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두레마을
▲동두천 두레마을.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 작전을 처음 구상한 것은 서울이 인민군에 함락된 직후인 1950년 6월 29일이었습니다. 맥아더는 멀리서 서울을 바라보며, 9월 15일을 상륙 예정일로 하는 크로마이트 작전인 인천 상륙 작전을 구상하였습니다.

그러나 맥아더의 구상은 심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인천항의 조건이 여러 가지로 상륙에 부적합하다는 반대였습니다.

첫째는 좁고 구불구불한 수로 때문입니다.
둘째는 한정된 진입로 때문입니다.
셋째는 인천의 조석 차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점입니다.
넷째는 인천은 큰 함정이 상륙하기에 적합한 해안이 없는 점이었습니다.
다섯째는 요새화되어 있는 월미도 때문입니다.

반대자들은 이런 조건들을 고려하여, 군산이나 아산만 상륙을 추천하였습니다. 그러나 맥아더는 소신을 굽히지 아니하고 장장 45분에 걸쳐 연설하여 소신을 관철하였습니다.

“나는 우리의 정의와 자유가 아직도 확고함을 믿습니다. 북한군은 병참선이 너무 길어 서울에서 신속히 차단할 수 있습니다.

북한군의 모든 전투 부대가 낙동강에 투입돼 있어, 상륙 작전 방어에 전력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지적하는 인천의 지리적 곤란함 탓에 상륙 불가능 지역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역이용하여 기습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천에 상륙해야 합니다. 나는 적을 분쇄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장병 10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이 계획을 어찌 바꿀 수 있겠습니까!”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률이 오천 분의 일이라 합니다. 그런 악조건을 극복하고 상륙 작전에 성공한 사실이 기적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