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라는 건 언제든 예고없이 우리를 덮쳐올지 모른다
작가는 그걸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한다
‘누군가’가 아니라, ‘누구든’ 악이 될 수 있다는 걸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꼭 들여다봐야 한다는 걸

죽기 전 신을 거부하는 주인공, 그게 참 안타깝다
모든 게 무너진 곳에 남겨둔, ‘희망’이라는 공 한 개

7년의 밤

7년의 밤
정유정 | 은행나무 | 523쪽 | 13,000원

정유정 작가

정유정 작가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가 써내는 스토리는 너무 탄탄해서, 어느 책을 읽든 후회가 없다.

작가마다 좋아하는 테마가 있다. 정유정 작가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는 자유의지와 인간의 마음 속 어두운 숲에 관심이 많다. 어두운 숲엔 야수가 산다. 그 야수가 ‘살인’이라는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우리에서 풀려난다. 그 순간부터 독자는 이 야수가 어디로 튈질 몰라 안절부절못한다.

『7년의 밤』에서 우리는 봉인이 풀린 인물들의 내면을 보게 된다. 그중 한 남자(오영제)는 딸의 복수를 꿈꾸고, 다른 한 남자(최현수)는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고 한다.

몰입감

정유정 작가를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탄탄한 서사’이다. 빠르고 속도감 있는 문장을 쓰기에, 일단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이런 질주 본능이 문장으로 촉발되는 데, 이야기의 첫 시작을 알리는 장면 묘사에도 이게 나타난다.

“내비 없어요?”
“내비가 못 찾으니까 묻는 거잖아.”
‘인마’라는 말을 생략한 표정이었다. 나도 ‘인마’를 생략했다. (12쪽)

여기서 ‘나’는 최서원이다. 열두 살 나이에 살인자 최현수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다. 그 이후론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거나 허둥댄 적이 없다. 그 단서를 다음 문장이 보여준다.

모욕당하면 분노하는 게 건강한 반응이다. 호감을 받으면 돌려주는 게 인간적 도리다. 내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산다. 아저씨는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문장에서 ‘그렇게’를 떼어내라고 대꾸한다. (28쪽)

‘나’는 보통내기가 아니다. 툭 내뱉는 말과 묘사로도 느낄 수 있다. 이런 느낌이 느껴지는 건 이 작품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 아니라, 체험하게 만드는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 인물―최현수와 오영제―은 자유의지와 악이 결합할 때, 어떤 감정이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보기 싫고 불편한 감정을 파고드는데, 그게 심리묘사다. 그런데 묘사가 얼마나 생생한지 독자의 신경을 핀셋으로 건드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소설은 스릴러다. 추리소설은 범인이 누군지를 찾는 게 중요하지만, 스릴러는 다르다. 범인을 이미 안 상태에서 시작하기에 작가는 거침이 없다.

작품 속 인물들을 절대로 편하게 놔두지 않는다. 주인공들을 감정적으로 극한의 상황까지, 벼랑 끝까지 몰아붙인다. 그래서 작가가 이야기의 뒷수습을 어떻게 하려고 이러나, 긴장하면서 읽게 된다. 이게 엄청난 몰입감을 준다.

7년의 밤
▲영화 ‘7년의 밤’ 중 한 장면.

어긋난 시선

작가는 묻는다. 인생과 그 자신이 일치하는 자가 얼마나 될까. 소설을 읽고 나서야 깨달은 거지만, 대부분 삶 따로, 사람 따로, 운명 따로…, 다들 그렇게 산다.

인생이 조금씩 어긋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좁히면 되는데, 다들 그걸 못한다. 완벽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삶이 어긋날 땐 좁히면 되고, 그것도 힘들면 삶에서 잠시 멀어지는 게 꼭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현수에겐 야구가 전부다. 야구 말고는 좋아하는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왼팔을 못 써 야구를 못 하게 되자, 삶이 멈춰 섰다. 열심히는 살았지만 자기 생각대로 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현수는 고교 졸업 후 프로지명을 받았으나 어머니가 반대했다. 어머니는 대학을 거쳐 프로에 가는 엘리트 코스를 원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선택은 그의 선택이었고, 반대로 그의 실패는 어머니의 실패였다. 그가 야구를 그만두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현수에게 아내 강은주는 여자가 아니다. 또 다른 삶의 통제자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에 현수는 비겁하다. 남편은 삶을 비관하여 술을 의지한다. 하지만 아내는 한탄 대신 개 같은 인생과 맞붙어 싸웠다. 식당종업원, 마트 캐셔, 간병인, 학교급식 아줌마로 일하며.

