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밤 지도 기 전망 공기 항공 비행기 도시 창 고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야경. ⓒ픽사베이
한국 선교의 활성화는 1988년 여행 자율화가 시작되고, 1990년 공산주의가 무너진 시기를 기점으로 본다면 이제 30년을 지났다.

선교사로 출발하는 시점이 일반적으로 빠르면 대략 30대 중반이나 후반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들이 거의 60대 초, 중반 혹은 70대로 들어서는 시점에 도달하였다.

반면 선교지로 들어오는 후배 선교사들이 매우 부족하다. 러시아 같은 경우는 각 교단별로 살펴보면 거의 제로 상태이다. 가뭄에 콩 나듯 10년에 걸쳐 한두 가정 정도 들어오는 것이 전부이다.

이유를 들라 하면 대체적으로 한국교회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둘째로 지역이 멀고 선교비가 많이 소비되는 사역지이며, 셋째 투자하는 사역비에 비해 사역의 열매가 부족하다는 것이 한국교회가 바라보는 시각일 것이다.

그래서 위치가 가깝고 선교비가 적게 들어가며, 사역의 열매는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는 아시아 지역을 한국 목사들이 선호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결국 노령화되어가고 있다. 사역자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가운데 선교 현장에 당면한 시급한 문제는 무엇인가? 바로 ‘리더십 이양’ 문제일 것이다.

30여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각 선교지마다 아주 열심히 센터를 건축하고, 교회가 건축되었다. 한국 선교 특성상 선교사가 주도하여 지금까지 일을 진행해 왔는데, 이제 대부분 마무리를 해야 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10여 년이면 절반 이상이 은퇴 혹은 철수를 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말인데, 현장의 문제는 ‘리더십 이양’이 잘 안 되어 있고, 준비도 거의 안 되었다는 것이다. 각 사역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알아서 할 일이지만, 일반적인 경우를 논하는 것이기에 참고하시기를 바란다.

첫째, 한국 선교사들은 이양하려는 의도가 처음부터 없는 듯하다. 그러니 30년이 지난 시점에도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것은 한국 선교사의 사역의 특징인 독점 때문이다. 사역도 독점, 건물도 독점, 설교도 독점하면서, 동역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후배나 제자들에게 사역을 나누지 않고, 혼자서 다 한다. 혼자 고민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다 혼자 결정한다. 특별하게 일 잘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둘째, 선교사가 젊고 건강하게 사역할 때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 1990년대 건너온 사역자들은 내려놓아야 할 때가 점점 가까워오고 있다. 그런데도 리더십 이양이 안 되어 있다. 사역에 대한 이양도 안 되지만, 문제는 건물과 재산에 있다.

선교사가 머리가 희어지도록 힘들게 모금하고, 기도제목 보내고, 후원금 모아서, 시간과 건강과 온 힘을 다해 센터나 교회건축을 잘 해 놓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큰 문제인 것이다.

현지 사역자에게 넘겨주기엔 자질이나 자격이 안 되는 것 같고, 선교비로 지은 것을 팔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 선교, 사역의 전환이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사역자, 사람, 제자를 양육해야 한다.

이것을 필수 사역으로 진행해야 한다. 1년에 1명씩 누군가를 찾고 찾아서 사역할 수 있는 데까지 훈련하고 지도하고 후원하여 제자를 키워야 한다. 이 사역에 실패하면 다른 사역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 선교사는 대부분 죽을 때까지 하려고 그러는지, 사역을 물려주지 않는다. 독점 사역, ‘나 혼자서도 잘해요 사역’을 하는 것은 한국인 선교사들의 특징이지만, 이것은 ‘자기를 위한’ 사역이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혼자서 자기 맘대로 하는데 누군들 못하랴? 지금이라도 사람을 키우고 훈련하라고 권한다.

둘째, “나를 따르라”로 대표되는 제2차 세계대전 식의 리더십에서, ‘동역, 협력과 섬김의 리더십’으로 전폭적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언제까지 과거의 리더십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나를 중심으로 사역을 행할 것인가? 리더십 전환이 안 되면 한국으로 가서 목회를 하라. 이제는 쉽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상황에 따라?) 그러나 선교사는 동역, 협력을 기본으로 하여야 한다.

선교사가 중심이 되어서 건물 짓고, 교회 짓고 보여줄 것은 생겼지만, 정녕 사람을 키우지 못하여 넘겨줄 제자가 없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 아닌가?

이것이 오늘 현장에 닥친 문제이고 곧 다가올 문제이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1-2년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떤 경우 자식들이 대를 이어 신학교를 가고 사역을 이어받으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MK들이 사역자로 나서는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상황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저 아이가 신학교 공부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으로 ‘오메~’ 이런 소리가 나온다. 사명에 의한 것이라면 좋겠지만, 혹시나 재산 때문이라면….

서구 선교는 “문을 열고 나간다”고 말한다. 어쩌면 본연의 사역에 충실하고 몸을 가볍게 하였기 때문일 것이고, 이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선교사들은 너무 많은 것을 독점하고 그것에 묶여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에게 집중했다면 현장에 오늘과 같은 사역 이양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마무리 작업이다.

세르게이, 모스크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