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픽사베이
얼마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성형수술은 보험이 되지 않기에 매우 비싸다고 한다. 어떤 목사가 강남에서 쌍거풀 수술을 하게 됐다. 눈 밑에 주름을 제거하고 눈꼬리 올리는 수술을 했다고 한다.

종합 성형외과인 이곳에서는 성형을 하고도 도수치료를 받은 것으로 처방을 내주어 아주 싸게 했다고 자랑을 하면서, 여러 목사들에게 소개한다고 말한다.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기도를 부탁하니, 어떤 장로가 제안한다. 입원할 경우 자기 조카 의사를 나의 조카라고 하면 30% 할인을 해주겠다면서, 자기 조카 의사에게 말해 놓았으니 그렇게 하라고 한다. 전혀 문제가 없다고 안심까지 시킨다. 잠깐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을 연결해 주시는구나 라고!

그런데 좀더 깊이 생각해 보니, 이것은 아니다. 사기를 치는 것은 아니지만, 거짓이 아닌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뭐 크게 잘못될 것도 없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운데 그렇게 하면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정중하게 거부하였다.

세금 관련 문제에서는 어떤가? 크고 작은 수많은 분야에서, 돈이나 이익과 연관되면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여 탈세하고, 편법을 쓰면서 절세하려고 한다.

특권을 누리려는 태도, 절차와 방법을 무시하고 기도하면서 자신만의 권리를 누리려는 능력주의는 또 다른 이에게 피해가 된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은혜라고 말한다. “할렐루야!” 외치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셨다, 정말 기가 막힌 방법으로 인도하셨다”고 자랑한다. 이런 일이 목사나 교인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습관화되어 버린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또 다시 생각하게 된다.

첫째 고리타분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의 특징 중 하나는 ‘정직함’이다. 다윗의 고백처럼 “정직한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그런데 오늘을 살다 보면 사회 어떤 곳에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돈만 싸게 해서 이익을 얻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불신 사회의 특징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이익을 얻는 것인데, 이러한 불법을 행하면서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잘했다고 서로 웃으면서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축복과 은혜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인가? 믿음은 어디에 갔는가? 교회 안에서만 믿음을 이야기하고 설교하기 때문이 아닌가? 완전히 교회 안에 갇힌 믿음말이다. 예배당 안에서만 신앙과 영생과 구원과 헌신과 정직함과 공평을 이야기하고, 삶 속에서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신앙인의 삶,

광야의 훈련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목사들이 가르치기는 했지만, 강단에서 뜬구름 잡는 소리만 외치고 실천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온실 속에서 자라난 성도의 신앙, 교회라는 잘 꾸며진 온실 속에서 부드럽게 자란 성도의 신앙은, 세상이라는 들판으로 나오면 어김없이 꺾여 버린다. 아주 자연스럽게 세상에 물들어 버리고, 거대한 물결 속으로 스며들고 만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참 고민이다.

목사도 교인도 일상을 살아가면서 불법과 거짓이 관습화 되어가는데 우리는 그것을 은혜라고 말하고, “할렐루야~” 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된다. 세상과 너무나 동일화 되어버렸다. 다 그렇게 하는데, 너 잘났어, 혼자 의로운 사람이구먼, 이런 소리 들을까 봐 말도 못하겠다.

둘째,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분명한 대가를 지불하는 삶이다. 그런데 오늘날 신앙인들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얻으려고만 하는 ‘거지 근성’이 가득하다.

기독교는 공짜가 없다. 우리가 받은 구원도, 날마다 경험하는 은혜도 결코 공짜는 없다. 모두가 다 대가를 지불한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창에 찔리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무시함과 고통을 당하는 길을 가셨고 그리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신 것이 아닌가?

우리가 누리는 생명의 연장, 매 순간의 은혜 역시 엄청난 고통과 대가를 지불한 결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은혜를 공짜로 생각한다. 내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땀과 수고와 노력이 없기 때문에, 은혜를 공짜로만 여긴다.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고, 가볍게 대하게 된다. 본회퍼가 말했던 이른바 “값싼 은혜”이다.

우리는 나의 신념과 나의 교리를 지키기 위한 문제에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고함을 친다. 그러나 이러한 거짓된 생각과 천박한 사고방식은 별로 의식을 못한다.

멋지게 예수를 믿고 살아가야 하는데, 무언가 구린 냄새가 너무나 많이 난다. 소금이 완전히 맛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살다 보면 모든 일에 정도를 걷기가 어려운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구조 때문에, 사람들과 엮여서 살기 때문에 나 혼자서 안 되는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닌가? 이런 생각에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세르게이, 모스크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