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애국동지회 이승만 동상
▲남인수 회장과 서일주 이승만흉상건립준비위원장(가운데), 동양산업(주) 임원들과 함께 흉상 앞에 선 모습. ⓒ동지회
대한애국동지회(회장 남인수 동양산업(주) 회장)에서 나라사랑 애국정신 고취를 위해 건국의 아버지인 이승만 대통령 흉상을 포항 남구 도구면 상정리에 설치했다.

이번 사업은 투철한 국가관 함양과 애국애족 정신 함양을 위해 지난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경주 최부잣집’ 최준 선생 흉상 건립을 시작으로 나라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잊혀져가는 현실을 계몽하기 위해 실시되고 있다.

남인수 회장은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리지만, 해방 후 좌우의 극한대립 시기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해 오늘날 번영된 대한민국 기초를 다졌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역사가 부정되고 왜곡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올바른 역사를 후손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대한애국동지회는 하반기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 제막을 계획 중이다. 이들은 포항 지역에서 애국애족 정신 함양을 위해 해당 흉상들을 모아놓은 공원 건립을 구상하고 있다.

이승만
▲이승만 건국 대통령. ⓒ김현웅 씨 제공
한국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이승만 대통령은 황해도 평산 출신으로, 본관은 전주, 호는 우남(雩南)이다. 대통령 외에도 우남 혹은 싱먼 리, 이 박사 등으로 불렸으며, 이 대통령보다 ‘이 박사’로 더 많이 불렸다.

1900년대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학사,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를 거쳐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아 한국인 최초 박사 학위 보유자가 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고종 12년 조선에서 태어나 배재학당에서 수학하며 신학문을 연마했고,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YMCA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 하에서 관직을 맡기도 했으나, 고종이 독립협회 지도자들을 체포 구금하고 만민공동회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박영효의 황제퇴위 음모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5년 7개월 간 한성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러일전쟁 중 사면돼 을사조약의 국제법적 부당함을 주장하는 민영환의 밀사로 미국에 파견돼 활동했고, 한국의 주권회복을 위한 청원 외교를 전개했다.

이후 대한국민의회, 상해 임시정부, 한성정부 집정관 총재 등 각지에서 수립된 임시정부 수반을 거쳐 1919-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1대 대통령을 지냈다. 이후 국무위원,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등을 지내며 광복의 그날까지 주로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광복 이후 신탁통치 반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주도했다.

초대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거쳐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12년 동안 대통령으로 지냈다. 재임 중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의 국제적 승인, 농지개혁, 초등학교 의무교육,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대대적인 학교 건립, 평화선 선포 등의 업적을 남겼지만, 6.25 전쟁과 같은 위기를 겪기도 했다.

동시에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독재 권력을 추구해 반발을 샀고, 결국 1960년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한 4.19 혁명이 일어나자,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이후 미국 하와이에서 말년을 보내다, 1965년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대한민국에서 가족장으로 집행됐으며,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다.