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알게 하신 지식만큼 심판하시는 분
우리 관점은, 하나님만 보실 수 있는 관점과 꽤 다를 수도
분명한 것은, 궁극적인 구원은 하나님 관점에서 이뤄졌고
모든 사람은 그 공평한 관점에서 각자 구원의 대열에 선다

하늘 구름 천국
▲천국은 주로 ‘저 하늘 끝’, ‘구름 위’ 등의 상징이 자주 사용된다. ⓒMichael und Maartje on Unsplash
한국인들이 기독교 복음에 대해 반응할 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몰랐던 시대의 사람들은 다 지옥에 갔나?” 하는 질문입니다.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해서 짧지만 핵심적인 답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분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이런 내용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필수적인 통로로서의 예수님의 유일성에 대해 전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만 놓고 봐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시대가 예수님이 전해진 시대보다 훨씬 더 길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동안 예수님의 이름을 듣지 못하고 죽은 한국인들이 살아 있는 동안 그 이름을 듣고 죽은 분들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전해지지 않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었으니까, 다 지옥에 간 거냐 하는 질문이 당연히 나올 수 있습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저는 이런 질문이 타당하고, 충분히 정당하게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이 질문에 대해 어디까지 대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함께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특히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도 예수님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지옥에 갔나 하는 질문을 많이들 하십니다.

세종대왕, 이순신 같은 그런 존경받는 생애를 살았던 사람들도 단지 예수님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지옥에 갔겠는가, 만약 그랬다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은 거 아니냐 하는 논리를 내세우기 위해 대표적으로 이 두 인물을 많이 드시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런 인물들까지 단지 예수님의 이름을 듣지 못한 시대에 살았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 잘못도 아닌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무조건 다 지옥에 보내버린 하나님이라면 불공평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기독교의 복음이 이렇게나 뒤늦게야 들어와서, 괜히 착한 우리 조상들을 죄다 지옥에 보내버리는 이런 일들이 생기게 하는 것 자체가 과연 공평한 건가?’ 얼마든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이 문제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고도 분명히 선포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불공평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고도 분명히 선포합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은 불공평하다. 왜 나를 지옥에 보내는가?”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안환균
▲안환균 목사.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구원 문제를 놓고 기독교가 그나마 분명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알게 해주신 지식만큼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각 사람이 양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을 듣지 못하던 시대에도 그 양심을 통해서, 그리고 자연 만물을 통해서 ‘창조주가 존재할 수밖에 없구나’ 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그 각 사람이 지니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만 보실 수 있는 어떤 기준이 있었을 거라고 보는 겁니다.

그 기준으로 볼 때 복음이 전해지기 전에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은 복음이 전해진 이후에 살고 있는 시대의 사람들로서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고백함으로써 구원을 받게 되는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은 그 누구도 불공평하게 대하시거나 정당하지 않게 처리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시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잘못이 아닌 그 이유만으로 무조건 다 지옥에 가는 일은 애초부터 없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나 다 공평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보기에 불공평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을 불공평한 분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최종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온 세상의 만인과 만사를 다 아시는 분은 결국 하나님밖에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시대에 살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 하는 기준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모든 사람을 다 아시고, 그들 각자의 일생 동안 그들의 말과 행동의 동기와 과정과 결과를 다 아십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정말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라는 것을 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그들의 속 깊은 양심에서부터 진정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관점은 하나님께서만 보실 수 있는 관점과 꽤 많이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어느 때나 각 사람의 궁극적인 구원은 하나님께서만 보실 수 있는 관점에서 이뤄져왔고, 모든 사람은 바로 그 공평한 관점에서 각자가 다 정당하게 구원의 대열에 서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7장 3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이 주전 1세기 경에 그 당시까지는 아직 예수님의 이름을 듣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던 그리스 아테네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이름을 듣지 못한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에 반응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원천적인 무지나 무능에 대해, 하나님께서 딱히 문제삼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제는 어디든지”라는 말로 특정 시공간의 전환점을 강조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이 전해진 이후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마땅히 회개해야 할 책임이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친히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인류 역사 속에 그대로 이루어져,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이 기독교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세상의 끝날이 그만큼 가까워진 때이고, 교회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들림받아갈 때를 기다리고 있는 시점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온 세상이 동시에 갑자기 맞이하게 될 그 사건 때문에라도 적어도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이 전해져 그들 각자에게 예수님을 믿을 기회를 주시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신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누구든지 기독교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또 다른 여러 관점에서 좀더 설득력있게 풀어갈 수도 있겠지만, 부족한 대로 이 정도라도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이 문제가 주된 걸림돌이 되지 않을 만큼은 오해가 풀렸으면 합니다.

다음에 또 다른 주제로 만나뵙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갓토크TV 안환균 목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안환균 목사
그말씀교회 담임
변증전도연구소장
<기독교 팩트체크>(두란노), <하나님은 정말 어디 계시는가>(규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