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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한복음 20:27)”.

요한복음 20장은 갈릴리 디베랴 바다를 무대로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세 번째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예수님의 부탁은, 절망과 실의에 빠진 제자들에게 희망의 말씀을 전해주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예수님 생전에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일상을 함께 해온 제자들조차 슬픔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두려움을 용기로, 불신을 믿음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유대 당국자들의 눈을 피해 두려운 마음으로 문을 걸어 잠근 채 모여 있을 때,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평강을 전하시며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렸던 옆구리를 보여주십니다.

이어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시는 부탁과 함께 “성령을 받으라고”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는 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으로 보내는 것 같이 파송하시는 것임을 나타내셨습니다.

부활하신 첫날 저녁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던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반신반의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며 완강한 불신의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아마 도마는 제자들이 모여 있는 집회에 참석치 않으므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 역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예배에는 필히 참석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주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도마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 도마에게 손에 못자국과 구멍 뚫린 옆구리를 보이시면서 믿음을 촉구하십니다.

결국 도마는 순종하고 예수님에 대한 불신을 접으면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도마는 실증주의자로서 불신적인 태도를 가진 자의 대명사인 것처럼 신앙인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막달라 마리아나 다른 제자들 역시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서야 믿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확실한 증거인 빈 무덤을 보고서도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 요한은 예수님 부활에 대한 성경의 증언과 부활 예고를 여전히 이해하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기 전 여전히 슬픔에 잠겨 울고 있었으며, 다른 제자들 역시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셔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기 전 까지는 두려움에 떨며 혹 들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시대를 사는 우리 신앙인들 역시 그러한 모습으로 불안과 공포에 떨며 숨어 지냈을 것입니다. 특히 너무나도 엄청난 사건인 부활을 제대로 믿을 수 없었던 도마의 모습이 오늘을 사는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이렇게 단호한 자세로 예수의 부활을 믿기를 거부했던 도마조차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My lord and my God)”이라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음을 정확하고 강력하게 증언 해 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도마의 신앙고백 내용을 보면, 복음서 중 예수님에게 직접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유일한 경우입니다. 특히 제자 요한은 도마의 신앙고백을 넘어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본서의 저작 목적을 다시 한 번 명백히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역시 단순히 도마의 불신앙에 대한 책망의 차원에서 만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완강한 거부의 태도로 불신의 말을 한 도마에 대한 책망의 의도도 깔려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보고 믿는 자에 대한 책망보다 보지 않고도 믿는 자의 복을 강조한 것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한 후, A,D. 52년 인도로 가서 7개의 교회를 세우는 놀라운 역사를 펼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끝내 힌두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피살당함으로, 이 세상에서의 사명을 끝내게 되는 순교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부정적인 태도로 믿지 않았던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스승인 예수님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한 괴로움이 컸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더욱 믿음이 불타올라, 순교로 그 빚을 갚으려 했을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필자는 어린 시절 옆방에 사는 할머니의 전도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할머니는 글을 모르셨지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철저하신 분으로, 1년 내내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가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와 저는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임을, 글을 모르시는 그 할머니를 통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만큼 믿음은 학력이나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고 적음에서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 대신 얼마만큼 주님을 사랑하는가, 그리고 이웃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보여주느냐의 문제입니다.

저자 요한은 본서를 기록하는 목적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그들은 메시아를 단순히 정치적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유대적 사고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의 신성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의 부활 사실과 이를 목격한 도마의 고백이야말로, 예수님이 신적 메시아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너무 쉽게 믿어버리기에, 그 사건은 너무 엄청나고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리기조차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손에 난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며 “만져보아야만 믿겠다”는 도마의 외침이야말로, 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신앙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외침이 아니겠습니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신 부활의 주님의 음성이 지금 이 시대에서도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믿기 어려웠던 과거의 삶에서 아직도 탈피하지 못하고 세상 연락에 빠져 헤어 나올 줄을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선물 중 최고의 것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되다” 하십니다.

이처럼 부활은 오로지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는 증언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신앙인인 것입니다. 신앙은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믿기 위해 이해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이해하기 위해 믿으라”는 어느 성인의 말씀처럼, 우리는 믿는 것을 주저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멸시하고 폭력으로 일관하고 심한 언어와 모욕까지 일삼는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심지어 흉악한 죄인들이 당하는 형벌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도, 죄인들을 용서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최후의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세상과 인류의 죄를 용납하며 아가페의 사랑을 모두 쏟아 부으신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 죗값을 치러야 한다면, 그 사람이 지은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죄 없는 예수님께서는 무서운 십자가의 형벌을 감당하시면서도 가해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 모습은 우리가 참으로 따라하기 힘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서로를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을 배신하고서도 터무니없는 의심을 했던 염치없는 제자들에게도 평화를 빌어주시고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보내주시는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보지 않고도 믿는 신앙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의 깊은 뜻을 항상 묵상하는 아름다운 종들이 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