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에 붙잡히기 위해’ 성경 읽기 계속 늘려
프로그램이나 행사처럼 읽으면 감동도 은혜도 없어
기도해도 바뀌지 않다가… 나 자신부터 바뀌니 행복

김일수 성경통독
▲성경을 매일 120여장 읽고 있는 김일수 목사. ⓒ이대웅 기자
하루에 성경 120여장씩을 읽고 목회와 설교가 달라진 목사가 있다. 성경 장수가 총 1,189장이니, 열흘이면 1독을 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올해까지, 성경을 240독 정도 했다고 한다. 인터뷰를 고사하다 은퇴를 앞두고 어렵게 자리한 서울 노량진동 헤브론교회 김일수 목사가 들려주는 성경 통독 이야기다.

-어떻게 성경 읽기 분량을 늘리게 되셨습니까.

“본격적으로 많이 읽게 된 것은 7년 전부터입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 사도 바울이 주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향해 달려간다는 말씀에 은혜를 받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께 붙잡혀 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사도행전 18장 5절,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 말씀에 붙잡혔다’는 말씀을 봤습니다. ‘이거구나’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붙잡히면, 예수님께 잡힌 인생을 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전에는 하루 10장 정도 읽고 1년에 3-4회 통독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사실 그 정도로 읽는 목회자들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감동과 도전을 주셔서 하루 20장 읽기로 늘렸다가, 두어 달쯤 지나 40장씩 읽었고, 1년 후 60장씩 읽게 됐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자리가 잡혀서 하루 120장씩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성경을 하루에 어느 정도 읽으시는지요.

“하루 120장 정도 읽습니다. 한 달에 한 3번 정도 1독을 하게 됩니다. 성경이 1,189장이니, 열흘 정도면 읽을 수 있습니다. 1년이 365일이니, 1년에 36회 정도 통독하게 됩니다.

원래 새벽 4시 반쯤 일어났는데, 성경 읽을 시간 만들어야 한다는 감동을 주셔서 한 시간 일찍 기상하고 있습니다. 3시 반부터 새벽과 아침 시간 50-60장을 읽고, 나머지 오전 오후 중에 30장 정도 읽습니다. 저녁에도 기도하면서 30장을 읽습니다. 관주나 해설 없이 말씀만 기록된 성경을 읽습니다.”

-큐티처럼 읽으시는 건가요.

“그냥 읽습니다. 전에는 큐티도 하고 교인들에게 큐티로 교육도 했습니다. 하지만 큐티는 좀 인위적인 느낌이었습니다. 매뉴얼이 정해져 있고, 교재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큐티는 정말 성경을 읽기 어려운 평신도들이 영적으로 ‘연명’하는 정도밖에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루 10장 읽어서는 설교자로서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성경을 통독하면서 주님이 주신 감동은,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통으로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내용은 주석을 보고 해설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러다 보면 깊게 들어갈 수 없고 전체 맥락도 못 잡게 됩니다.

모르면 건너뛰면서 통으로 읽다 보면, 메시지가 필요할 때 깨달음을 주십니다. 성도들에게도 그렇게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그래도 목회 일정이 바쁘실텐데, 어떻게 시간을 확보하시나요.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첫째로 성경 읽기를 일종의 교회 프로그램이나 행사처럼 진행해서는 별 감동도 은혜도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개개인에게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말씀을 읽어야겠다는 감동과 도전을 받고, 예수님께서 인도해 주셔야 가능합니다.

둘째로 시간에 대한 ‘영적 다이어트’입니다. 시간은 만들어야 합니다. 2시간 30분 정도 읽는데, 시간이 쉽게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상을 1시간 일찍 하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일찍 일어난 만큼 일찍 잡니다. 오후 8시 30분이면 잡니다(웃음). 7시간 정도 수면을 취합니다.

