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에서 38년간 일할 때는 몰랐다
은퇴 후 처음으로 알게 된 계약직 인생
모든 게 새로운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대우를 받으며 나이를 먹는 게 아니었다
일화용 소모품처럼 적당히 쓰고 버릴 뿐
우리가 일상 속 그늘을 바꿀 수 있을까

임계장 이야기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 후마니타스 | 259쪽 | 15,000원

『임계장 이야기』는 논픽션이다. 그래서 알렉시예비치 생각이 났다. 그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다. 벨라루스의 언론인이다. 그런 그가 201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독소 전쟁에 참전한 소년 소녀들을 취재했던 보고서 『아연 소년들』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때문이다. 이 두 권은 르포이지만, 소설처럼 읽힌다. 나는 『임계장 이야기』를 읽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임계장이라는 이름

누구나 책 제목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구나.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준말이다.

주인공 ‘나’는 퇴직 후 임계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고용주들에게 임계장은 매력적인 노동력이다. 시급만 계산해주면 다른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부리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 튼튼한 자를 골라 쓰다가 아프면 해고하면 된다.

임계장이라는 이름이 나에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의 난쟁이처럼 들렸다. 난쟁이 가족은 서울 낙원구 행복동에 산다.

한데 쇠망치를 든 철거반원들이 냇가에서 자갈을 져 나르고 폐목재를 엮어가며 지은 집을 쳐부수고 있다. 먼저 담에 구멍이 뚫리더니 담이 내려앉으며 뿌연 시멘트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런 가운데 가족은 말없이 식사를 계속했다. 난쟁이 가족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난쏘공 가족은 열심히 살았지만, 생활이라는 전쟁에선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 사람이 여전한 탓일까, 난쏘공 초판 1쇄가 나온 시점이 1978년 6월, 무려 45년 전인데 지금도 읽힌다. 2017년에는 300쇄를 찍었다.

이런 기록이 무엇을 말할까. 난쏘공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이 되었어도, ‘검찰 개혁’에 빠져 진짜 적폐는 손도 대지 못했다. 그걸 『임계장 이야기』가 보여준다.

지금 모든 세대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취업과 자녀교육 혹은 내 집 마련을 위해 분투한다. 하지만 노년층은 더 혹독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노후를 잘 준비한 사람은 손주를 보는 재미가, 텃밭을 일구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것도 자신의 생존이 아니라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임계장 이야기는 ‘나’라는 한 사람의 노동일지이지만, 그 ‘나’는 170만명이나 되는 또 다른 임계장의 삶을 보여준다.

철망을 뜯어내다

1992년 출시된 영화 「씨스터 액트」에 보면, 수녀원을 지켜주던 철망을 뜯어내는 장면이 나온다. 카지노 3류 가수 돌로리스(배우 우피 골드버그)가 성가대 지휘를 맡게 되면서 생긴 일이다.

수녀들은 철망이 있어서 안전하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 ‘갇혀’ 있었다. 철망을 뜯어내자 비로소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그곳에서 드려지는 예배와 찬양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임계장 이야기』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안일(安逸)이라는 철망을 뜯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OECD 국가라는 착각에, 그리고 내 일이 아니라는 방관 속에 노년층의 빈곤을 방치했고, 또 우리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걸 이 책은 보여준다.

버스회사 임계장이 되면서, 저자는 낯선 세상으로 들어갔다. 그 길은 요셉이 운명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 같았다.

딸의 결혼과 아들의 로스쿨 진학 주택자금 대출 상환이란 변수가 없었다면, 저자가 임계장이 되고 철망을 뜯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도 임계장으로 일하면서, 공기업 정규직을 할 때 보지 못했던 비정규직의 허약한 지위를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문학이라는 그림으로 보면, 어쩌면 그게 삶이 주는 구원의 손길인지도 모른다. 문학은 그걸 낯설게 읽기로 가르치는 데 실제로는 자기인식이다.

