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교수(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소장, 장신대 기독교교육학)
▲박상진 교수가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위축시키는 교육 정책들을 지적하며, 기독 사학의 정체성 위기 극복을 위한 제언을 하고 있다. ⓒ송경호 기자
점점 강화된 사학공영화 정책, 사학 존립 위협

박상진 교수(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소장, 장신대 기독교교육학)가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위축하는 교육 정책들을 지적하며, 기독 사학의 정체성 위기 극복을 위한 제언을 했다. 기독 사학의 정체성 확립에 앞장서 온 박 교수는 20일 출범한 500여 기독교 사학법인들의 연합체 ‘사학법인 미션네트워크’의 이사들 중 유일한 상근직인 상임이사로 임명됐다.

박 교수는 창립총회 직후 진행된 세미나에서 “오늘날 한국의 공교육 현실 속에서 기독교 사학은 정체성의 위기에 처해 있다.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립학교를 설립할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기독교 사립학교를 포함한 종교계 사립학교가 그 건학이념대로 교육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특히 최근에 더욱 강화되고 있는 사학공영화 정책은 과연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사학이 존립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독교 사립학교가 지니는 딜레마는, 사립학교이면서도 공교육에 편입되어 있기 때문에 자율성과 공공성이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기독사학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몇 가지 원인을 지적했다.

평준화, 개정사립학교법, 종교학 과정의 위험성

그 첫 번째로 박 교수는 ‘평준화 정책’을 꼽았다. 그는 “평준화제도 시행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종교교육과 관련된 갈등과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학생의 종교의 자유와 학부모의 학교 선택의 자유, 그리고 종교계 사립학교의 종교교육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평준화제도의 시행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립학교를 평준화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라며 “자율성의 핵심요소인 학생선발권이 상실되고, 학생들과 부모들은 학교선택권을 상실했다. 운영 자율성의 근간인 등록금 책정권이 사라지고, 정부 보조금이 주어지면서 국가의 통제 속에 들어갔다. 평준화 제도로 사립학교의 정체성은 결정적으로 약화되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로 ‘개정사립학교법’을 들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특징인 ‘개방형 이사제’의 핵심 내용은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회에 개방이사추천위원회를 두되 그 위원의 1/2을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회가 추천하도록 한 것, 사학법인 이사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임시이사로 파견하는 것을 허용하되 교육부 장관 아래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두어 임시이사회의 선임, 해임, 사학 정상화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공공성을 지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사학법인 구성의 자율성 자체를 훼손하는 방식이 아닌 사학 본래의 기능을 통해 공공성을 함양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세 번째로는 2011년 개정된 ‘종교학’ 교육과정을 지목했다. 그는 “종교계 사립학교의 건학이념은 특정 종교의 전통과 신앙에 근거한 종교교육임에도 불구하고 국가교육과정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은 종교 일반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종교학 교육과정”이라며 “건학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종교교육과정을 작성, 운영할 수 있어야 하지만 종교학 교육과정으로 획일화함으로써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사고 폐지, 국가주도 공영형 사학 정책도 지목

대광고등학교(학교법인 영락/대광학원), 영훈중고등학교(학교법인 영훈학원), 한동대학교(학교법인 한동학원)
▲국내 주요 기독교 사학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대광고등학교(학교법인 영락/대광학원), 영훈중고등학교(학교법인 영훈학원), 한동대학교(학교법인 한동학원) ⓒ크리스천투데이 DB
네 번째로는 ‘자사고 폐지 방침’을 들었다. 박 교수는 “현재 전국적으로 40여개의 자사고가 운영 중인데 문재인 정부 및 진보 교육감들의 자사고 폐지 정책으로 인해 존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며 “더욱이 2019년 11월, 교육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2025년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겠다는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을 발표했다. 평가방식을 통한 재지정 여부 결정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자사고 폐지 정책”이라고 했다.

그는 “자사고는 어떤 의미에서 평준화 제도로 인해 사립학교가 원천적으로 존속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나마 사립학교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폐지보다는 본래의 취지대로 획일적인 교육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성 추구가 이뤄져야 한다. 종교계도 자율성을 주장하면서도 실제적으론 입시위주의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그 자율성을 사용한다면 폐지론자들에게 더 큰 정당성을 부여해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섯 번째로는 ‘국가 주도의 공영형 사학 정책’을 꼽았다. 그는 “국가가 교육을 주도하는 것이 ‘교육의 국가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국가는 교육지원과 교육복지의 책임을 져야 하지만 부모와 교사, 학교의 자율성을 무시하거나 제한하고 교육국가주의의 성향을 띠게 된다면 이는 전체주의교육으로 나아갈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학 간 긴밀한 협력, 학교선택권 운동 등 제언

박 교수는 이와 더불어 기독 사학의 정체성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기독교 사립학교 재건에 대한 의지와 비전 ▲기독 사학의 정체성 및 건학이념 연수로 모든 구성원들의 의식 확립 ▲기독교학교의 신뢰도 회복 및 이미지 제고 ▲학교선택권 운동(기독학부모운동) ▲기독사학 유관기관과의 긴밀한 협력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기독 사학에 대한 공감대 형성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기독교사학이 직면하고 있는 작금의 위기는 고통스럽고 위험스럽지만, 오히려 정체성을 회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135여 년 기독교학교의 역사에 있어서 최초로 출범하는 기독교사학법인 연합체로서 사학법인 미션네트워크의 역할이 중요하다. 긴밀한 협력을 도모하며, 모든 기독교 사학 및 관련 단체들이 연대한다면 한국 교육사 어느 시기에서도 이루지 못한 기독교 사학의 정체성 회복과 건학이념 구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나타냈다.

한편 미션네트워크 창립총회에서는 한동대학교 법인이사장 이재훈 목사기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이외에 고명진 목사(예닮학원 이사장), 김요셉 목사(중앙학원 이사장), 김운성 목사(영락·대광학원 이사장), 김은호 목사(영훈학원 전 이사장), 김종준 목사(꽃동산학원 이사장), 박광준 목사(숭실대 이사장), 박상진 교수(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장), 손진철 목사(제일학원 이사장), 이재훈 목사(학교법인 한동대학교 이사장), 정길진 목사(진선학원 이사장)가 이사로 선출됐다. 상근직으로는 상임이사에 박상진 교수, 사무총장에 함승수 교수(숭실대)가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