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여가부)
▲여성가족부 홈페이지
샬롬을 꿈꾸는 나비운동(대표 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가 가정의 달을 맞아 발표한 논평에서 4차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가족 가치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샬롬나비는 24일 논평에서 “최근 우리 사회는 부모에 의하여 목숨을 빼앗긴 정인이와 보람이 사건에 의하여 부모의 사랑까지 흔들리는 사회가 되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여성가족부(여가부)가 대한민국 대전환 한국판 뉴딜이란 슬로건으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여 비혼 동거 및 동성애를 사실혼으로 인정하여 가족 범위를 확대하고 부성(父性) 우선 원칙을 폐기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어 “결혼과 혈연, 입양에 의한 가족만을 인정하는 현행 민법과 건강가정기본법의 기존 가족제도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것으로 전통적 가족 관련 가치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며 “법 개정보다는 먼저 오늘날 가정이 직면한 병리적 현상이 진단되어야 하고 이를 토대로 해결책이 논의되어야 한다. 개정안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회적 공정회를 통하여 논의 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정의 달에 해체된 가정의 문제점들을 성찰하며 사회지탱의 기본인 가정을 회복하자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성적 순결과 사랑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부모에 의하여 목숨을 빼앗긴 정인이와 보람이 사건에 의하여 부모의 사랑까지 흔들리는 사회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성가족부(여가부)가 대한민국 대전환 한국판 뉴딜이란 슬로건으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여 비혼 동거 및 동성애를 사실혼으로 인정하여 가족 범위를 확대하고 부성(父性) 우선 원칙을 폐기하려고 한다. 여가부의 이러한 건강가정기본법개정안은 결혼과 혈연, 입양에 의한 가족만을 인정하는 현행 민법과 건강가정기본법의 기존 가족제도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것으로 전통적 가족 관련 가치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법 개정 보다는 먼저 오늘날 가정이 직면한 병리적 현상이 진단되어야 하고 이를 토대로 해결책이 논의되어야 한다. 개정안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회적 공정회를 통하여 논의 기간을 거쳐야 한다. 샬롬나비는 이에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결혼과 성과 가정에 대한 성경적 모범을 찾아보려고 한다.

1. 여가부의 개정안은 시대적 젠더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것으로 전통가족을 해체시킨다.

가족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정부의 가족 정책은 시대적 젠더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것으로 인류가 여태까지 존속해온 가족 질서에 위배될 뿐 아니라 세대 및 가족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가 시대적 요구에 급속도로 따라가 졸속 법 개정을 하는 것은 기존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것이다. 비혼 동거와 사실혼(동성애 포함) 부부 등 법적 가족 범주를 확대하는 것은 가족 질서의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고 가족 개념까지 뿌리채 해체되는 사태로 번지게 된다.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지원하는 것은 법 개정 없이도 가능하다. 가정의 병리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최근의 여러 사회문제들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2. 정인이, 보람이 사건은 우리사회의 타락한 성윤리와 그로 인해 깨진 가정에서 기인한다.

최근 정인이와 보람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부모의 역할과 가정의 중요성과 올바른 성윤리에 대해 성찰하게 하였다. 사람들은 정인이의 양(養)부모와 보람이의 친모와 언니라고 밝혀진 사람들에 대하여 분노하였다. 일차적으로 이들이 지탄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지만, 한편 정인이와 보람이는 우리 사회의 타락한 성윤리와 도덕성으로 인한 희생 아동들이기도 하다. 여기에 교회의 책임도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현행법(입양특례법 제13조)은 친생(親生)부모가 입양을 신청하러 왔을 때, 충분한 상담을 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 입양 상담을 해주는 주체가 입양 알선 기관인 점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입양 알선기관은 입양 부모에게 입양아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이 준비된 책임 있는 부모인 것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입양 후에는 입양아가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 우리 사회는 생명을 존중하고 귀하게 양육하는 부모의 도리를 다시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성경은 부모의 마음에 대하여 인성의 근본을 알려주고 있다. 솔로몬의 유명한 재판은 어머니의 본성은 아이의 소유보다는 생명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부모의 권한을 포기한다 할지라도 자녀의 안위를 생각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이렇듯 부모의 사랑은 당연한 인류 사회의 본성 가치이다. 인간은 창조주께서 주신 본성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3. 가정은 사회를 유지하는 창조질서이다. 남편과 아내는 신뢰 안에서 피차 복종해야 한다.

결혼과 가정제도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 사람에게 주신 제도이며 가정은 그의 결과로 생겨난 사회의 기본단위이다. 가정이 안정되고 건강할 때 그 사회도 건강할 것이다. 성경에서는 부부의 관계를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로 묘사한다. 남편은 아내를 예수님께서 교회를 생명을 바쳐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고, 아내는 교회가 주님께 순종하듯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러할 때 가정은 천국과 같은 곳이 될 수 있다. 많은 가정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이러한 사랑과 순종에 대한 모델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남녀불평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는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골 3:18)“는 이 말씀은 당시에 여자는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전혀 없던 시대에 여자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주고 선택의 자유를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씀은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말라“(골 3:19).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는 말씀과 함께 균형되게 읽어야 한다.

4. 남녀의 차이 인정 및 가정에서의 아내와 어머니 역할도 상응하게 존중되어야한다.