개인적으로 새벽예배 전 성경을 읽는 게 가장 좋습니다. 아침에 신문을 1시간 정도 읽었는데, 끊도록 하셨습니다. 이제 인터넷 헤드라인 뉴스만 대충 봐도, 사회 흐름을 대충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독서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9절처럼, 세상의 초등 학문은 약한 것입니다. 신앙서적과 간증서적 역시 성경에는 비할 수 없지요. 성경에 ‘올인’하기 위해, 주님 주신 감동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성경 주석을 약간 보는 것 외에는 거의 독서를 하지 않습니다.

교회 행사도 ‘다이어트’하게 됐습니다. 대폭 줄이고 하나님 앞에서 필요한 것들만 하고 있습니다. 큐티와 제자훈련은 중단했습니다.

마지막 ‘다이어트’는 사람들과의 ‘만남’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데는 굉장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꼭 필요한 만남만 갖고 있습니다.”

김일수 성경통독
▲김일수 목사가 성경을 1독 할 때마다 기록해 놓은 종이. 김 목사의 성경에는 메모와 밑줄이 그득하다. ⓒ이대웅 기자
-성도님들 반응은 어떤가요.

“젊은 장로님들이 성경통독 채팅방을 만들어 1년 3독·2독 그룹을 이끌고, 초신자는 1독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일종의 제자훈련입니다. 구역장 훈련 등도 성경으로만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 믿던 친구가 오면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새신자 교육 정도만 합니다.

저도 경험해 보니, 교회에 오래 다니고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사람이 잘 안 바뀝니다. 그런데 성경을 제대로 읽게 하니까, 사람이 바뀌더라고요. 성도들 간증이 그렇습니다.

몇십 년간 교회를 다니던 한 집사님이 성경을 2회 읽고 3번째 읽더니, ‘정말 놀랍습니다. 수십 년 신앙생활을 했는데 변하지 않았지만, 제대로 정독하니 내가 바뀌는 걸 느낍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간증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저 자신을 봐도 그렇습니다. 성경 100독, 200독을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저 자신이 바뀌는 일입니다. 제가 볼 때 저 자신이 변해야 하는데 하는 면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내에게도 자꾸 요구하고 지적하다, 이제 그런 게 없어졌습니다. 인위적인 노력이 아니라, 말씀에 은혜 받고 변화되니 저절로 그렇게 됐습니다.

시편 23편 1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말씀의 원래 깊은 뜻은 ‘아무 소원이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소원이랄까, 요구사항이 없어졌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트집잡을 게 보이지 않으니, 잔소리도 없어집니다. 불평불만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는 목사 관점에서 볼 때 못마땅한 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긍휼함이 느껴지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100독을 하고부터, 설교 원고를 쓰지 않게 됐습니다. 말씀으로 충만해져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된 것인가요.

“성경을 매일 가까이하다 보니, 그만큼 예수님과도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처럼 새롭게 변화되는 느낌입니다. 주님께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는데, ‘온유와 겸손이 이런 거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온유란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기도보다 성경 읽기가 100배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둘을 같은 비율로 했지만, 지금은 말씀에 은혜를 받다 보니 사실 기도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말씀이 믿어지고, 말씀을 보면서 기도가 됩니다. 말씀과 기도의 경계선이 없어졌습니다. 기도는 아무리 많이 해도 자꾸 이기적이고 자기 욕구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을 모르면 기도가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튑니다. 그런데 지금은 말씀을 읽는 자체가 기도가 되니, 기도가 훨씬 더 편해졌습니다.”

-아까 ‘그냥 읽으라’고 하셨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

“‘그냥 읽으라’는 것도 주님께서 주신 감동입니다. 처음엔 다 이해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그냥 읽어 나가면서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말을 들어야지, 네 생각과 의지로 이해하려 하고 궁금한 것을 해석하면 더 이상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첫째 단계는 주님께서 어떤 메시지를 주시나 ‘듣는 것’이라면, 다음 단계는 주님을 ‘보는 것’입니다. 말씀에만 집중하면 안 되고, 그 말씀을 주시는 주님을 영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욥도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주님에 대한 현재적 체험과 임재, 살아계심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주님과 교제하면서, 주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설교라는 말도 잘 쓰지 않습니다. 교리나 성경을 강의 식으로 전하는 수사학의 틀을 깨버리고,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자연스럽게 나눕니다.

