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있는 중소형교회 집중 육성 위해 맞춤형 지원
총회·지방회 5천만원, 교회 재정 더해 리모델링 이전
성도들에 말씀 구체적 적용, 코로나 후에도 관계전도

기성 재활성화 부천 임마누엘교회 김성한
▲리모델링이 완성된 임마누엘교회에서 지난 18일 열린 이전 감사예배 모습. ⓒ임마누엘교회
기성 총회 소속 부천 임마누엘교회(담임 김성한 전도사, 인천서지방회)는 부천 중동의 실평수 20평 예배당에서 시민회관 인근의 실평수 60평 규모로 예배당을 이전하고, 지난 18일 감사예배를 개최했다.

지난 2019년 3월 가족·지인들과 함께 개척을 시작한 임마누엘교회는 현재 50여명이 함께 온/오프라인으로 예배드리고 있다. 기독교 이미지가 좋지 않고 코로나19로 기존 성도들까지 흔들리기 쉬운 시국이지만, 2년만에 의미 있는 성장을 이뤘다. 코로나 이후에도 7명이 더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단번에 3배 정도 큰 예배당으로 이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교인들의 헌신과 함께 교단의 ‘교회 재활성화 프로젝트’ 덕분.

부천 임마누엘교회는 지난해 8월 재활성화 사업을 신청해 서류심사와 실사를 통과했고, 12월 ‘확장 이전 부문’에 선정돼 총회에서 4천만원, 지방회(송림교회·월미도교회)에서 1천만원을 각각 지원받고 나머지는 교회 재정 6,000만여원을 보태, 보증금 2,500만원에 월세 170만원의 현 예배당으로 리모델링 후 이전했다.

처음엔 아파트 단지가 새로 들어서는 부천 옥길동 쪽을 고려했지만, 현 성도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중교통으로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아 지하철역이 부근에 있고 버스 노선도 많은 현 위치로 결정했다고 한다.

현 교회가 위치한 곳에는 길 건너에 아파트 대단지가 위치해 있고, 부천 타 지역에 비해 교회가 적어 전도에도 용이하다고 한다. 부천시민회관과 공영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어 주차 문제도 해결됐다. 예배실 외에 목양실 및 사무실, 창고와 화장실, 부엌 등이 위치해 있다.

기성 총회 ‘교회 재활성화 프로젝트’는 제114년차 총회장인 한기채 목사가 중점 추진한 사업으로, 경쟁력 있는 중소형교회를 육성하기 위한 것이다.

한기채 총회장은 취임 당시 “교단 국내선교위원회, 목회 코칭을 담당하는 교회 진흥원과 더불어 열심과 가능성 있는 목회자와 교회를 공개 선정해, 맞춤식 집중 지원을 통해 자립을 넘어 도움을 줄 수 있는 교회로 도약할 수 있게 세우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선교위원회(위원장 안성우 목사)는 성장 잠재력이 있는 교회들의 이전과 확장, 수리 등을 위해 11개 교회에 총 5억여 원을 지원했다. 지난해 12월 교회 재활성화 프로젝트의 첫 결실로 충주 참된교회에서 1억원을 지원받아 지역 내 초중학생들을 위한 북카페와 독서요리미술교실, 핸드드립 커피와 악기교실 등이 가능한 ‘코아 센터’를 개관하기도 했다.

기성 재활성화 부천 임마누엘교회 김성한
▲이전 감사예배에서 김성한 전도사가 인사하고 있다. ⓒ임마누엘교회
교회 성장 동력에 대해 김성한 전도사는 “하나님께서 많이 도와주시는 것 같다. 개척 1년만에 코로나가 닥쳤지만, 새신자들도 잘 정착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청년들 비율이 많은 편”이라며 “저도 전도하지만, 성도님들이 코로나 이후에도 계속 새신자들을 데려오고 계신다. 물론 다 남는 건 아니다(웃음)”고 말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달 두 번씩 노방전도와 함께 동네 환경미화도 실시했다. 전도의 효과보다는, 성도들이 그러한 사역들에서 기쁨을 느끼고 지인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계기가 됐다.

김 전도사는 “작은 교회였지만 자꾸 시끄럽게 뭔가 하니까, 주변에서 ‘저기는 늘 밝고 잘 되나보다’ 하고 생각하시더라”며 “그래서 주변 이웃들의 교회에 대한 인식은 좋은 편이었다”고 설명했다.

임마누엘교회는 실제로 노방전도보다는 관계전도를 통해 대부분의 교인들이 교회에 정착했다. 코로나 이후에는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현장 예배도 계속했다. 김 전도사는 “최소 인원 기준을 지키기 위해 예배를 10여명씩 두 번에 나눠서 드렸다”며 “참석이 힘든 새벽예배는 단톡방에 녹음해서 매일 보내드리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김성한 전도사는 “자녀가 아직 없어, 성도님들을 자녀처럼 생각하면서 열심히 사역하고 있다”며 “오랜 직장생활 경험을 토대로, 성도들이 삶에서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도록 적용 가능한 말씀을 나누기 위해 특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도사는 “직장인 시절 설교를 들을 때면 제 삶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며 “구체적인 선택에 있어 어떻게 말씀을 적용하고, 인생 속에서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 실제로 느낄 수 있도록 설교를 준비한다”고 전했다.

그는 “만약 출애굽기 설교를 듣는다면, 그것이 나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를 때가 많지 않나”라며 “성도들이 기도와 응답을 실제로 경험하면서 말씀과 믿음으로 하루를 살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또 “교회 재활성화 프로젝트 역시 아는 분들께 채택되도록 부탁해 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 대신 서류 접수 후 교인들과 함께 구체적으로 기도했다”며 “1년 이상의 이전 과정에서 이렇게 큰 곳으로 옮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교인들이 인도하심을 하나 하나 동일하게 체험하면서 왔다”고 밝혔다.

김성한 전도사는 포항공대 학부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뒤, 2000년 벤처기업을 만들어 2014년까지 연구소에서 재직했다. 질병 진단키트 핵심부품을 만드는 벤처기업에서 연구원을 거쳐 연구소장과 대표이사까지 지냈다.

집안에 기독교인이 없었던 그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또 하나 특이한 이력은 하나님을 만나기도 전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벤처기업을 시작하던 30대 초반, 술·담배도 하던 시절에 꿈을 꿨다는 것.

“지나가는데 어느 방에 불이 환하게 비취면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는 목회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더라고요.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하게 서 있었는데, ‘목회란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생명의 나뭇가지를 네 몸에 붙여 그 길이를 한 자나 더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싱숭생숭했지만, 그때는 이상한 꿈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 이후 2009년 하나님을 만났고, 나중에 이것이 ‘부르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체험적 신앙 스타일은 아닌데, 언젠가 부르시겠다는 마음은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 중 “2년 남았다”는 말씀을 또 들었다. 마침 퇴사 후 새로운 일을 준비 중이었는데, 결국 신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김 전도사는 “저도 사회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부르심이 너무 확실했기에 순종하게 됐다”며 “후회는 없다. 일단 목회를 시작하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