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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모든 것은 해석의 틀을 거쳐 재생산된다. 예를 들어 신문기사의 경우, 동일한 사건들을 접했음에도 기자의 생각과 지향하는 가치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것처럼.

진리의 영역에 있어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즉 어떤 해석의 틀(교리적 체계)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길로 나뉘게 된다.

여기서 상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옳다’는 식의 해석은 진리 무용론으로 이끄는 첩경이다.

상대주의는 철저히 거짓이며, 결단코 진리와 함께 할 수 없다. 일반적인 것들과 달리 진리는 성령 하나님께서 조명하여 주심으로 모호함 없이 명백하게 그 길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모호함이 없는 명백함.

그래서 사도들로부터 역사적으로 이어진 바른 교리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확실성을 확보한 이들은 깨닫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진리를 밝히 알고, 자신을 내어 맡기게 된다.

그리고 진리를 경험한 이들은 은혜로 말미암은 경건의 능력을 드러내며, 흔들리지 않는 불변성, 그리고 진리에 헌신하는 일관성, 지속성을 가지게 된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사도들로부터 이어져 온 바른 교리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어디로 가는가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교리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 절대적인 것이다.

김성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삼송제일교회 중고등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