자기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자기인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걸 문학이나 철학이 가르친다. 자기인식을 가르칠 때 그걸 새로운 정보로 하는 법은 없다. 언제나 새로운 관점을 통해서 가르친다.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고용을 줄이고, 남은 인원이 더 많은 일을 떠맡기는 일들을 겪으며, 저자는 일회용품과 다름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현실을 바꿀 자기인식을 한다. 그게 글쓰기였다.

저자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임계장 이야기 속 세상에 무심했을 것이다. 우리가 아파트 경비나 버스 배차, 혹은 배달을 하거나 주차관리를 하는 분과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파트 경비 일을 하면서 졸음을 이기기 위해 봉지 커피를 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생으로 씹어 먹었다. 여름 내내 아무리 더워도 물을 마시지 않았다. 화장실 가느라 초소를 비우지 않기 위해서다.

저자의 삶은 성경 속 약자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그가 겪은 노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느꼈을 설움을 가늠케 한다.

광야에 가서 예배를 드리겠다는 말에 화가 난 파라오는 벽돌을 찍을 때 필요한 짚도 주지 않았다. 스스로 구하라고 했다.

그 말은 회사 일로 개인 차량을 이용해도 유류비를 주지 않고 일과표에 없는 업무들을 시킨 모습과 겹쳐진다. 저자는 참았다.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힘든 노동을 경험한 덕분에, 우리는 그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택배 직원들의 과로사, 아파트 경비원 폭행, 갑질, 자살은 다 연결된 것이다.

문학은 이것이 알 수 있었던 것임을 보여준다. 임계장 이야기 덕분에 우리는 알 수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자기인식이다. 문학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그런데 왜 문학은 독자의 자기인식에 집착하는 것일까?

인간의 존엄함이 무시될 때,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을 때, 삶이 얼마나 팍팍해지는가를 『임계장 이야기』는 보여준다. 저자가 쓴 글을 많은 이들이 읽겠지만 결국은 한 사람으로 귀결될 것이다.

문학은 다수를 상대로 하지 않는다. 언제나 ‘나’라는 한 사람을 상대하며, 그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싶어한다. 비록 한 사람이지만 그가 바뀌면 그가 걸어가는 길만큼 세상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청소부 휴지통 폐기물 수집 수거 쓰레기
▲진짜 문제는 우리가 존엄하게 사는 법을 잊은 탓이 아닐까. ⓒ픽사베이
책 속으로 들어가다

여느 때처럼 음식물 쓰레기통을 수돗가에서 씻고 있을 때, 어떤 남자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경비! 이 새끼, 너 전에 공기업에 근무했었다며? 거기서 국민 세금을 마구 쓰던 습관을 아직도 못 고쳤군! 주민들 피 같은 돈 들어가는 공동 수돗물을 펑펑 써? 이 새끼, 당장 잘라야 할 놈이네. 너 오늘 아주 제대로 걸렸어(98쪽).”

경비원이 된 후 처음으로 경험한 ‘갑질’이었다. 당하고 보니 모욕감에 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정도였다. 동료 경비원이 그를 김갑두라고 불렀다. 왜 이름이 김갑두일까 했더니, 갑질의 두목이라는 뜻이었다.

그 김갑두가 그날 오후에 초소로 와서 사과 한 알을 내밀었다. 기 죽지 말고 일 잘하라고. 하지만 껍질이 쭈글쭈글하고 일부는 상해 있었다. 쓰레기통으로 가야 할 사과를 먹으라고 내민 것이다.

저자가 일하던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일한 선배가 어느 날 저자를 찾아왔다. 그가 저자의 손을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122쪽).”

지방정부가 비정규직 지원센터를 만들었다. 아파트 경비원 근무 실태를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비원들은 놀랐고 가슴이 벅찼다. 간담회에 구청직원, 지원센터 관계자, 구의원들이 모였다.

경비원들이 씻고 먹고 잘 수 있는 시설 기준을 정하는 조례를 제정해 달라고 시의원에게 부탁하자, 이 말에 의원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내 자리를 옮겨갔다. 그 이유를 다른 시의원이 귓속말로 말해주었다.

