도인 목사의 저술은 매우 쉽고 자기체험적인 글이기 때문에,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선도하는 독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김도인
▲김도인 목사는 최근 3년간 <나만의 설교를 만드는 글쓰기 특강>, <언택트와 교회>, <독서꽝에서 독서광으로>, <설교자와 묵상>, <설교는 글쓰기다>, <설교는 인문학이다> 등을 잇따라 펴냈다. ⓒ크투 DB
인문학을 강조하다 과도한 면이 나타나기는 한다. 청교도주의에 대한 부분, 인문학 안에 있는 신학임은 사실이지만, 신학적 분별이 필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부분이 어떤 비평가에게는 좀 위험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연구가들은 공통적으로 학문 체계, 인문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주장하며, 인문학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신학과 설교가 특별계시에 근거한 은혜 분야이기 때문에, 좀 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21세기 사회는 첨단 지식 정보 사회이다. 1세기 농경 사회, 16세기 상업 사회의 변화 종교개혁가들은 탁월한 지성으로 변화를 주도했다. 21세기 사회에서 교회 사역자는 16세기 종교개혁가들과 동일한 패턴으로 우리 시대를 지식으로도 굳건하게 지탱하며 선도해야 한다.

아직도 20세기 초반의 패턴이라면 큰 일이다. 저자가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한 설교 연구가 이제는 한국교회 설교 운동을 선도하고 있다. 이는 저자가 가진 첫 개념, ‘콘텐츠(content)’일 것이다. 신학은 계승과 증진에 목표가 있지만, 콘텐츠는 이해와 교류에 목표한다고 볼 수 있다.

설교자와 인문학은 한 쌍이다. 칼 바르트처럼 인식할 것은 아니지만, 인문학 요소를 피할 수 없다. “인문학은 설교자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저자의 주장은 타당하다.

인문학은 설교자와 신학생에게 기본 과정이어야 한다. 인문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설교자가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인, 지식인이 될 때까지 꾸준하게 강조하며 훈련해야 한다. 이러한 부분에 평범한 사역자가 탁월하게 주장하며 선도하는 것이 정말 인문학적 성과일 것이다.

김도인 목사의 저술을 읽는 독자들이 김도인 목사를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 삼아서, 동일한 수준에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필자도 김도인 목사와 함께 뛰면서 그러한 수준에 올라가기를 사모하고 있다.

고경태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광주 주님의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