체력적으로 남녀의 차이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녀의 차이는 해부학적인 것 말고도 존재하고 그것은 우열이 아니라 각각 다른 면에 강점이 있다. 남녀의 차이가 교육과 사회화의 결과도 어느 정도는 있지만 타고난 면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남녀평등에 있어서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해하면서도 각자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능력 있는 여자가 결혼하여 가사 일을 하는 것이 국가적 낭비라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평가이다.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들에 대한 평가가 나아져야 한다. 여자들도 물론 사회생활을 할 수 있고 부득이하게 취업 일선으로 내몰리는 어머니들이 있지만, 가사와 육아는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버리고, 자녀를 키우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존중해주어야 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해 결코 직업을 가지고 하는 다른 일들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귀중한 일이라는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을 가지고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아동 보육시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여러가지 면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어도 부모님께 개별적인 사랑을 받은 아이들에 비해 여기서 키워진 아이들은 스트레스에 약하고 큰 일에 도전하는 것에 주저한다고 한다.

5.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 도리의 근본이다.

십계명에서 부모공경의 계명의 위치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앞에 있다. 사람들은 살인하는 것이 정말 큰 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 십계명에서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더 앞에 놓으셨다. 그리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은 그보다도 더 앞에 놓으신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살인하거나 간음하지 않을 것이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이 부모를 거역하거나 살인하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악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계명은 다른 계명들과 달리 하나님의 축복이 명시되어 있다. “부모를 공경하면 오래 살면서 복을 누린다”(신 5:16)라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부모는 그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는 복을 받고 장수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6.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인격을 존중하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자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엡6:4) 이삭은 성경에서 부모님을 제일 공경하여 순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이삭에게 아브라함은 그만큼 신뢰할 만한 부모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떤 아버지였는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아버지였다. 둘째는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셋째, 아브라함은 자녀와 함께 예배드리는 아버지였다. 넷째,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아버지였다. 이 모습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에 반영되어 있다.(마26:39) 하나님과 예수님은 부모와 자녀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주신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육신의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녀가 되고, 또 자녀를 순종하게 하는 부모가 될 때 복된 가정이 이루어 진다. 자녀 인성 교육의 중요한 것은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자녀에 대한 가장 큰 선물이다.

7. 가정의 거룩함은 성적 순결을 지킴(간음, 동성애, 근친상간 금지)으로 유지된다.

배우자를 사랑하는 첫 번째는 간음하지 않는 것이다. 먼저 “간음하지 말라”(출20:14)는 말의 기본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합법적인 질서인 결혼 밖에서 행해지는 모든 성관계 금지를 의미한다. 근친 성관계, 매춘행위, 동성애, 수간 등이 금지된다.

동성애는 죄라고 금기하는 것과 동성애자가 교회에 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죄는 미워해야하지만 죄인은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따른다고 할 때도 동성애로 인한 건강을 잃어버린 사례들을 정직하게 살펴본다면 정말 그 생활에서 떠나기를 권하게 될 것이다. 동성애의 폐해를 알면서도 동성애를 지지한다면 그는 악한 사람일 것이다.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레이몽 아롱(Raymond Aron)은 그의 책 『지식인의 아편』(The Opium of the Intellectuals)에서 “정직하면서 똑똑한 사람은 절대 좌파가 될 수 없다. 정직한 좌파는 똑똑하지 못하고, 똑똑한 좌파는 정직하지 않다. 모순투성이의 사회주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면 명석하지 못한 것이고 알고도 추종한다면 거짓말쟁이(위선자)이다”라고 했다. 동성애에 대하여서 그 실상을 알고도 지지한다면 그는 정직하지 않은 사람일 것이고, 동성애의 문제점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무지한 사람일 것이다. 사랑한다고 다 결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성애자들에게도 있는 일이다. 이성애자들도 평생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날 수도 있고, 만나도 결혼 못하는 경우도 많고, 사랑해서 결혼했어도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네덜란드는 일찍이 동성애에 대한 낙인(烙印)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 온 나라로 동성애가 가장 허용적인(gay-friendly)나라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사회에 동성애에 대한 소수자 스트레스는 감소되어 왔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동성애자들의 기분장애, 불안장애, 약물남용 등의 유병률이 1996년도 조사에서 2009년도 조사에 이르기까지 예상과 달리 유의하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즉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호전하였어도, 동성애자들의 정신건강은 여전히 나빴다. 이 결과가 말하는 것은 “동성애 차별이 정신건강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네덜란드는 2000년 최초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이지만 그 이전과 이후에 동성애자들의 스트레스가 달라지지 않았다. 즉 차별금지법이 통과한다고 동성애자들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에게 아무 도움이 안되고 혼란만을 가져오는 차별금지법은 결코 통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동성애가 합법화되면 근친, 소아성애 등의 다른 성적 관계를 금(禁)할 토대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8.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를 가족이 모이는 가족 친밀 기회로 이용하자.

코로나 사태로 인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들이 많아졌다. 이를 가족 친밀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초대 교회의 가정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로마의 박해 아래서 교회가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가족이 함께 모여 작은 교회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부모님들이라면 이 기회가 자녀들과 함께 예배하며 말씀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귀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은 하나님이 세상의 여로(旅路)에 우리 인간에게 주신 참된 안식처, 휴식처, 충전소요 보금자리다.

2021년 5월 24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