“아이고 선생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떤 간 큰 구청장이나 시의원이 그런 조례를 만들려고 하겠어요? 당장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 아파트 주민들이 반발할 것이고 그리 되면 다음 선거는 포기해야죠(130쪽).”

고민하는 힘

『임계장 이야기』를 읽으며 다들 화가 났을 것이다. 나도 한국이 OECD 국가이고 한류에 자부심을 느꼈지만, OECD 국가 중 자살률, 유리천장 지수, 고령화 속도, 노인 빈곤율도 1위인 것을 몰랐다.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그리고 아팠다. 이 책은 고령사회 속 그늘진 계약직 노인들의 삶을 다루었지만, 나는 진짜 원인은 우리가 존엄하게 사는 법을 잊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저기서 존엄한 인간을 소모품처럼 쓰고 있다.

저자 조정진은 은퇴 후 네 개의 직종―배차계장, 아파트 경비원, 주차관리원, 터미널 보안요원―의 삶을 체험했다. 그도 놀라고 화가 났지만, 독자들도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노인부터 길거리에서 자판하는 사람까지 보일 것이다. 여자라면 그나마 식당일, 베이비시터, 간병인 같은 일자리가 좀 있지만, 남자들은 더 좁다. 하지만 그 일도 힘쓰는 일들뿐이다.

난쏘공에서 아버지가 평생을 통해 해온 일은 다섯 가지이다.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건물 유리 닦기, 펌프 설치하기, 수도 고치기. 자식들의 삶도 비슷하다. 첫째는 인쇄소 일을 배웠고, 둘째는 철공소 조수로 시작해 가구공장에서 일했다. 막내는 딸인데 빵집에서 일했다.

세상은 공부한 사람과 못한 자로 나누어져 있었고, 사회는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이런 일이 19세기 영국에서도 있었다.

“우리 모두는 천국을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찰스 디킨스의 말이다. 그도 영국 사회를 보며 고민한 것이다. 문학이 삶을 지키는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묻고 있다.

그런데도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일상을 문학의 눈으로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걸 드러낸다는 점에서 『임계장 이야기』는 훌륭한 문학 텍스트인 셈이다.

윤용인 작가가 쓴 칼럼 「참 감성적 인간, 퍽이나」를 읽었다. 그가 한 번은 입찰공고가 나서 제안서를 들고 발주처로 갔다. 그날 그는 마지막 발표자였다. 대기실은 따로 없었다. 물도 제공되지 않았다.

경쟁자들끼리 어색하게 앉아 세 시간을 기다렸는데, 지옥 같이 느껴졌다. 발주처가 입찰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발주처 사람들이 볼 때, 입찰은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니까.

일상의 고민부터 비즈니스 전략, 그리고 사회의 적폐까지, 문학이 개입하지 않는 영역은 없다. 영화 「기생충」이나 「미나리」가 놀라운 것은, 그 안에 단단한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계급 우화를 보여주지만, 문제는 계급이 고착화되고 대물림된다는 데 있다. 이걸 깨려면 고민해야 한다. 『난쏘공』에서 회사 사람들이, 『아연 소년들』에서 지휘관이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들어보라.

“회사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싫어했다.”

“여기서는 반드시 두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빨리 걷기와 정확히 조준해서 쏘기. 생각은 내가 한다.”

고민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진짜 중요한 것에 침묵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에 침묵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불의는 그런 침묵을 먹고 살기에, 『임계장 이야기』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아연 소년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함께 분노를 서사로 토해낸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누구든 화가 날 것이다. 나는 그 화가 한 순간의 분노로 그치지 않길 소망한다.

이정일
▲이정일 목사. ⓒ크투 DB
이정일 교수
미국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석사를 받았다. 신학을 하기 전엔 영문학을 공부해 문학박사를 받았다. 박사 후 뉴욕주립대 영문과에서 미국 현대시를, 세계문학연구소에서 제3세계 작가들을 연구했다. 대학에서 세계문학과 영어를 가르치며 전방 포병대대 교회에서 군(軍) 선교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