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교회
▲사랑의교회 강단. 부활을 상징하는 ‘빈 무덤’을 만들었다. ⓒ사랑의교회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10:22-23)”.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고 파송 직전에 베푸신 교훈입니다. 시간상 제3차 갈릴리 사역 초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열두 제자, 복음 전파자의 자세, 주님의 도우심과 섭리, 복음과 세상과의 대립,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에 대한 축복의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은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재림하시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시며, 특히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다시 오실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2019년 1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지쳐 있는 성도 여러분들을 초대하셔서 축복하시고, 평화를 갈망하는 이 땅에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신실한 평화를 선물해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특히 힘들어 하는 2021년 사순절과 사망의 그늘을 헤치고 승리로 영광을 받으실 부활절이 어느 해보다 우리에게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주님의 부활을 맞은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도 여러 상황들이 만만치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둡고 긴 터널에 들어선지 벌써 1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그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터널 속의 이 어둠이 두렵고 익숙하지 않아 불안해하며 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언제 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기에 더욱 답답합니다.

골고다 언덕에 오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셨을 때, 겁에 질려 바깥 출입조차 하지 못하고 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골방에 숨어 공포로 떨었던 제자들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요?

사흘이라는 그 시간이 제자들에게는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요?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그 사흘 동안 제자들은 하늘같이 믿었던 스승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힘들었을 것입니다.

또 그토록 능력이 많으셨던 분이 하루아침에 비참한 신세로 전락할 뿐 아니라, 사형수들이 당하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절망감과 배신감, 그리고 언제 로마 병사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심에까지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약속대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그 모든 것을 떨치고 일어서는 부활의 승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기쁨에 가득 찬 용기를 얻었고, 힘차게 새로운 도약의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믿고 의지했던 스승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그런 부활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은 단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주님의 영광 안에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요한계시록 2:10)”.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 하였도다(요한계시록 2:13)”.

십일 동안의 환난이라는 것은 하늘나라에서의 영원한 삶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13절에 나오는 ‘안디바’라는 인물은 아시아 지방의 첫 순교자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도미티안 때 순교를 했는데, 놋솥에 넣어 천천히 열을 높여 태워 죽이는 형으로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신앙인 여러분, 계속되는 코로나19로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은 결코 죽음과 멸망의 고통이 아닙니다. 인생이라는 우리의 삶의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시련에 불과합니다.

물론 아직도 여러 상황에서 많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 힘듦 가운데 우리는 새로운 것을 찾아냈고 또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우리 신앙인들은 너무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살면서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데는 무척 인색했습니다. 물질문명 발달로 인한 편리주의와 풍부함만 추구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 이웃을 배척하고 세상과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실로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새 생명인 아이를 낙태하며, 동물들까지 학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혼자서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더불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배려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배우며 긍휼히 여기는 감동의 마음으로 옮겨 심는 작업도 배워야 하는 곳입니다.

더불어 사는 대상은 사람만이 아니고 지구와 자연과 환경임도 알았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살았던 삶은 많은 부분들이 생명을 살리는 부활에 역행하는 삶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겪은 어둠의 사흘을 겪고 있는 우리도, 이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새롭게 태어나야 하며 전환해야 할 것입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교인들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교회를 등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며 매달려 기도할 때입니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은 정부 방침에 이해를 도와서,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마음껏 드릴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자칫 교회가 사탄의 함정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탄들의 놀음이나 꾀임, 그리고 꼼수에 빠지지 않게 성도들을 철저히 믿음으로 무장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코로나19 사태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질병 역시 삶의 과정임을 인식하여, 건강하고 신실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호와의 군병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슬기롭게 잘 극복하며,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주님의 선물인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 누림을 위해, 쓸데없는 자존심과 교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 거짓과 탐심 없이 온전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날마다 나를 비워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도 부활의 삶을 체험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체험하는 부활의 삶이 영원한 부활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평화에 힘입어, 기쁘고 복된 부활의 삶을 살아가도록 축복합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