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구포교회
▲100년간 부산 구포교회의 예배당이 5차례 바뀐 모습. ⓒ홈페이지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6-1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데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약속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 이 지역에 구포교회를 세우셔서 116년간 한결같은 하나님의 교회로서 소임을 다하게 하시고, 지역을 섬기는 배려와 나눔의 온도를 높여 묵묵히 나아가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구포교회는 지난 2008년 3월 2일 주일학교 교회 창립 103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당회 결의에 따라 은혜와 감동의 열매로, 다섯 번째 신축한 성전 입당 감사예배를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드렸습니다.

구포교회의 현 위치는 멀리 김해평야가 바라보이며 옛 가야국 숨결이 전해지는 곳입니다. 봄이면 철쭉이 온 산과 들에 다양한 색채로 자태를 뽐내며, 사방으로 뿜어대는 풍성한 향기의 내음 가득한 하나님의 창작품이자 걸작품이 있는 곳입니다.

이 지역 부산 북구의 구목인 편백나무가 줄지어 그늘을 만들고, 구의 새인 산까치는 오늘도 님을 기다리면서 아침의 고요를 일깨우며 울어댑니다. 그 자연의 심포니로 환희와 감동에 찬 동산이 이곳입니다.

1,300리 유구한 역사와 얼, 민족의 한과 애환이 서린 낙동강은,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품고 봄바람과 함께 살포시 일렁이는 잔잔한 은빛 물결을 뽐냅니다. 그뿐입니까.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은 천혜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선물하신 이 지역과 구포교회의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남 지방의 대동맥으로서 지역 문화를 발달시킨 원동력이 된 민족의 젖줄 낙동강은, 은빛을 품으며 유유히 흐르는 역사와 함께 미래를 열어가는 희망의 강입니다.

교회 주위에는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테마공원이 있습니다.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법 체험 및 법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솔로몬로 파크공원입니다.

또 장애인들을 위한 구포 무장애 숲길인 산책로가 있는 교회 바로 뒤편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교통안전 교육장이 있으며, 도시철도 2호선이 지나가는 구명역도 있습니다.

구포교회 역사를 찾아보았습니다. “1905년을 전후에 선교사들이 앞다투어 조선 땅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라의 기운이 쇠하여 가던 때 복음의 씨앗이 이 땅에 떨어지고 구포교회도 그 시기에 시작이 되었다는 것은 기가 막힌 하나님의 섭리요 열심의 결과였습니다. 나라는 풍전등화의 상황에 직면했으나, 하나님께서 복음의 씨앗을 떨어지게 함으로 놀라운 섭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발간사 중에서).”

구포교회는 1905년 3월 1일 이 지역 김문인 씨 집에서 예배를 드림으로써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100년이 넘은 교회에서 원로목사를 한 사람도 배출하지 못한 것은 그 험한 세월이 순탄치 못했음을 증명하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조만간 최초로 원로목사 탄생이 얼마 남지 않아 행복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세우기 시작한 때부터 교회 역사 자료를 수집하지 못했던 탓에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구포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교회들이 역사 자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관리하지 못한 행정능력 미숙에서 온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대로 역사를 기록하지 않고 자기들 입맛에 맞는 자료들만 기록해 형평성에 어긋나고 안타까운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 교회 역사서를 거금을 들여 할 필요가 있는가 싶기도 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래된 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입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지만, 실상 자기 생각과 주장이 강한 장로나 목사가 있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시대에 역행하며, 자신의 뜻과 고집으로 분쟁이 끊이질 않는 것입니다.

특히 나이 드신 중직자나 교회 지도자들은 변화를 두려워한 나머지 안일하게 주저앉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반대하는 권력 싸움으로 교회 안에 진흙탕 싸움이 사라지지 않기도 합니다.

장로는 이드로가 모세의 과중한 업무를 긍휼히 여기면서 제안한 기발한 발상입니다. 모세의 짐을 덜어줌과 동시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운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혼자의 생각도 좋지만, 여럿이 지혜를 모으면 반드시 좋은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는 개인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워진 공동체이므로, 모두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장로는 교회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매 주일마다 교회 전체와 구석구석을 살피며, 성도들 개개인의 사정도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굶주림을 겪고 있는지, 가정에 슬픈 일이 있는지, 직장이나 신앙 문제로 상처를 받고 있는지, 그리고 성도들의 재능까지 파악하여 교회나 이웃에 재능을 기부할 수 있도록 권면하며, 늘 소통과 대화로 성도들에게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국가적으로 일제 치하의 아픔과 6.25 동란의 쓰라림 등 각종 사회적 격변 가운데, 교회는 희망을 주기보다 내적으로 큰 시련과 아픔을 경험하고 말았습니다. 사회를 향한 나눔과 배려, 그리고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곳에 제대로 찾아가지 못했던 점에 대해 늘 아쉽게 생각한다고, 구포교회 한영수 위임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구포교회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입니다. 구포교회가 설립되기 전에 설립된 교회는 부산진교회(1892년), 초량교회(1893년), 제일영도교회(1896년) 등이 있고, 항서교회·수안교회가 구포교회와 같은 1905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이처럼 부산·경남 지역에 100년이 넘은 교회가 무려 41곳이나 있음은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도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계시지 않았을까요?

