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두레마을
▲동두천 두레마을.
6.25 전쟁은 단군 이래 최악의 비극이었습니다. 임진왜란 7년의 환란이 끔찍하긴 하였지만, 이민족의 침략으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은 동족간의 전쟁이었기에 그 상처와 고통은 더더욱 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군사적인 면에서 6.25 전쟁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보호하시어 공산화를 막으시고 자유 한국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6.25 전쟁에서 겨레가 체험하였던 기적은 5가지입니다. 첫 번째 기적과 두 번째 기적은 지난 글에서 적은 바입니다. 3번째 기적을 오늘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탄생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1945년 일본제국주의 통치가 끝나고 미군이 진주하면서 미 군정이 시작되었습니다. 3년간의 미 군정 기간 동안에 실시한 여론조사가 있습니다. 여론조사 질문이 앞으로 세워질 신생 독립 국가 대한민국이 공산주의를 택할 것인가, 민주주의를 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국민 78%가 공산주의 국가를 택하였습니다. 거기에다 박헌영이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조직력과 선동력을 갖춘 천재적인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박헌영이 이끄는 조선공산당은 무려 1백만에 가까운 당원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 힘을 믿고 박헌영은 인민공화국 설립을 선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 군정 당국은 그런 조직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유엔 감시 하에 총선거를 실시하여 국민들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안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박헌영 진영에서 치명적인 실책을 범하였습니다. 1백만에 이르는 당을 관리 운영하기에 자금의 압박을 벗어나려고, 위조지폐를 찍었습니다.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선택한 악수였습니다. 첫째는 공산당 운영 자금을 확보하고, 둘째는 경제를 혼란에 빠뜨려 공산주의에 유리한 정국으로 조성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위조지폐를 너무 많이 찍었습니다. 군정 하 경찰이 조사에 착수하여 뚝섬 지역에 있는 조선정판사란 인쇄소를 급습하여 지폐를 찍고 있는 12명의 일꾼들을 검거하였습니다.

그런데 조사 결과 그들 모두가 공산당의 열성 당원임이 드러나고 그 배후에 박헌영이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국민들이 공산당의 실체를 알게 되고 민심이 공산당 지지에서 떠났습니다.

그리고 박헌영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자 견디다 못한 그는 관 속 시체로 위장하여 서울을 벗어나 북한으로 도피하였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뻔한 박헌영이 몰락케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철저한 반공정신에 자유 민주주의의 주창자인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이 될 수 있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해방 후 격렬하였던 좌우 대립에서 자유 민주 세력이 정국을 주도할 수 있게 된 과정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