말씀을 전할 때도 처음엔 성경 말씀대로만 전하려 애썼는데, 다음부터는 그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온종일 원고 써서 외쳐대면, 그게 네 말이지 내 말이냐?’ 그때 회개하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주님 말씀을 전하도록 해 주십시오.’

강단에 서면서 예배 전에 하는 마지막 기도가 이것입니다. ‘성도들은 은혜받고 말씀 듣기 위해 오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고파서 오는 겁니다. 주님께서 직접 만나 주십시오. 저는 그저 주님만 표현하고 드러내길 원합니다. 직접 말씀해 주세요.’”

-설교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설교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성도들도 예전보다 훨씬 은혜를 받습니다. 한 시간 내내 원고를 볼 필요도 없고, 성도님들을 보면서 대화하니 영적 관계가 형성되고 뜨겁게 은혜를 체험합니다. 원고를 쓸 때보다 세련되진 못할지 모르지만, 훨씬 자연스럽고 은혜롭고 힘이 있습니다.

설교 본문은 마태복음부터 한 장씩 설교해 지금 로마서까지 갔습니다. 처음엔 석 장씩 설교하다, 양이 많다고 하셔서 한 장씩 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절기와 상관없이 순서대로 가고 있습니다.

설교자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 신자들이 세상에서 복잡하게 살다 교회에 왔으니, 도입부를 재미있게 해서 감정이 열려야 은혜를 받는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설교자가 영적으로 살아있는 말씀을 전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그 재미는 유머나 웃긴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이 제대로 들어가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졸 수가 없어요.

지금의 설교 형태는 기독교 국교화 이후 확립된 것입니다. 바쁜 사람들을 반강제로 나오게 해서 앉혀놓고 1시간 예배드리고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말씀을 전해야 하니, 수사학적 기법이 들어왔습니다. 서론·본론·결론, 예화와 대지 같은 수사학의 틀 속에 들어가면, 말씀이 힘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예배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나눔’이 아니었을까요? 한 주간 동안 영적으로 체험하고 주님께 받은 메시지를 서로 간증하며 나누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설교가 강연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에도 변화가 있나요.

“성도들이 긴장하거나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전에는 제가 닦달을 좀 했는데, 지금은 일체 없습니다(웃음). 오직 예배에 집중하고, 말씀을 붙잡고 이끌림을 받으라고만 말씀드니 너무 편하고 좋다고 합니다. 성도들에게 영적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니 행복해하십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까’ 하는 것도 옛날에 했던 생각입니다. 제가 거기서 해방되니, 성도들도 다 해방됐습니다.

바라기는, 모든 교회와 목사님들이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성경에 사로잡혔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생각이 밝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질 것입니다. 거룩이란 신비주의가 아니라 그렇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편에서 보면 주님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목사님 이야기를 듣고 성경 읽기를 결심할 분들에게 격려해 주신다면.

“전에는 자꾸 인간적 노력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려 했지만, 내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수십 년 해도 안 됐습니다. 그저 말씀 속에 붙잡히고 파묻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조금씩 읽다 보면, 터닝 포인트가 있을 것입니다. 처음엔 억지로라도 읽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는 말씀이 확 와닿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 보는 시간이 너무 좋고, 말씀 읽으면 꿀송이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누가 코칭하거나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이 나를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성경에 붙잡히는. 바울이 그랬듯 말씀에 붙잡히게 됩니다(행 18:5).

성경을 읽는 그 순간이 가장 황홀하고 행복해서, 성경에 빨려 들어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하루 120장씩 읽을 수 있지, 노력과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