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부교역자로 청년 사역하고 있는 노재원 목사의 글을 연재한다. 노재원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연세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졸업(석사)했으며, 현재 ‘알기 쉬운 성경이야기’, ‘기독교의 기본 진리’, ‘영화를 통해 읽는 성경이야기’, ‘대중문화를 통해 읽는 성경이야기’ 등을 유튜브를 통해 연재하고 있다.

우리에게 마을이?
노재원 목사의 <성경으로 공간 읽기> #6

노원재
ⓒ유튜브 아키바이블 화면 갈무리
아파트 단지가 마을?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는 ‘무슨 무슨 마을’로 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애칭이 아니라 엄연한 주소이지요. 아파트 단지 입구에 높여 있는 비석들은 이곳이 ‘무슨 마을’인지를 알려주는데요. 마치 그 옛날 마을 초입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던 장승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마을’이라는 단어는 행정적인 단위보다는 다분히 정서적인 공동체라는 느낌을 주는데요.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이 ‘마을’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인 주소로 사용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이웃끼리 살갑게 지내는 정감 어린 공동체를 이뤄보자는 사회적 열망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지자체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을 앞다투어 개최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겠죠.

도시화가 진행되기 전에는 마을이란 주로 씨족 단위로 구성되었습니다. 자연히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사는 형편이며 집안 돌아가는 일들을 잘 알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비록 사생활 보장이 조금 어렵기는 해도 서로 부대끼며 친밀하게 살았던 것이죠.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옛 마을에 대한 향수는 아파트 단지에 ‘마을’이라는 호칭이 붙게끔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에게는 마을공동체를 이루며 살려는 의지가 있을까요?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끈끈한 공동체는

행정구역상 ‘마을’이 이웃이라는 개념과 별개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우리 생활에서 이웃이라는 개념은 가까운 거리에 사느냐보다는 경제적 수준이 같은지에 의해서 규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그리고 경제적 수준은 곧장 자녀교육으로 연결됩니다. 학교나 사교육에 관련된 커뮤니티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결속력을 보이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목표가 명문대 진학으로 또렷하게 수렴되면서 이 공동체는 더욱더 결속을 공고히 하지요. 지금 한국사회에서 입시를 배제한 커뮤니티가 다소 무익해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TV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에는 훈훈한 장면이 나옵니다. 이웃 아낙네들이 한 데 모여서 찬거리도 다듬고 수다를 떠는 장면이지요. 간혹 서로의 민감한 사생활을 살짝 침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불쾌해하지 않습니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한국의 주택단지에서 이런 장면, 이런 마을공동체를 기대하는 건 그저 낭만적인 바람일 뿐일까요?

기독교 마을공동체의 가능성

근래 들어 기독교의 정신에 따라 마을을 운영하면서 성경적 가치를 함께 이뤄나가려는 마을공동체가 여러 곳에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젊은 부부들을 중심으로 공동양육은 물론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사교육을 하기도 하지요.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공부방이나 숙식을 제공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길러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독교 마을공동체는 이웃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육아·교육·주거·식사·여가 등 생활의 전 영역을 공동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최근 여러 지자체가 추진하고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롤 모델로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신앙을 가진 이들이 이웃을 이루어 기독교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성경의 가르침에도 부합하지요. 개인주의가 첨예한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마을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웃의 중요성을 훈계한 전도서 기자의 금언은 작금의 마을공동체를 내다본 예단은 아닐런지요.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_전도서 4:10(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