구포교회는 1994년 3월 20일 현 담임 한영수 목사님께서 부임하셔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셨고, 다섯 번째 교회 신축을 위해 무던히 애쓰셨습니다. 당회원과 건축위원들, 그리고 기도와 물질로 아낌없이 헌신해 주신 성도님들의 피, 땀, 눈물의 결실에 힘입어 아름다운 교회를 신축하고 입당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새로운 성전을 신축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성전을 짓다 보면 시험에 빠져 교회를 떠나는 분들도 있고, 신축 시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성도들 간 이간질로 다투거나 싸움판이 되어 서로 갈라서는 일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포교회는 다행히 당회원과 목사님의 헌신적인 봉사와 일치단결과 화합의 결실 끝에, 매우 건전한 교회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과 섭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기철
▲주기철 목사.
구포교회 역사 중 특기할 점이 있다면, 1927년 1월부터 초량교회를 담임하던 주기철 목사께서 1933년 말까지 당회장으로 계셨다는 점입니다. 주기철 목사께서는 이때부터 1931년 7월 마산교회로 전임하기까지 4년 7개월간 당회장으로 봉사하셨습니다.

당시 학생이던 노진현 옹은 이렇게 당시를 회고합니다. “나는 구포교회를 다니면서 학습도 받고 세례도 받게 되었는데, 당시 세례는 초량교회에서 시무하시던 주기철 목사님에게 받았습니다. 그 때 담임목사님이 안 계시던 우리 교회 당회장을 주기철 목사님이 맡고 계셨으므로 세례를 받았고, 가끔 구포교회에 오셔서 예배를 인도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신앙도 자랐습니다.”

당시 주기철 목사님은 신앙인이면서 애국자였고, 1938년 이래 신사참배를 반대해 4차례에 걸쳐 6년간 투옥돼 있던 중, 1944년 4월 21일 해방을 1년 앞두고 47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신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인물이셨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1930년대 초 구포교회 당회장으로 봉사했다는 사실은 영광이요 큰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그 순수하시고 건강하신 신앙을 따라, 구포교회는 새로운 도전으로 그 분의 뒤를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1935년 이후 일제의 탄압은 더욱 심화되고 노골화됩니다. 구포교회도 일제의 감시를 받기 시작했고,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았습니다. 일제는 주재군을 통해 교회를 감시하고 시국간담회를 소집해, 지역 유지들에게 신사참배를 요구했습니다.

구포교회 인근의 구포시장은 400년 동안 이어온 5일장으로, 지역민들의 애환과 정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구포장터 3.1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가던 3.1운동 소식을 접한 구포 지역 유지와 노동자, 농민과 상인을 중심으로, 장날인 1919년 3월 29일 구포 일대에서 일어났던 만세운동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는 ‘낙동강 1,300리 구포나루 축제’가 해마다 낙동강 생태공원에서 개최되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중단되어 참으로 아쉽습니다.

또 구포 하면 구포국수가 유명하여,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구포국수를 먹지 않고는 구포를 다녀갔다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일품입니다.

하지만 구포를 비롯한 부산 지역은 옛부터 불교가 흥한 곳으로 지금도 대형 사찰이 많이 있습니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사찰들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곳곳에 작은 암자와 무당들이 많은 지역이라, 전도하기 매우 힘든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역에서 구포교회는 중형교회로 지역을 섬기며, 더디기는 하지만 꾸준히 성도 수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요즘 코로나 19사태로 전도가 매우 힘들지만, 등록자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불교 신자와 무당, 점쟁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전도 대상자들이 많다는 뜻도 됩니다. “내 집을 채우라”는 주님 명령에 순종하는 길은 오직 자비와 사랑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구포교회의 2021년 표어는 “주여 이제 회복하게 하소서”입니다. 당회장 한영수 목사님과 당회원을 비롯한 모든 성도들은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 정신을 이어받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이 지역 복음화를 위해 앞장서서 기도하며 행동하는 아름다운 주의 종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립 116주년을 축하와 함께 날마다 ‘그 은총의 날들’이 되기를 소망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