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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식의 한 장면. ⓒUnsplash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요한복음 6:55-5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가복음 14:22-24)”.

말씀 중 “이것은 ‘내 몸’이라” 하셨습니다. ‘내 몸’은 예수님의 한 부분인 육신만을 뜻하지 않고, 예수님의 전부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떡을 떼어 주심은 십자가에서 예수님 자신을 모두 내어주신다는 상징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피’라” 하심은 예수님의 육신 한 부분인 혈액만을 뜻하지 않고. 예수님의 전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피를 쏟아 죽을 당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대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 사태가 예상보다 훨씬 길어져,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난 날 일상들을 그리워하면서, 하루속히 이 재앙의 시대가 끝나기를 소원하면서 마냥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만 짓고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면 성도들과 함께 친교하며 점심식사를 나누던 그 때가 떠오릅니다. 언제 또 다시 그런 날을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아쉬움으로, 고작 눈인사와 살포시 미소 지으며 헤어지는 지금의 순간이 애처롭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 친교를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한 끼니를 해결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인한 모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 시간들이 더욱 그립기도 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서 벗어나 그때처럼 함께 기도하고 식사도 나누며, 사랑과 아름다운 친교를 나누는 그 시간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도해 봅니다.

본문 속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눈 마지막 최후의 만찬은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시며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죽지 않고 썩어지지 않을 양식인 성찬 예배의 신비를 알려주십니다.

제자들과의 이별을 맞이하게 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셨던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십니다. 빵과 포도주를 들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 빵을 떼어주시고, 잔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 모두에게 주시며 새로운 계약을 맺으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하시며, 당신이 곧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며 당신의 몸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셔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로써 교회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현존해 계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오늘날 우리가 거행하며 받아먹고 마시는 성찬의 신비 안에서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우리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과 하나된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이 성찬 예식을 통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 안으로 일치하도록 늘 우리를 초대하고 계심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것, 비록 화려한 곳에서의 맛깔스러운 음식이 아니더라도 서로를 위한 사랑과 나눔, 친교와 일치가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하고 즐거운 식사 시간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우리를 위해 양식이 되어주신 예수님의 몸과 피, 그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만찬이요, 생명과 나눔, 화해와 친교의 값진 열매가 아닐까요?

예수님을 통해 영적인 생명을 얻고 참된 양식과 영원한 생명을 간절히 원하는 이들에게 사랑과 생명이 되어주는 우리의 삶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신비를 기념하는 만찬의 의미가 아닐까요?

우리 신앙인들에게 해가 바뀌는 신년, 성탄절, 노회나 총회를 시작하는 예배 순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찬식임을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성찬식 때 보면, 순서를 맡은 분들은 최소한 30분 전에 도착하여 기도함으로써 준비를 해야 하지만, 뭐가 그리 급한지 예배가 시작되어서야 헐레벌떡 숨을 고르며 자리에 착석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참으로 민망하고 어이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장관이나 국무총리, 대통령이 참석하는 자리였다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요? 거금이 들어오는 자리라면 시간에 늦으면서 참석을 했을까요? 세상 일에서 그랬다면 욕을 얻어먹든지, 해고나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 않았을까요?

물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자신에게 드리는 예배의 실수까지도 따지지 않으시고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선 안 되겠습니다.

성찬은 그리스도 자신이 희생제물로 바쳐진 예배를 직접 집전하는 구성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최고의 사랑 표현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은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나누어 되돌려드리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입니다.

이는 우리가 널리 다 아는 바, 예수님의 비유 중에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비길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왔기 때문에 용서한 것이 아니라, 아들이 돌아오기 전에 이미 용서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 하시고 늘 참고 기다려 주셨던 것입니다. 만약 아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용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어떤 지인으로부터 카톡을 받아 이를 널리 소개하고자 합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스승의 날을 맞아 자신의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지킴이 선생님에게 감사의 편지를 전했는데, 지킴이 선생님께서 그 학생에게 답장을 보낸 내용입니다. 감동이 되어 소개합니다.

“OO아! 스승의 날 썼다며 내게 편지를 건네주던 너의 모습이 너무 이쁘고 고마워 답장을 쓴다. 학교 안에서 잃어버린 물건이 보이면,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찾아 주고 싶어 분실물을 들고 교실복도를 돌아 다녔고, “제거요”하며 좋아하는 아이 들을 보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고 뿌듯했단다.

나는 기억도 잘 안 나지만 그 중에 너의 물건이 몇 가지 있었던 모양이구나! 그것을 기억하고 고마워해 주어, 나 역시 고맙고 그런 네가 기특하구나! 이 일로 해서 훗날 네가 분실물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애써 찾아 주는 마음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배우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성장해 가는 거니까 말이다.
OO아! 편지 정말 고마웠다.

2021년 5월, 지킴이 할아버지가 O의 O반 조OO 군에게 답장 쓰다”

필자가 알기로 이 초등학생은 4학년이며 부모는 교회를 다니는 크리스천으로, 믿음으로 아이를 가르치고 사랑으로 이웃을 위하며 정직하고 공공의 이익과 정의와 질서를 우선시하는 모범적인 가정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초등학생과 지킴이 선생님의 다정한 편지는 참으로 귀감이 되는 모습입니다. 분실물을 잃어버려 애타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속히 찾아주려고 애쓰시는 지킴이 선생님과, 분실물을 찾게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스승의 날’을 맞아 고마움을 전하는 학생과의 훈훈한 정은 중학생과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들은 물론 기성세대까지 본받아야 할 시대의 정신이 아니겠습니까?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시절에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이를 실천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잘못을 저질러도 아무런 느낌이나 죄책감 없이 살아가는 요즘 시대를 보노라면 참으로 애가 마르기도 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옛말을 떠올리며, 오늘날 기성세대에서 저지르는 행동들의 민낯은 물론 현재 소위 국가 지도자들의 모습까지, 참으로 부끄러워 아이들 보기에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특히 물건 아까운 줄 모르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 그리고 분실물을 찾아주어도 감사할 줄 모르고 “그것 그냥 버리지, 왜 들고 왔느냐?”고 짜증을 내는 요즘 사람들을 보노라면, 참으로 부아가 납니다.

물질만능시대에 우리는 남는 것들을 그냥 버리지 말고, 이웃에 대한 애틋한 마음으로 시선을 옮겨 봅시다. 우리 주위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허기를 해결해 주며, 주님의 피와 살을 나누는 성찬의 자리로 그들을 초대하는 아름다운 이웃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