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부교역자로 청년 사역하고 있는 노재원 목사의 글을 연재한다. 노재원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연세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졸업(석사)했으며, 현재 ‘알기 쉬운 성경이야기’, ‘기독교의 기본 진리’, ‘영화를 통해 읽는 성경이야기’, ‘대중문화를 통해 읽는 성경이야기’ 등을 유튜브를 통해 연재하고 있다.

냉장고가 큰 이유
노재원 목사의 <성경으로 공간 읽기> #8

냉장고가 큰 이유
냉장고를 부탁해

당신의 집에는 냉장고가 몇 개입니까? 기본 냉장고에 김치 냉장고를 더해서 2개씩 보유한 가정이 적지 않습니다. 한 대의 냉장고에 담기에는 먹을거리가 많기 때문이겠죠. 냉장고의 크기만 커진 게 아니라 기능도 분화되어서 가정에서도 술 냉장고, 음료수 냉장고를 별도로 두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한편으로는 화장품 냉장고까지 생겨났죠.

식당도 아닌 가정에 냉장고가 많아진 이유는 대형 마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대형 마트의 기원은 미국의 교외 지역인데요. 구매자가 자동차를 몰고 가서 한 번에 많은 양의 식료품을 사오는 식이었죠.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도 대형 마트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요. 이제는 부도심에서도 대형 마트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대형 마트에 가면 으레 필요한 양보다 많이 구매하게 됩니다. 자연히 큰 냉장고가 필요할 수밖에 없겠죠. 한 집당 한 대 이상씩 자가용을 보유하게 되면서 한 번에 많이 구매해도 집까지 들고 오는 게 어렵지 않다는 점도 냉장고를 키우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크고 다양한 냉장고가 정말로 필요한 걸까요?. 냉장고가 커질수록 집안의 가용면적은 줄어드는데요.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먹을거리를 보관한다는 게 이치에 맞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마트 덕분에 익숙해진 초과 구매 습관은 못 먹고 버리는 경우를 자주 유발합니다.

한때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TV프로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유명인의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식물을 저명한 요리사들이 재료로 삼아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 프로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남의 냉장고 속을 들여다보는 재미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많은 경우 냉장고 안에 미처 먹지 못한 채 보관되어 있는 음식물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 프로그램은 바로 그러한 세태에서 착안한 것은 아닐런지요. 당신의 냉장고는 어떤가요? 마트에서 사온 냉동식품이나 재료들이 먹지 않은 채 고이 저장되어있지는 않나요?

인간이 사냥이나 채집을 해서 먹을 것을 확보했던 시기에는 남는 음식물이란 없었을 겁니다. 저장을 할 수 없으니 나눠 먹든, 과식을 하든 먹어치웠겠지요. 그런데 농경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정착을 하게 되고 곡식을 저장하게 되었습니다. 잉여 생산물, 다시 말해 먹고 남은 곡식들이 축적되면서 소위 사유재산이라는 게 생겨났습니다. 그 양의 차이는 곧장 빈부의 격차를 만들어냈죠. 마찬가지로 오늘날 크기가 크고 다양한 종류의 냉장고를 들여놓은 집이 그렇지 않은 집보다 부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만나를 저장하지 못한 이유

B.C.1400년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400여년간의 이집트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께서 주기로 약속하신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대이동을 하게 되죠. 이스라엘 민족은 40년간 사막과도 같은 광야에서 유랑을 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만나’라는 먹을거리를 하늘에서 내려주시죠. 만나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매일매일 내렸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하루 분량만 거두어야 했습니다. 한꺼번에 많이 거둬서 비축하는 건 엄격하게 금지되었죠.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을까요?

만약 많이 거둬서 비축하는 일이 허용되었다면 저마다 많이 거두려고 꾀를 내었을 것이고 탐욕이 개입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개인마다 비축된 양에 차이가 생겼을 것이고 그로 인해 사람들 간에 사회적 계층이 생겨났을 겁니다. 인간의 탐욕을 예지하신 하나님께서는 만나라는 음식을 저장하지 못하게 하심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자족하는 삶을 살게 하신 것이죠.

냉장고가 없어도

여기서 약간 곁길로 빠져볼까요. 조선시대의 얼음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관상>(2013)에서는 주인공에게 관상을 보러 온 사람들이 복채를 돈 대신 얼음으로 냅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는 서빙고를 훔치는 이야기인데, 서빙고는 얼음의 채취와 보존, 출납을 맡아보던 관아입니다. 이렇듯 얼음이 얼마나 귀했으면 화폐 대신 사용되고 나라에서 관리를 할 정도였을까요. 얼음이 귀했으니 냉장고는커녕 음식물의 보관이 여의치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요. 양문형 냉장고에, 김치 냉장고에 각종 음료수 냉장고까지 가득 채우고 사는 우리들은 그 옛날 조선시대 사람들보다 과연 행복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