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위기, 설교의 본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
설교의 본질, 본문 묵상 아닌 ‘복음 자체’의 선포
설교의 사유화로 교회 위기 오고 공동체성 상실
연합과 모임, 분열과 분리 지배하는 세상에 저항

성찬 알렉산더 슈메만
성찬
알렉산더 슈메만 | 김아윤·주종훈 역 | 터치북스 | 396쪽 | 22,000원

알렉산더 슈메만은 진중한 천재이다. 성공회 사제이지만 신학적 성향은 철저히 성경적 원리를 따른다. 그의 온화한 예리함은 성공회의 신학적 오류를 지적하는 동시에, 예전을 과도하게 무시하는 기존 개신교를 향한다. 그리고 진정한 성찬의 의미와 목적을 제시한다.

2020년 비아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우리 아버지>는 장엄하면서도 섬세했다. 그는 진부한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서도, 불필요하게 기이한 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그의 글은 진중하면서도 풍성하고, 포괄적이면서도 섬세하다. 각기 다른 소리를 내지만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 교향악 같다.

예배학을 신학의 경지에 끌어올린 그는 실천목회적으로만 보았던 예배에 깊이를 더함으로 기독교의 본질로서의 정체성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모두 12장으로 구분하여 성찬의 다양한 측면을 소개하고 있지만, 1장에서 전반적인 의미를 담아낸다. 개인적으로 1장과 2장은 유의해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슈메만은 성찬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풀어낸다.

초대교회는 ‘성회’와 ‘성찬’, 그리고 ‘교회’가 세 연합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분리 또는 괴리가 일어났다. 그러므로 예전 신학의 과제는 ‘이러한 연합의 의미와 본질을 밝히는 것(23쪽)’이다.

슈메만은 바르지 못한 성찬 이해가 스콜라주의 신학에서 태동하였음을 환기시킨다. 스콜라주의 또는 스콜라적 신학은 ‘거룩한 모임과 성찬, 그리고 교회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철저히 무시(23쪽)’함으로 성찬의 교회론적 측면을 간과한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다시 성찬이 교회론적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전개되는 다양한 성찬의 측면들은 ‘교회론적’ 관점에서 읽어야 할 것을 분명히 한다.

저자는 이것을 ‘하나님 나라로 본 성찬’으로 소개한다. 아마도 스콜라적 신학은 현재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병폐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예전을 중요시하는 정교회는 어떨까? 정교회 사제이기도 하는 슈메만은 처음 성찬이 가진 연합의 의미에서 벗이나, 참여자의 제한과 영역의 축소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역사의 변천 과정 속에서 ‘비잔틴식 예전 의식이 점진적이고 조직적으로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했고, 섬기는 자와 기도하는 자를 분리(32쪽)’시킴으로 성찬의 의미를 축소시킨 것이다.

슈메만은 이 부분을 3장 ‘입당의 성례’에서 좀 더 깊고 예리하게 다룬다. 정교회 예식에 무지한 필자로서는 저자의 용어들이 낯설지만,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4장 ‘말씀의 성례’는 현대 한국교회 개신교 설교자들이 신경을 곧두세우고 읽어야 한다. 슈메만은 성례로서의 말씀, 즉 설교의 위기는 설교자의 무능이나 빈약함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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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그렇다면 진정한 설교의 위기는 무엇일까? 설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데 있다.

“진정한 설교는 해박하고 유능한 신학 지식을 정확히 전달하는 복음서 본문에 대한 묵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교의 본질은 복음서에 대한, 다시 말해 복음서의 한 주제에 대해 설명이 아니라 복음 자체의 선포다. 설교의 위기는 무엇보다 말씀 선포가 일종의 설교자 개인의 일이 되었다는 데 있다(126쪽).”

설교의 사유화로 인해 교회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설교가 ‘개인의 일’이 되자, 교회는 급격하게 공동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성찬의 왜곡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주교와 사제들이 받은 가르침의 은사는 개인의 은사가 아닌, ‘믿음과 사랑의 연합체인 교회의 것(131쪽)’이다.

슈메만은 7장 ‘연합의 성례’에서 교회 연합의 전제를 ‘사랑’으로 정의한다. 그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이 교회의 삶의 근원이자 내용이며 목표(218쪽)’인 것이다.

교회는 성찬을 통해 연합하고 모인다. 연합과 모임은 분열과 분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저항하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이곳에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자 해서는 안될 일이다. 더 많은 내용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지난번 읽었던 윌리엄 윌리몬의 <오라, 주님의 식탁으로>도 굉장히 좋았지만, 알렉산더 슈메만의 <성찬>은 의전적 측면에서 더 깊고 웅숭깊다.

정교회의 예전학을 읽고 있으니, 우리가 초대교회에서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코로나 시대, 성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원한다면 기꺼이 이 책을 추천한다.

정현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