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
▲강의 후 기도하고 있는 권율 목사.
어느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학교 앞 매점에 들렀는데, 어떤 술주정뱅이가 무언가를 손에 들고 뒤따라 들어왔다. 그 순간 매점 아주머니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율아, 저 아저씨 어떻게 좀 해 볼래? 거의 매일 찾아와서 술 달라고 행패를 부려. 돈이 없으니까 얼마 전부터 자기 집 쌀을 가져와서 술이랑 바꾸자고 그러네. 이젠 정말 나도 미칠 지경이다.”

나는 정의감에 불타올라 아저씨를 밖으로 끌어냈다. 만취 상태에 있는 아저씨에게 집이 어디냐고 다그쳐 물었다. 비틀거리는 자세로 아저씨는 자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 손에 이끌려 가는 와중에도 술 가져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저씨의 집은 우리 학교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일단 방 안에 같이 들어가서 방문을 닫아 버렸다.

“아… 아저씨, 근데 왜 그렇게 술… 술을 들이마셔요?”

“어린 학생은 내 마음 모를 거야. 난 정말 괴롭단 말이야.”

“오직 하… 하나님만이 아저씨의 마… 마음을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술을 끊고 새… 새사람으로 거듭나세요. 하나님을 의지하시란 말… 말이에요!”

갑자기 잠잠해진 아저씨는 술기운을 이기지 못해 방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나는 가까운 교회당으로 달려가 이 아저씨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이 아… 아저씨 아무래도 알코올 중독자 같은데, 주… 주님의 전능한 손길로 치유해 주십시오. 모든 사… 사람들이 이 술주정뱅이를 포기할지라도, 저는 주… 주님의 능력을 믿고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 하나님만이 이 아저씨를 새 사람으로 거… 거듭나게 하실 수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거의 두 달 동안 아저씨의 방에 매일 찾아갔다. 찾아갈 때마다 아저씨는 알코올에 쩔어 있었고, 정신없이 소리 지르다가 자기 인생을 서글프게 비관하고 있었다. 방 안은 청소를 안 해서 정말 지저분했고, 전기밥솥에는 오래된 밥이 딱딱해져 냄새나는 곰팡이로 득실거렸다. 완전히 실직자 노총각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인근 주민들에게 아저씨는 악명 높은 술주정뱅이로 소문이 자자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행패를 부렸으면, 주민들이 파출소에 신고를 다 하겠는가!

한 번은 아저씨가 어느 교회에 찾아가 신세 한탄을 늘어놓다가, 목사님에게 멱살을 잡혀 호되게 당한 적도 있었다. 술주정뱅이 주제에 감히 신성한 교회당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냐고, 목사님이 이 아저씨를 심하게 야단치신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교회가 세상에서 못 배우고 가난하며 비천한 자들은 물론, 심지어 알코올 중독자까지 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고3이 되었다. 친구들은 신학기 준비에 여념이 없었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아저씨 생각뿐이었다. 또다시 아저씨 방으로 찾아갔다.

그날따라 방문 앞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평소와는 다른 기운이 감돌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방문을 열기 전부터 아저씨의 술주정 소리가 들려왔어야 하는데, 그날은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혹시 알코올 중독으로 죽은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는데, 멀쩡한 사람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자기도 놀랐다는 반응이었다.

“학생, 누구요?”

그 순간 나는 까무러치게 놀랐다. 사람이 술에 취해 ‘필름이 끊어지면’ 전혀 기억 못한다는 것을 처음 목격하게 되었다. 평소대로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처음 보는 학생한테 이런 말을 하기가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나의 중대한 결심을 말해야겠네. 난 이제부터 술을 끊기로 했다네. 학생이 나의 증인이 되어 주게.”

그 순간 이 아저씨가 또 술주정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다음 날 성경책 한 권을 들고 방으로 찾아갔다. 아저씨의 결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같이 계셨다.

“학생, 인사하게나. 우리 어머니야.”

“할머니, 안… 안녕하세요? 저는 이곳 현풍고등학교 학… 학생입니다.”

“그래. 익히 들어서 알고 있어. 학생, 정말 고마워. 우리 아들 새사람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이게 다 학생 덕분이야.”

“아… 아니에요. 저는 아… 아저씨를 위해 기도한 일밖에 없습니다. 하… 하나님께서 아저씨를 변… 변화시키신 거예요.”

나는 두 모자(母子) 앞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였다. 손에 들고 있던 성경책을 선물로 드렸다. 역시 하나님은 정말로 위대하신 분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술꾼이라도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24년이 지난 그 소년은 이제 목사가 되어 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에 힘쓰고 있다.

그 소년이 경험한 복음은 죄인의 실존에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다!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알려주는 유일한 길이다.

그 복음이 온 세상에 제대로 울려 퍼지길 오늘도 노래하고 있다.

권율 목사
경북대 영어영문학과(B.A.)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청년들을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다. SFC(학생신앙운동) 캠퍼스 사역 경험으로 청년연합수련회와 결혼예비학교 등을 섬기고 있다.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폭력 및 부모 이혼 등의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으로 인생이 ‘개혁’되는 체험을 했다. 성경과 교리에 관심이 컸는데, 연애하는 중에도 계속 그 불이 꺼지지 않았다. 부산 부곡중앙교회와 세계로병원 협력목사로 섬기면서 가족 전체가 필리핀 선교를 준비하는 중이며, 4년째 선교지(몽골, 필리핀) 신학교 집중강의 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저서는 <21세기 부흥을 꿈꾸는 조나단>, <올인원 사도신경>, <올인원 주기도문>, <올인원 십계명>이 있고, 역서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영한대조)> 외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