은주가 볼 때 생존을 위해 피 터지게 싸우는 게 마땅했다. 하다 못해 침이라도 뱉어줘야 한다. 하지만 남편은 초등학교 코치 자리 하나 얻지 못했다. 한 마디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난 열두 살 때부터 포수로 길러진 사람이고, 야구를 그만두면서 그 본능을 잊고 살았네. 내 인생에서 승부를 걸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505쪽).”

오영제는 성장 환경이 제일 나은 인물이다. 일단 치과의사이고, 물려받은 재산이 많다. 그는 사이코패스지만, 가족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아내 문하영도 여기엔 동의한다.

하지만 한 발 들어가 보니,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자기 것’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었다. 그래서일까, 딸 세령을 ‘교정’이란 명목으로 구타했다. 딸의 죽음에 자신의 폭력도 더해졌지만,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영제의 말이 그걸 보여준다.

“난 말이지, 그때나 지금이나 참는 게 제일 싫은 사람이야. 내 맘대로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고(289-290쪽).”

오영제는 잔인하다. 별채 창고에 숨어든 고양이가 팔뚝을 할퀴자, 어미를 죽인 뒤 새끼 두 마리를 산 채로 함께 묻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딸은 아빠가 무서웠을 것이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세령은 눈만 마주쳐도 딸꾹질을 했다. 살이 닿으면 경기를 하듯 파르르 떨며 뒷걸음질 쳤다. 오영제에게 세령은 제 엄마의 축소판이었다. 고집 세고, 영악하고, 당돌한. 하지만 세령은 친구조차 없었다. 집 밖에서도 외톨이였다.

작가는 인간의 본성에 관심이 많다. 작가는 최현수와 오영제를 통해, 우리 안의 악을 보려고 한다. 굳이 살인자나 사이코패스의 삶을 쓸 필요가 있을까 말할 수 있겠지만, 이런 불편한 삶도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선과 악, 사실과 진실이 쉽사리 판단될 수 없음을.

작가는 우리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도 그걸 소망한다.

선택

소설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답지다. 답은 저마다 다르지만, 정유정은 인간은 본래 악하고, 악은 ‘누군가’가 아니라 ‘누구나’ 될 수 있다고 본다.

『7년의 밤』 주인공이 그걸 보여준다. 최현수는 살인범이지만, 동시에 순수하고 유약하다. 그는 유순했으나 고집이 셌고, 성실했지만 무책임했다. 아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래서 만약 내가 최현수였다면 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소설 끝에 가면 최현수의 팀원이자 소설가로 등장하는 아저씨가 사형수 최현수의 모습을 묘사한다. 머리는 하얗게 세고, 목이 굽고, 이가 다 빠지고, 피부는 노랗다.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오는 그는 마흔세 살의 노인이었다.

세령호에서의 2주를 수없이 복기하며 회한, 고통, 죄책감, 부끄러움, 슬픔과 그리움으로 외모마저 바뀌어버린, 세령호에서는 만난 적이 없는 인간 최현수였다.

최현수의 삶은 성서 속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가인과 아벨과도 이어지고 부자 청년의 이야기와도 이어진다.

7년의 밤
▲영화 ‘7년의 밤’ 중 한 장면.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알게 된 다음에 어떻게 할지에 따라, 그 실수가 실수 아닌 치명적인 죄가 될 수 있다.

최현수는 실수로 소녀를 차로 쳤다. 살아 있는 소녀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목졸라 죽인 뒤, 시신을 호수에 감추었다. 이런 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최현수는 세령호 보안팀장이다. 그는 프로야구 포수 출신이다. 비록 지명도를 얻지는 못했지만, 고등학교 시절만큼은 아들도 자랑스러워하는 4번 타자였다.

그런 그가 술을 끊지를 못한다. 결국 음주운전은 한 소녀의 죽음을 제물로 삼고서야, 비로소 멈춰섰다. 그 모든 것은 막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야 그는 자신을 보게 된다. 상처투성이의 남루한 인간. 그 순간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한다.

“거울 속에서 아버지가 이죽거렸다. 절대로 애비처럼 안 산다며? 살아보니 넌 별 수 있든? 그를 통제하던 마지막 줄 하나가 툭, 끊겼다. 현수는 자신의 내부에서 빠져나오는 ‘꿈 속의 남자’를 보았다(330-331쪽).”

성서가 놀라운 것은, 그 어떤 인물도 미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인, 근친상간, 합환채, 간음…, 그 어떤 것도 감추지 않는다. 가인, 롯, 레아, 다윗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 안에 감춰진 그림자를 깨닫는다. 저것이 어쩌면 내 모습이겠구나.

