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소설로 중요한 자리 차지할 만
두 번째 읽었을 때 조금 진가를 알았다
무게감 견디다 보면 가벼움도 느껴져

2020 올해의 책 사랑이 한 일
사랑이 한 일

이승우 | 문학동네 | 248쪽 | 14,000원

성경의 주제를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장으로 하자면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입니다.

성경의 주제를 잘 표현한 구절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이 세상을 만들고, 인간이 살아갈 터전을 준비했습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은 ‘사랑’이라는 렌즈로 볼 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의 시작이 창세기입니다. 창세기의 모습은 사랑의 거대한 섭리를 펼쳐 놓은 듯, 장쾌하면서 웅장합니다. 이 책은 이 안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이야기를 가지고 소설로 만들었습니다.

다섯 명의 인물이 중심이 된 이야기를 다섯 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하였습니다. 다섯 명의 인물의 중심에는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소돔의 하룻밤>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갈의 노래>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시녀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한 일>은 이삭의 관점에서 본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허기와 탐식>은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을 통해 본 이삭의 이야기입니다. <야곱의 사다리>는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하려 도망자가 된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우리나라의 굵직한 문학상들을 거의 다 수상한 소설가이고, 세계 여러 나라에도 그의 작품들이 번역 소개되어 찬사를 받았습니다. 소설가로 40년을 넘게 살아왔다는 자체로 그의 소설을 믿고 읽을 만한 근거도 됩니다.

그의 소설은 기독교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의 심리를 밀도 높은 통찰력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소설가의 관점에서 본 창세기’라는 부제를 달아도 될 만큼, 창세기에 대한 소설가다운 궁금증으로 소설가다운 풀이 방식으로 궁금증들을 풀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롯에게 찾아온 두 명의 천사는 어떤 의미이고, 왜 사람들은 그들을 내놓으라고 했을까?’(소돔의 하룻밤), ‘주인 사랑의 뜻대로 하여 아이를 출산하였음에도 버림받은 하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하갈의 노래),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버지 아브라함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사랑이 한 일), ‘어렵게 낳은 두 아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가 된 이삭이 복을 내려주는 강복이 아닌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축복을 한 번밖에 하지 못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허기와 탐식), ‘땅을 기반으로 한 바벨탑과 하늘을 기반으로 한 사다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야곱의 사다리)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소설로 풀어냈다는 자체가 아주 놀랍습니다. 신학대학을 나와서 오랜 시간 소설가로서 위치한 이승우만이 찾을 수 있고 그려낼 수 있는 소설입니다.

신학적인 바탕없이 소설만 쓰는 작가로는 닿을 수 없는 깊이의 정점에서 채굴한 호기심과, 그 호기심보다 깊은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이 소설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 되고 있습니다.

깊이를 확보하기 위해 이승우가 쓴 방법은 언어유희입니다. 그냥 성경을 읽으면 궁금하지 않을 상황과 넘어갈 수 있는 구절에서 의문을 제시하고, 언어유희를 통해 의미를 곱씹게 합니다.

하나의 상황을 두고 언어유희를 통해 여러 이야기를 만들고, 하나의 구절에서도 몇 개의 묵상을 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기대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기대대로 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게 예상했으면서도 기대를 내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39쪽)”, “신이 원한 것은 불가능한 것을 하는 것이었다. 지나친 사랑 때문에 불가능해진,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린 그것을 하라는 것이었다.(101쪽)”, “맛을 모르는 사람이 먹는 것을 좋아할 리 없다. 맛을 모르는 사람만이 탐식할 수 있다. 탐식을 위해서는 미각의 통제를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151쪽)”

또 소설가의 시선으로 본 창세기의 사랑 이야기는 새롭습니다. 성경을 공부한 신학자가 쓴 소설이었다면 딱딱할 수 있고 피상적이 될 수 있는 이야기가, 소설가의 시선으로 입체적이 되고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감을 일으키게 합니다. 에서와 야곱의 관계를 이스마엘과 이삭으로 확장시키는 이야기의 고리는 신선하면서 탄탄하기까지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5개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었지만, 하나의 장편 소설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5개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카라바조 이삭의 희생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17-1610)의 그림 ‘이삭의 희생(Sacrifice of Isaac)’. ⓒ위키
이 소설은 ‘문학적인 강해서’로 분류해도 무방할 정도로, 소설이면서 성경을 이해하는 좋은 교재로 여겨집니다. 읽고 나면 이런 시각으로 모든 성경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시리즈를 내도 괜찮다 싶습니다.

읽으면서, 내가 소설이라고 여겨 책을 집어 읽었는데, 읽고 나면 소설보다는 성경 이야기가 남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깊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이 소설은 읽기가 어렵습니다. 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쓴맛에서도 단맛이 있다고 합니다. 잘 만든 쓴맛의 커피를 마시다 보면, 쓴맛이 품고 있는 단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재미’입니다. 소설은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이 재미를 맛으로 비유하자면 ‘단맛’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깊이는 ‘쓴맛’입니다.

이승우의 이 소설은 쓴맛이 진한 커피와 같습니다. 이런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단맛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은 소설이 주어야 하는 단맛을 느끼기에는 쓴맛이 더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소설을 ‘문학적 강해서’로 분류해도 되겠다 했지만, 그건 다르게 표현하자면 지루하다는 걸 말합니다. 깊이에 전착하다 보니, 소설의 미덕이어야 할 재미가 없습니다.

한 번에 쑥 읽히는 소설이 아닙니다. 고심하게 되고 질문하게 됩니다. 언어유희 측면에서도 말바꿈을 반복하다 보니 말 속에서 의미를 얻을 때 못지 않게 말장난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 소설에서 가장 불편했던 건, 지나친 질문의 투척으로 자신이 깨달은 메시지를 주입시키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마치 ‘나는 나이도 그렇고 소설가의 경력으로도 어른이니 가볍게 쓸 수 없다. 짧은 글을 쓰더라도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사람처럼, 시종 진지하고 엄정하며 복잡하기까지 합니다.

이 소설은 말 그대로 소설인데 말입니다. 달달한 바닐라라떼를 주문하고 마셨는데 쓴 에스프레소여서 직원에게 따졌더니, “마셔보면 맛있게 되는 경지에 이를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해하려 하면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은, 성경을 기반으로 모든 책은 진지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성경’은 말 그대로 ‘경전’입니다. 경전은 무거우면 무거웠지, 결코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되는 메시지를 담은 책입니다.

어설프게 가볍게 하여 성경이 갖는 본연의 메시지를 퇴색시킬 바에는, 재미는 없다 해도 본연의 무게감을 유지하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비유에서 말했듯 쓴맛에서도 단맛이 있는 것처럼, 성경 본연의 무게감을 견디다 보면 가벼움도 느낄 수 있습니다. 깊이에서도 재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소설은 기독교 소설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만 합니다. 창세기에 대한 심도 있는 사랑의 의미를 문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분이라면(그런 측면에서 설교를 하는 목사님들이 읽으면 없이 좋을 겁니다), 이보다 더 좋은 소설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적극 추천합니다.

저는 이 감상평을 쓰기 위해 이 소설을 두 번 읽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어렵고 지루해서 방치해 두다, 넉 달 뒤 다시 읽었습니다. 그제야 이 소설의 진가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쓴맛이 주는 단맛을 살짝 느낀 겁니다.

‘소설은 우선은 재미’라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자신의 소설관을 조금 더 넓히게 되면서, 그만큼 생각의 폭도 넓이도 깊어지고 넓어지는 체험을 하게 할 겁니다.

이성구(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