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
▲세례 요한.
본문: 요한복음 3장 30절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거에 대한 부분입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의 선발대였습니다. 세상이라는 무대에 주님이 등장하시기 전에 그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 전초전을 하느라고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등장하자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 배경을 중심으로 하면서 “역설적인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30절)”.

1. 망가져야 하는 사람
망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입니다.

세례 요한은 망가지는 역할을 맡은 사람입니다. 망가지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망가지는 역할은 반드시 망가져야 합니다. 망가지지 않으면 성공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왜 망가져야 합니까? 그가 망가져야 주인공이 더 잘 되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마치 불쏘시개와 같은 운명의 사람입니다. 불쏘시개는 장작이나 숯불을 피울 때 사용합니다. 불을 쉽게 옮겨 붙이기 위하여 먼저 태우게 됩니다. 나뭇조각이나 소나무의 송진이 묻은 관솔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불쏘시개는 본무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희생되는 엑스트라와 같습니다. 마치 식욕을 돋우기 위하여 식전에 먹는 요리인 애피타이저와 같습니다.

세상에 살다가 망가져야 자신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순간 마음이 아팠습니다. 세례 요한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이 공생애가 시작된지 얼마 지난 후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 갇혀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참수형을 당함으로써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사람’의 생애를 마쳤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참 눈물이 나는 일입니다. 세례 요한에게는 아무런 영광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수고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주님은 면회를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냥 그대로 죽었습니다. 망가져야 하는 운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2. 망가져야 잘 하는 사람
망가져야 자신의 역할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망가지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망가지는 역할을 잘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처참하게 망가지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세례 요한은 망가져야 하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23절과 25절에 사이에는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가 나옵니다. 전혀 연결성이 없기에 24절은 빼도 될 만한데, 삽입구처럼 옥에 갇혀 죽을 운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잘 나가고 있는 사람에게 마치 곧 죽을 사람으로 표찰을 붙이고 있습니다. 실로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다만 이 말씀의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세례 요한도 장차 어떤 최후를 맞게 될 것을 작정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은 그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물론 세례 요한은 헤롯의 부도덕과 불의를 책망했던 일로 투옥되어 참수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이 예정돼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세례 요한은 이미 나이 삽십에 벌써 천명을 알았던 사람만 같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마치 세기의 명배우가 필생의 연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모습입니다.

요한은 자기의 큰 사명을 끝낸 후 때를 알고 지금 물러서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아니어도 사람은 물러날 때를 반드시 알아야 훌륭한 사람입니다. 물러날 때가 됐는데, 굳이 버티면서 추하게 억지를 부리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럽기만 합니다.

3. 망가질수록 성공하는 사람
망가질수록 주인공이 성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망가지는 역할을 잘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망가지는 역할을 잘 해야 성공하기 때문입니다. 처참하게 망가질수록 성공하는 사람이라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세례 요한은 그런 운명을 타고 태어났으니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처참하게 망가질수록 성공하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처참하게 망가질수록 성공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놀라운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그에게는 누구도 흉내를 내지 못할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바로 승리한 사람의 빛나는 겸손이 들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많이 가졌어도 남을 위해 한 푼도 쓰지 않은 사람과는 다릅니다. 가질 만큼 가지고 있어도 조금이라도 손해볼까봐 아등바등하는 사람과는 비교됩니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의 모습과는 너무나 비교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끝내 많은 재산을 모두 남겨두고 죽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례 요한은 성공한 사람만이 누리는 만족한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사명을 완수한 사람만이 누리는 아름답고 조용한 피날레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에게는 사명을 끝낸 사람의 성취감이 가득했습니다. 만족감이 주는 기쁨의 행복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맡은 본분을 잘 감당하고 감회스런 ‘My Way’를 부르는 멋진 사람만 같습니다.

김충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에서 만난 김충렬 박사.
4. 정리

생각보다도 길지 않은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높이는 우리가 되어서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낮아지고 주님은 높아지게 하소서. 우리가 무시되지 않으면서 주님이 높아지게도 하소서. 우리가 낮아져야 주님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우리를 낮아지게 하소서. 영원한 생명의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