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 아침 이슬 성령 햇빛 일출 풀 은혜 빛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사도행전 2:1-4)”.

오순절 성령강림은 교회의 탄생을 알리는 징표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성령의 역사를 통해 각 개인들에게 실질적으로 적용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구약의 오순절이 육의 열매를 맺는 날이라면, 신약의 오순절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날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해 정식으로 교회가 탄생하였고, 함께 모여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들은 영적 이스라엘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인물들이었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특히 성령은 삼위일체 세 위격의 하나로서, 삼위의 구분은 구원과 관련된 사역에서 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성부는 구원을 계획하십니다. 성자는 구원에 필요한 일을 완수하시고, 성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육체적으로 현현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성자가 완수한 구원의 은총을 구원받을 사람에게 적용하십니다.

때로 신앙인들 중에는 성령을 어떠한 외적·내적 힘이나 에너지와 같은 개념으로 생각 또는 혼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령은 성부, 성자와 더불어 하나의 인격이라는 일반적인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에 따른 것은 아닙니다.

특히 지난 주일은 성령강림 주일이었습니다. 부활주일부터 성령강림주일까지 50일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을 지속적으로 기념하고 축하한 데 이어, 교회가 새롭게 탄생하게 됨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부활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의 주일을 ‘성령강림주일’로 지켜져 왔습니다. 그 사이에는 일곱 주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7일마다 맞이하는 안식일 축제를 다시금 일곱 번 반복하는 날을 소위 ‘오순절’이라고 했습니다.

‘오순절’이라 함은 유대인의 밀 수확 철이고,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야훼 하나님께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때 제자들은 유대인이 두려워 문을 잠근 가운데 한 자리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으로부터 평강과 성령을 선물받고, 교회 공동체로서 새롭게 태어나므로 널리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 공동체의 시작이 바로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뜨겁게 임하신 날을 기억하는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이는 곧 교회가 처음 시작된 기념주일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성령과 함께 탄생하였고, 성령의 능력으로 지금까지 자라왔습니다. 미래 역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를 완수하게 될 것임을 믿음으로 확신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교회의 생명이요 핵심임을 신앙인들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거센 바람과 불꽃 모양의 혀, 숨으로 표현되는 성령이 사도들에게 내려왔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한 그들에게 다가와, 평강과 성령의 열매로 매일 같이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나게 하심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사도들은 날마다 성령을 따라 살게 될 것이며, 성령이 주장하는 대로 순종하며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주일은 성령을 따르는 삶을 일치의 삶이라고 신앙인들에게 일러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래, 인간의 잘못으로 하나님과의 일치가 파괴되고, 서로의 관계 속에서도 바벨탑이라는 붕괴의 혼돈 속에 일치의 언어를 잃었는데, 성령의 은총으로 우리가 다시 일치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성령에 의해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의 입으로 주님을 고백하고 한 몸을 이루게 된다고 말합니다. 복음은 성령에 따라 일치를 이루는 삶이며, 서로 용서해주며 사랑하는 것임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 평강과 성령을 선물받은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신실한 사람으로서 참 제자가 되었고, 이제 그들은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으며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이 땅 위에 교회가 지속하는 한, 성령강림 사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면서 복음을 위한 선한 싸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로써 평강과 성령을 선물로 받은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제일 먼저 추구해야 할 것은 주님의 영과 그 영의 활동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특히 성령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오시며 생명을 전해 주십니다. ‘주님의 영’이 아닌 ‘육의 영’을 갈망하며, 오늘의 신앙인들은 주님을 잊고 살아갑니다.

주님의 영에서 멀어져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몸에 치장하며,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어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달리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는 주님의 그 안타까운 마음을 위로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고 기도하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십자가 군병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로써 우한 코로나19로 인해 소망을 접은 이 땅 영혼들을 위해 발벗고 나서서 주님의 기쁜 복음을 함께 나누고 전하며, 그들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거나,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주님을 내팽개치거나, 주님을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이용하는 그런 파렴치한 소굴에서 벗어나, 성령강림주일을 통해 회개하고 돌아오는 놀라운 삶으로 다시 신앙생활을 하는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처음 마가의 다락방에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유대인이나 로마 병정들에 의해 혹 들키지 않을까 초조한 마음으로 모였지만,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임하셔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사라지고, 나서서 크게 소리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에 비해 오늘날은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 시대입니까? 그러나 이 자유로움에 안주하다가는 끝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말로만 초대교회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신앙인들은, 아마도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소리치는 꽹과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 우리 신앙인들은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눈과 귀, 그리고 호흡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깨달으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외되고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슬픔에 젖어 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청하는 저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 함께 복음의 기쁜 시간을 나누는 지혜로운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