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개독교’ 낙인 찍어, 이미지 추락시키는 전략
안으로는 모든 법·제도 통해 은근한 압박 가해 위축 유도
절대적 지지 세력 동원·이용해 여론 압력… 많이 본 방식
우리 사회 설마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이미 포위되었나

사회주의 예배 제재
▲사회주의의 직접적 기원인 마르크스주의 창도자 칼 마르크스.
‘다친 이(The Wound)’라는 필명의 그리스도인이 ‘그런데 말입니다’라는 코너로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시무 7조’로 큰 화제를 모은 ‘진인 조은산’의 ‘기독교 버전’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필명 ‘다친 이’ 님은 범상치 않은 글솜씨로 교회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주요 이슈들을 쓴소리와 함께 성경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대안을 모색해볼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무슨 자격이 있어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보통 사람으로서 답답하고 속이 상해서, 그래서 마음이 많이 아파서 한 마디 지껄여 봅니다.)

갑자기 웬 마르크스냐 싶을 것입니다. 그저 한물 간 옛 인물을 거론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철학사에서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비중을 가벼이 다룰 사람은 없습니다. 그의 정신세계와 저작들은 여전히 현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의 유물론적 변증법과 역사발전 5단계설을 기초로 하는 계급투쟁론은 지금도 추종자들에겐 금과옥조처럼 추앙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듯 보이지만, 마르크스의 정치철학이 제기했던 문제들은 여전히 첨예한 갈등을 불러옵니다.

헤겔의 후예로 포이어바흐(Feuerbach, 1804-1872)와 함께 대표적인 헤겔 좌파로 분류되는 마르크스는 전통적인 관념론에 반기를 들고 유물론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관념론자인 헤겔은 정신이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토대라고 생각했지만, 마르크스는 인간의 삶이 물질적인 현실에 근거하며 정신은 물질적인 과정의 산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헤겔을 거꾸로 뒤집었다”고 호언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1809-1882)에게 친근감을 표시했습니다.

헤겔
▲ 마르크스 사회사상의 모태가 된 정신현상학을 창도한 철학자 헤겔.
그럼에도 그는 헤겔과 같이 결정론자였습니다. 그는 현실에 속한 역사의 법칙이 헤겔의 변증법과 같이 발전한다고 믿었습니다.

다만 정신이 아니라 물질의 발전을 논했다는 점에서 후사가들은 그를 ‘변증법적 물질주의자’라 평합니다. 그는 물질적인 행복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 했습니다.

그의 이런 철학은 실제 사회에 대한 정의와 진단에 그대로 투영됩니다. 그는 인류의 역사가 고상한 정신세계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투쟁으로 일관했다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과거의 역사는 모두 계급 투쟁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항상 상위계급과 하위 계급, 혹은 유산자와 무산자의 대립과 갈등과 투쟁의 연속이었다고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측이 화해해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승리를 위한 전면전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객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계급의 발전을 위해 옳은 것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즉 이기는 자가 옳은 것입니다.

그의 시민사회론도 특이합니다. 그는 개개인은 결코 화해할 수 없으며 근대 국가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갈등으로부터 독립된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개개인의 이익을 보편화시킬 뿐이라고 독해했습니다.

그러므로 시민사회는 이기적 주체들에 의해 구성된 경제적 공동체이며, 전통적인 자본주의자들인 부르주아가 구축한 국가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주체인 프롤레타리아의 세계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가 바라는 이상적인 시민사회는 경제적으로는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계급을 타파하자는 모순에 도달합니다.

결국 그가 주창한 역사발전 5단계의 마지막 이상사회는 공산사회입니다. 헤겔은 역사는 끊임없이 ‘정-반-합’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하고 변화한다고 했지만, 마르크스는 무조직사회에서 출발하여 공산사회에 이르면 최종 단계인 낙원에 이른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의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 사회는 철저하게 자체적인 모순으로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그는 종교를 아편이라 생각했습니다. 곧 종교는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혁명이 필요치 않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 제공하는 일종의 마약이라 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마약에 취한 나머지 정상적인 사회변화에 헌신하기보다는, 머지않아 하늘에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종교를 사회혁명의 최대 걸림돌로 생각합니다. 그의 후예들도 하나같이 종교, 특히 기독교를 자신들이 세우고자 하는 이상사회 건설을 방해하는 원수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 예배 제재
▲마르크스가 남긴 반종교적 교설, "종교는 대중의 아편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까지 거론한 내용들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들 아닙니까? 이상하게 오버랩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은 비단 저만 느끼는 것일까요?

분명히 오늘날에도 마르크스 후예, 즉 ‘마르크스 키즈’들이 우리 사회 내부에 도사리고 앉아 작전 세력으로 활동하고 있음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들이 가고자 하는 목표가 어디냐 하는 것인데 만약 그들이 분명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고 전제한다면 그들의 목표지점을 간파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크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세 가지 공통된 이념과 행동강령,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 탁월한 전략이 있습니다.

첫째, 이들은 분명한 목표를 향해 일심단결하는 목표지향 공동체입니다. 둘째,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마르크스가 그랬듯이 오직 승리를 위해 투쟁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선이자 정의입니다.

셋째, 승리의 전략을 사용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언제든지 전략을 수정하고 행동과 태도를 180도로 전환합니다. 이런 전략수정에는 ‘양심’이니 ‘내로남불’이니 ‘위선’과 ‘불공정’ 등의 용어는 도덕과 무관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정치 도덕 운운하고 기본적 예의 운운해도, 이들에겐 그야말로 염불에 불과합니다.

특히 이들의 기독교회에 대한 공격의 전략은 매우 정교하고 교활합니다. 이들은 공식적으로는 ‘개독교’로 낙인을 찍어 이미지를 추락하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안으로는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한 은근한 압박을 가함으로 스스로 세력을 위축하도록 유도합니다.

여기엔 자신의 절대적 지지 세력의 힘을 동원하고 이용하여, 여론의 압력을 가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런 일들을 왜 우리가 주변에서 일상에서 자주 듣고 목격하는 것일까요?

설마 우리 사회가 이미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포위되거나 점령당한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친이 칼럼
다친 이(The Woun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