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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3장 16절

속죄 제물에 대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해서 엄청난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독생자의 목숨을 바쳐 사랑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면, 생명의 은인으로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그렇게 목숨을 바치셨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해서 “그리스도를 속죄의 제물이 되게 했다”는 말입니다. 이 배경을 중심으로 하면서 우리는 ‘속죄의 제물’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1. 우리를 사랑한 증표
속죄의 제물은 온 인류를 사랑한 증표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너무나 유명해서, 신약성경의 요약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니고데모와의 대화가 아니라, 갑자기 우주적인 규모로 전환됩니다.

주님이 사람의 아들이라던 인자(人子)가 독생자로 바뀝니다. 어쨌든 문맥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한국어로는 간단한데, 말씀의 해석이 난해합니다.

본문은 말씀의 핵심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헬라어 성경을 찾아보고 몇 가지 영어 성경을 참조하면서 제목을 잡게 됩니다. 그래서 ‘속죄의 제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니고데모에게 십자가의 죽으심을 예표하신 주님은 구원론을 설파하셨습니다. 구원은 “죄를 대신 속죄해 주신다”는 전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 전제가 바로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기에 “독생자를 세상에 주셨다”입니다. 이 말씀을 풀어서 말하면 “하나님은 온 인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기에 독생자를 속죄의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했다”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속죄의 제물’로 삼으셨다는 데서 출발해야 풀립니다. 왜 그렇게 하셨나요? “세상을 사랑해서, 온 인류를 사랑해서”입니다.

2. 세상이 멸망을 당하지 말라는 증표
속죄의 제물은 멸망당하지 말아야 하는 증표입니다.

독생자를 속죄의 제물로 삼으신 것은 인류가 멸망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속죄의 제물로 주신 목적입니다.

본문은 대화체로 시작해서 해설체로 끝납니다. 누구의 말인가를 숨긴 이 본문은 자체의 의도로 보아서, 문체적 형식을 초월합니다. 오직 진리 선포에만 집중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독생자만이 높이 부각되는 중요성입니다.

아낌없이 속죄의 제물로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부각시킵니다. 그 독생자가 속죄의 제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죄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죄의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죄를 범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매우 궁색한 나머지 내놓은 대책이 바로 궁여지책(窮餘之策)입니다. 그 궁여지책으로 하나님이 독생자를 속죄의 제물로 삼으시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독생자를 속죄의 제물로 삼으신 것은 인류가 멸망당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속죄 제물로 삼으시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사랑이면서, 구원의 방법입니다. 이 구원의 방법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독생자를 부각시킵니다.

3. 영생을 얻게 만드는 증표
속죄의 제물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만다는 증표입니다.

독생자를 제물로 바치심으로,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독생자만 믿으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주신다는 것은 너무 파격적입니다. 도무지 믿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의심하여 거부하는 것이 당연한 현상입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주시기로 약속입니다. 그 약속된 영생은 구원받은 영혼을 하나님의 생명에 접목시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징 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한국 불교의 종정(宗正)이었던 선승(禪僧) 성철(聖哲)은 살아생전 기독교의 구원 진리를 과감히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로 인하여 “불교의 가르침에 회의를 품고 기독교로 개종한 불자(佛者)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열반을 계기로 수십만 명이 불교로 귀의하는 현상이 생겼답니다. 그 중에는 기독교 신자도 성철의 구도적 삶과 죽음에 적잖은 흠모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제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우상숭배니, 사탄의 세력이니” 하면서 일방적으로 매도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일방적 매도는 사회윤리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영적인 폭력이기도 합니다.

구원이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를 건져내어 살려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에게는 모두 은혜가 필요합니다. 용서하는 행위는 절대로 죄인의 몫이 아닙니다. 죄인은 그저 용서해 달라고 빌 뿐입니다. 용서가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김충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에서 만난 김충렬 박사.
4. 정리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증표는 주님을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인 독생자를 속죄의 제물로 바친 사실입니다. 이 진리를 마음에 받아들여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기도하십시다!

“주님!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속죄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단번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나를 위해 속죄의 제물이 되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