신구약을 통틀어 이런 그림자가 가장 많았던 사람은 야곱이었을 것이다. 뱃속에서 경쟁에 밀리자 형의 발꿈치를 잡았고, 형의 배고픔을 이용해 장자의 명분을 가로챘다. 헌데도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다.

성서는 이후 야곱의 삶을 보여준다. 자기가 형에게 한대로 외삼촌에게 당했다. 그가 파라오에게 험한 세월을 살았다고 고백한다. 노년이 되어서야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것이다.

그도 어쩌면 최현수가 했듯이 자신의 삶을 여러 번 복기했을 것이다. 야곱이나 최현수를 보면서 느낀다. 사람은 어두움을 인식해야 밝아진다는 걸. 인식한다는 건 우리 모두의 내면엔 자신도 모르는 또 하나의 자신이 있다는 걸 아는 것이다.

칼 융은 “밖을 보는 자는 꿈을 꾸지만, 안을 들여다보는 자는 깨어난다”고 말했다. 우리 안에는 부도덕하고 숨기고 싶은 치부가 있다. 주일의 나와 주중의 나는 다르다.

소설에서 작가가 그려내는 인물들이 허세가 있어도, 한 번 더 들여다보면 쪼잔하고 비겁하고 찌질하다. 자신과 인생이 어긋나면 병들거나 사달이 벌어진다.

이마저도 그림자를 보게 하려는 신의 자비인지 모르는데, 최현수는 죽기 전 신을 거부한다. 그게 참 안타깝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벼랑 끝에 서 있다. 오영제는 끝까지 복수에 집착하고 최현수는 어떻게든 그 복수를 막으려 한다. 이 중심에 최서원이 있다. 오영제가 체포되고 최현수는 죽고 이게 끝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삶이 다시 시작된다. 그게 최서원의 삶이다.

작가는 모든 게 무너진 곳에 ‘희망’이라는 공 한 개는 남겨둔다. 그 모습이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서 보았던 사람 손만한 구름처럼 느껴진다(열왕기상 18장).

7년의 밤
▲영화 ‘7년의 밤’ 중 세령호의 모습.
책 속 한 문장

최현수에게 삶의 의미는 하나다. 아들 최서원. 아들은 그의 삶에 남은 마지막 공이다. 반면 아내는 훼방꾼이고 통제자다. 아내가 아파트를 사지 않았다면 세령호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그날의 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사건 몇 달 전 처제 부부가 칼바도스를 사왔는데 아내가 술을 빼앗았다. 집 살 때까진 술 마실 생각도 마라. 그때 결혼생활 12년 동안 꿈에서도 해보지 못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아아, 개 같은 년….”(330쪽)

하지만 그날의 사고는 일어났고 그는 격랑에 휩쓸린다. 살인자가 된 현수에게 꿈도 욕망도 삶의 의미도 다 부질없다. 아들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하지만 이제 아들도 놓아야 한다. 그때서야 현수는 아내가 훼방꾼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선수시절에 이걸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이후에라도 이걸 알았다면 인생이 바뀌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깨달음은 한 걸음 늦게 온다. 늦었지만 그래도 그는 고백한다.

한때 그녀는 고통을 주는 존재였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강철 같은 그녀가, 아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뻔뻔하고 독해질 수 있는 강은주가, 지금에 와서야 고마웠다. 미더웠다. 그리고 … 미안했다. (411쪽)

소설에서 아내 강은주는 오영제에게 죽는다. 하지만 시신을 찾지 못했다. 자기 남편이 자신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고백했다면 강은주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없지만, 그게 어쩌면 삶이 주는 안타까움인지도 모르겠다.

삶은 언제나 어긋난다. 침팬지가 인간을 많이 닮았어도 눈에 흰자위가 없다. 인간은 다르다. 그 흰자위 덕분에 시선의 방향이 보인다. 인간은 온몸이 의사소통 도구인 것이다.

최현수는 아내에 대한 시선이 미움에서 고마움으로 바뀌어가지만, 오영제는 끝내 단절로 끝이 난다. 대중의 시선이 잠잠해지자 프랑스로 아내 문하영을 찾아갔다.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성채를 다시 세우겠다는 심사였다. 이게 어긋났어도 그는 미련을 버리지 않는다. 최현수와 달리 오영제는 끝내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에겐 후회가 없다. 분노만 있다.

이정일
▲이정일 목사는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로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이대웅 기자
이정일 교수
미국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석사를 받았다. 신학을 하기 전엔 영문학을 공부해 문학박사를 받았다. 박사 후 뉴욕주립대 영문과에서 미국 현대시를, 세계문학연구소에서 제3세계 작가들을 연구했다. 대학에서 세계문학과 영어를 가르치며 전방 포병대대 교회에서 군(軍) 선교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